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김헌著, 이와우刊)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

by 물가에 앉는 마음

프롤로그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고 했습니다. 선배 고전학자 중의 한분도 ‘고전을 꼭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읽을 필요 없어요. 고전을 읽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전을 꼭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읽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고전은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 이길 힘과 지혜를 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고 버티고 서서 지금껏 살아남아 있는 책, 고전이 그런 놈입니다. ‘고전의 뚝심’ 저는 그것을 배웠고 아직도 여전히 배워 가는 중입니다. 그 습관이, 그런 삶의 방식이 곧 직업이 되어 저는 지금 서양 고전학자로서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 독서의 결과이며, 제 삶의 흔적입니다. 수천 년 전의 작가들이 지은 책의 세계에 머물며 그 책에서 바깥으로 난 창을 통해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러면 책의 바깥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때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책을 쓴 순간 저도 하나의 작은 세계를 지은 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책을 펴는 순간, 저와 제가 읽은 책의 저자들이 함께 만든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요?’ 레온이 피타고라스(기원전 50~490)에게 묻자 ‘나는 진정 앎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축제 같은 것이지요.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어떤 이는 승리를 얻기 위해 경기를 하러 오고,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러 옵니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이는 축제를 보기 위해 오는 관람객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노예근성을 타고난 이들은 화려한 명성과 물질적 풍요를 쫓아가지만 진정 앎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합니다.’

진정 앎을 사랑하는 자(Philosophos)라..., 도대체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가 ‘필로소포스’니 그가 하는 일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일 텐데, 말의 뿌리를 따지면 ‘앎(sophia)’을 사랑하는(Philo) 일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 피타고라스이다. 기존에 통용되던 모든 가치를 접어두고 아주 독특하고 새로운 것을 지향했는데 이를 표현할 말이 적당히 없어 새롭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개념을 잘 다져두었다. 그는 인간의 앎을 네 단계로 구분했다.

최초의 단계는 감각이다. 눈과 귀, 피부와 코, 혀로 대상과 처음 만나 느끼며 알게 되는 것, 그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즉각적이며 가장 생생하다. 하지만 감각은 금방 희미해지며 마침내 하얗게 지어진다.

감각 다음은 기억이다. 감각의 내용을 지속시키며 간직하는 힘이 필요하므로 감각보다는 더 높은 단계의 지적 활동이다. 기억은 감각 내용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잔상, 메아리이기에 개별적 대상에 대한 감각의 지속 결과이다. 그래서 감각된 적이 없는 다른 대상이 나타났을 경우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기억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대상에 적용할 줄 아는 지적능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경험이다. 경험이란 따로따로 인 기억들을 묶어 하나의 울타리 안에 넣어두는 데서 성립한다. 기억을 활용해서 같거나 비슷하거나 다르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경험적 지식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 앎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식은 아니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어느 봄날 후배와 커피를 마시다 궁금증이 일었다. 뜨거운 것에 뎄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물어보니 후배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쇠똥’, 어렸을 때 뜨거운 쇠죽에 데었는데 이모님이 쇠똥을 발라주어 거짓말처럼 났으니 쇠똥이 최고란다. 경험담이니 맞는다고 치고 ‘그럼 쇠똥의 어느 요소가 화기를 가라앉히는지 아냐?’고 물었더니 ‘그건 모른다.’였다. 이유를 모르는 지식은 경험적 지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왜?’라는 질문 앞에 맥없이 침묵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들의 지식은 진정 올바른 앎이다.


이런 연유에서 기술도 마찬가지로 ‘왜’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엔지니어링이며 진정한 앎이자 기술이다. 직감적으로 고장을 수리하는 것은 1단계이며 기억에 의해 수리하는 것은 2단계이며 과거 경험을 밑바탕으로 응용하여 수리하는 것을 3단계라 할 때 ‘고장원인’이 무엇이니 이렇게 정비해야 한다고 ‘왜’를 알려주면 이것이 궁극의 앎이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엔지니어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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