408. 野壇法席(야단법석) (2)

野壇法席(야단법석) (2), (법륜著, 정토출판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스위스인과 결혼한 여자분: 한국에 가도 고아가 된 느낌이고 스위스에 있어도 고아가 된 느낌이다.

법륜의 즉문즉설: 미국에서 자란 아이는 영어밖에 못하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는 한국어밖에 못하는데 나는 미국 아이보다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 아이보다 영어를 잘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남의 정체성과 자기를 비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고아로 만드는 것입니다.


피렌체에 유학 온 학생: 이탈리아 룸메이트가 너무 이기적이라 힘듭니다.

법륜의 즉문즉설: 콩을 100개 정도 쥐어 살펴보면 크기나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팥과 비교하면 크기나 모양이 다름에도 모두 같은 콩이라 합니다. 콩과 팥은 서로 다르지만 채소와 비교하면 같은 곡식이라 합니다. 그런데 콩, 팥, 채소와 돌멩이를 비교하면 같은 식품이라 하지요. 다르다 해도 같은 점이 있고 같다 해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사람과도 대화를 해보면 이상도 같고 취미도 같고 종교도 같은 사람이 있지요. 같은 것을 네댓 가지 발견하면 금방 친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습관은 거의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구나.’ 인정을 하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안 맞으면 같이 안 살면 됩니다.


헝가리의 직장인: 한국 사람보다 뒤떨어지는 헝가리인에게 화를 내고는 후회합니다.

법륜의 즉문즉설: 한마디로 성질이 더럽다는 이야기네요. 성질 더럽게 살던가. 고치던가 해야 합니다. 더럽게 살면 주위 사람들이 멀리하고 손해를 감수하던지 고치던지 해야 하는데 성질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에 고치기 어렵습니다. 성질이 날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다리를 한 번씩 지지면 생존의 위협을 느껴 고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삼천 배를 해보세요. 아니면 매일 108배를 하면서 ‘저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라고 되뇌세요.

헝가리 직원들이 일을 척척하면 질문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월급을 받고 사는데 ‘아이고 당신들 덕분에 제가 삽니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래도 짜증이 난다면 108배를 하시던가, 전기충격기를 구입하세요.


20년 전 헤어진 어머니가 그리운 베를린 교포: 어머니가 만나기를 원하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법륜의 즉문즉설: 이미 성년이 되었기에 굳이 찾아뵐 필요는 없습니다만 어머니가 보고 싶다면 ‘어머니 한번 뵙고 싶습니다.’라고 청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보기 싫다.’하시면 낳아주시고 열세 살까지 키워주신 것이 고맙다고 말씀드리면 되고, ‘한번 보자.’하시면 ‘인사드리려 찾아왔습니다.’하면 되지요. 그다음에는 어머니께서 또 만나자고 하시면 자주 만나면 됩니다.


모스크바 교포: 밖에서는 착한 척을 하고 집에서 화풀이를 해요.

법륜의 즉문즉설: 남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나쁜 성격은 아니나 욕심이 많아서입니다. 남에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란 칭찬을 듣고 싶어서 그럽니다. 화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칭찬받고 싶다는 욕망,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헬싱키 유학생: 핀란드에는 결혼은 몇 살에 해야 하고 성공하려면 얼마를 벌어야 하고 학벌을 중시한다던가 하는 기준이 없어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치관이 혼란스럽습니다.

법륜의 즉문즉설: 핀란드가 여러 면에서 좋다고들 하는데 한국 사회가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학벌주의’도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든 말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면 되며 꾸준히 개선해 나가면 됩니다. 혼란스러울 필요가 없지요. 한국에 가서 좋다 싶었던 것들을 관철시켜보시고 그것이 힘들면 한국식으로 살면 됩니다. 그건 전적으로 자기 선택인데 힘들다고 한다면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기 싫다는 뜻입니다.


포틀랜드 교포: 딸이 셋인데 큰 딸은 나쁘게 이야기하면 인간미가 없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자입니다. 반면 둘째 딸은 너무 착해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 정리도 못합니다. 큰 딸이 좋은 점도 있지만 인간미가 없어 저하고 트러블이 있고 작은 딸은 나름 행복해 하지만 현실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큰딸과 작은 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걱정입니다.

법륜의 즉문즉설: 우선 질문자의 관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것만 다 가지려 하고 있어요. 칼은 날카로우니 그에 맞게 쓰면 되고 솜은 부드러우니 거기에 맞게 쓰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솜은 부드러워서 좋은데 날카로움이 없으니 좀 날카로워져라.’ 칼에게는 ‘날카로워서 좋은데 좀 부드러워져라.’하고 요구를 하니 불가능하지요. 질문자는 끝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네요.

큰딸이 이성적이면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작은딸에게는 부드러운 장점을 살리게 도와줘야 합니다. ‘엄마 나는 날카로움이 없어 큰일이야.’하면 ‘너는 대신 부드러움이 있지 않니? 모든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데 네가 가진 것도 훌륭하단다.’해줘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면 아이가 일반인같이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입니다.



* 법륜의 프롤로그 *

우리는 늘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괴로워하며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행복해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몸소 느껴야 합니다.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행복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애쓰다가 내일 교통사고로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행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과 예수님은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행복의 관점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와 무관하게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자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그 길을 불여수행이라 합니다. 절이 필요하면 절을 하고 기도가 필요하면 기도하고 참선이 필요하면 참선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을 때, 그 좋음은 지속 가능합니다.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쁨이라야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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