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1) (이철수著, 삼인刊)
순백
눈이 오실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처럼 눈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봅니다.
눈 맞고 어디 다녀올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 보며 가슴 설렐 나이도 아닌데...
하얗게 이승을 덮어 오시는 눈을 기다렸는가 봅니다.
왜?
모르겠습니다.
순백의 마음을 잃고 더러워지는 마음이 마음으로 부끄러웠던 모양이지요.
눈이나 펑펑 오셨으면...
마음
마음은, 고요하게 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자제하고 눌러 두는 것은 방법이 못되지요.
분노든 미움이든 기쁨이든 억누르는 것은 곧 쌓아두는 일입니다.
참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흔히 취하는 방법은 발산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도 좋은 방법은 못되지요.
세상사 모두 상대가 있고, 내게 담아두어서 짐 된다고 남에게 떠넘기면 남은 또 어떻게 하라구요?
언제나 스쳐가는 바람처럼 여기고,
오고가는 감정을 지나가게 두어야 합니다.
붙잡지 말고 두어야 합니다.
갈 때는 가라하고, 올 때는 오라 해야 합니다.
당신은 조용히, 오고가는 마음을 지켜보는 텅 빈 존재가 되어도 좋습니다.
성탄이 가깝다고 딸아이가 작은 초를 가져다 흰 보자기 위에 널어놓았습니다. 성탄?
비싼 밥
비싼 밥을 먹었습니다.
살다보니 남들에게 신세를 질 일도 있고 때로는 인사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턱없이 비싸게 받는 밥이라고 별것이 있을 리 없는데 비싸니까 인사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인가 봅니다.
오래 전에 술값이 비싼 집에서 술 한 상 대접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값비싼 술자리란 게 사람을 많이 불편하게 하는 자리인 것을 깨닫게 한 날이었습니다.
언젠가 값비싼 횟집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순대국밥 먹고 나면 참 좋은데...
따님 보살
-절에 다녀오셨어요?
-응
- 뭐 하셨어요?
- 점심 먹고 왔지.
- 겨우?
- 아뿔싸! 따님 보살!
여러해 전에 제 아이와 나눈 초파일 대화를 옮겨 보았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저 혼자 마음속으로 한 이야기 였습니다.
초파일에 등 달고 밥 먹고 오자는 건 아니지요?
큰 성인이 오셔서 전하신 지혜가 8만대장경에 그득한 터이지만,
그 핵심은
- 네 존재의 가치를 바로 깨달아 알아라! 하는 말씀으로 요약되겠습니다.
- 절에 가서 그쯤 한소식도 못 듣고 오셨어요?
아이가 그런 뜻으로 이야기 했을 리야 없겠지만, 그리 들어야 옳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그이도 오시고 그길로 우리들도 왔습니다. 우리 모두!
손
오이순을 손보고, 쉽게 벋어 올라가라고 그물망을 드리워 주었습니다.
붙잡고 오를 데가 없으면 오이 넝쿨은 땅을 기어가야 합니다.
타고 오를 것이 있으면 밝은 데로 밝은 데로 나아가지요.
의지하고 기댈 데가 없으면 땅 위를 기는 존재가 되지요.
밑바닥 인생이 됩니다.
흙 묻어 더러워지고 보면 썩고 병들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기 마련,
싱싱하고 건강한 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이 밭에 그물을 드리우듯,
어린아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도 길에서 떠드는 아이들 많이 보입니다.
가족이 지키지 못하면 이웃이 손을 내밀어도 좋지요.
턱없이 많아지고 있는 범죄를 달리 막을 길이 없을 듯합니다.
밝고 맑은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