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 나를 찾아가는 길

나를 찾아가는 길(돌베개刊, 이용휴著, 박동욱과 송욱기가 풀어씀)

by 물가에 앉는 마음

혜환 이용휴는 당시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거목이었다. 문장을 연마하여 새롭게 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그의 비평과 가르침을 듣고자 몰려들었다. 권력에도 나아가지 않고 30년간 문단의 저울대를 손에 잡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조선에서 한 시대의 문장을 평가하고 계도하는 것은 국가의 일로 이를 담당하는 기관인 홍문관, 예문관의 책임자 대제학은 문장의 고하를 판정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직책이라는 의미의 文衡 (문형)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혜환은 실학자 성호 이익의 조카로 그의 집안은 조부 때까지 남인의 명문가였으나 이익의 맏형이 숙종의 친국 끝에 죽임을 당한 역적 집안으로 낙인이 찍혔다. 혜환은 28세 생원시 합격을 끝으로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고 재야 문사로 삶을 살았다.


"손님이 오면 무릎이 닿을 정도의 좁은 방. 이 하나의 방안에서도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가 변하고 명암이 달라지네. 구도란 다만 생각을 바꾸는 데에 있으니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이를 따르는 법이지. 자네가 나를 믿는다면 나 자신을 위해 창을 열어 주겠네. 그러면 한번 웃는 사이에 이미 막힘없이 툭 트인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편안히 여기면 불편함이 없고, 편안히 여기지 않으면 불안함이 없을 수 없다. 불안함이 없기 때문에 焦孝然(초효연)은 오두막집에서, 袁夏甫(원하보)는 土室에서 평생을 살아도 매우 만족했다. 불안하기 때문에 왕홍과 고변은 누대와 정자를 金玉으로 장식해 지극히 화려함을 다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후세 사람들은 초효연과 원하보를 덕이 높은 어진이로 받들고, 왕홍과 고변은 역사에서 내치니 그 결말이 어떠한가? 그렇다면 이 집이 비록 누추하기는 해도 어찌 편안하지 않겠는가?"


"만족할 줄 아는 자는 하늘이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구하는 것이 없는 자는 하늘이 천하게 할 수 없다. 시름과 고통을 참기는 쉽고, 기쁨과 즐거움을 참기는 어려우며, 노여움과 분노는 참기는 쉽고. 좋아함과 웃음을 참기는 어렵다. 남을 헐뜯는 자는 자신을 헐뜯는 것이고. 남을 성취시키는 자는 자신을 성취시키는 것이다. 천하에는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이 없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 일 하나라도 생각 없이하면 곧 창자를 썩히게 되고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곧 미련한 놈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에게 양보하면 의지가 없는 것이고, 지금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아량이 없는 것이다. 군자에게 있는 변치 않는 사귐을 ‘義’라 이르고, 변치 않는 맹세를 ‘信’이라 이른다. 곡식이 되나 말에 넘치면 사람이 평미레로 밀고, 사람이 분수에 넘치면 하늘이 평미레로 밀어 버린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사람의 ‘志氣’를 길러주기도 하지만 사람의 선한 바탕을 없앨 수도 있다."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송사한다. 스스로 강하게 하고 스스로 후하게 한다. 스스로 취하고 스스로 짓는다. 스스로 포악하게 하고 스스로 포기하게 한다. 그러니 자기에게 말미암는 것이지 남에게 말미암는 것은 아님이 명백하다. 천 사람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 한 사람이 나를 알게 함만 못하고, 한 세대가 나를 알게 하는 것이 천 세대가 나를 알게 함만 못하다."

이상의 글에서는 혜환의 꼿꼿함과 고수의 체취를 엿볼 수 있다. 재야의 문형으로 이름이 나니 여러 사람들이 혜환의 말을 듣기를 원하고 자신들이 쓴 글에 대해 평가받기를 원한다. 혜환이 하는 말이나 평가하는 글을 보면 경지에 이른 高僧이나 공자와 같은 君子의 향내가 풍긴다.


"옛날 어떤 사람이 꿈에서 너무나도 고운 미인을 보았다. 그런데 얼굴을 반쪽만 드러내고 있어 전체를 보지 못해서 상념에 맺혀 병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고 깨우쳐 주자 그 사람은 곧바로 상념이 풀렸다고 한다. 산수를 보는 것도 모두 이와 같다. 또 금강산은 산으로는 비로봉이 으뜸이고 물로는 만폭동이 최고다. 이제 비로봉과 만폭동을 보았으니 절반만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하자면, 순임금의 유악을 듣는데서 그치고 다른 음악은 듣지 않는 것과 같다."

혜환의 재치가 돋보이는 글이다. 어떤 사람이 금강산 전체를 유람한 것이 아니라 비로봉과 만폭동 등 몇 군데만 둘러보고 기록한 글에 題辭(제사)를 붙여 달라 청했다. 자신도 마뜩잖아 쑥스럽게 내놓았을 터인데 혜환은 뜬금없이 미인 이야기를 꺼내 위로했다. 한정된 시간 속에 모두 보고 모두 읽을 수는 없다. 정수를 보았다면 나머지는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부분에서 전체를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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