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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곁에 두고 읽는 莊子(1)

곁에 두고 읽는 莊子(1) (김태관著, 홍익출판사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莊天馬地(장천마지)라는 말이 있다. 장자의 문장이 하늘이라면 사마천의 문장은 땅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 모두 천하의 명문장가로 손꼽히는데 사마천이 인간의 심리를 꿰뚫으며 험산과 대하를 종횡무진했다면 장자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으며 바람과 구름처럼 자유분방하게 노닐었다. 사마천이 땅 위의 인간들을 살폈다면 장자는 하늘의 도를 헤아렸다.

장자를 읽는다는 것은 도연명의 ‘桃花源記’에서처럼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 무릉도원의 선경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노자는 진정한 도는 자연을 본받는 것이라는 道法自然(도법자연)을 이야기했고 장자는 자연에서 도를 깨닫고, 無爲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즐겁게 자연을 누리는 至樂의 경지, 즉 어슬렁어슬렁 노니는 逍遙遊(소요유)의 경지를 이야기했다. 33편의 장자를 이루고 있는 수만 개의 문자를 분류하면 도, 무위, 지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복해지려면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누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에 매이지 않는 것이 자유요. 자기를 비우는 것이 용기다. 장자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을 비우는 자, 비로소 자유를 얻으리라. 자연에서 도를 깨닫고 무위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던 장자는 우리에게 삶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즐겁게 자연을 누리는 지락의 경지를 보여준다, 걸음을 멈춰라. 삶의 속도를 줄여라. 비로소 행복을 얻으리라. 인생의 길이가 아니라 의미로 재는 것, 보람을 추구하기엔 어떤 삶도 짧지 않고 헛되이 낭비하기엔 어떤 삶도 길지 않다, 기꺼이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삶의 의미, 이것이 장자와 함께 하는 진정한 기쁨이다.


인생 팔십의 길이가 지구 70바퀴라는 셈법이 있다. 80년간 쉬지 않고 1시간 4Km의 속도로 걷는 거리이다. 하지만 장자는 인생을 날쌘 말이 좁은 틈새 앞을 지나가는 것 같은 순식간의 일이라고 말했다. 지구 나이 45억 년에 비하면 인생이란 한낱 점에 불과하다.

천하에 가을철 짐승의 털끝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여기거나, 태산을 작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려서 죽은 아기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하면, 팽조(800년을 살았다는 전설의 인물)를 일러 요절했다고 할 수도 있다. 천지가 나와 함께 생겨나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다. 이미 나와 하나가 되어 있으니 또 달리 무슨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작은 가을 짐승 털(추호)도 무한히 작은 것에 비하면 크고 아무리 큰 태산도 무한히 큰 것에 비하면 작다. 무한대에 견주면 만물은 무한소고 무한소에 견주면 만물이 무한대다. 시간도 마찬가지여서 인생이 아무리 길다 해도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반대로 찰나에 비하면 인생은 영원에 가깝다. 그래서 장자는 어려서 죽은 아이가 장수했다고 말하고 장수한 팽조가 요절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소장단의 기준을 달리하면 이처럼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천지와 만물이 나와 하나가 되어 분별이 없어지는 지극한 경지다. 태양 아래서는 횃불이나 촛불이나 차이가 없듯이 그곳에서는 인생이나 하루살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명품을 걸쳤어도 10미터만 떨어져서 보면 보통 것과 구별할 수 없고 원룸에 살던 맨션에 살던 산꼭대기에서 보면 대동소이하다. 높은 곳, 즉 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만물은 차이가 없다. 다만 기준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지렁이가 용이 될 수 있고 용이 지렁이로 보일 수가 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의미로 재는 것이라고 한다. 의미로 재면 하루가 평생을 좌우할 수 있고 평생이 하루만도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길게 살아도 별 의미가 없다면 껍데기 인생에 불과하다. 반면 단 하루를 살았어도 의미가 담기면 천금보다 귀한 삶이 된다. 보람을 추구하기에는 어떤 인생도 짧지 않고 헛되이 낭비하기에는 어떤 인생도 길지 않다. 의미에 따라서 하루 24시간은 영원으로 통하기도 하고 블랙홀 같은 암흑에 묻혀버리기도 한다.

하루살이보다 작은 전설의 곤충 ‘초명’은 모기 눈썹에 앉기도 하는데 모기가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장자는 그 미미한 초명 같은 것이 인간이라고 말하며 인간사를 달팽이 뿔 위의 전쟁으로 비유했다.

달팽이 머리 위에 작은 뿔이 두 개 있는데 각각 하나의 나라였다.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는 ‘촉’이고, 오른쪽 위에는 ‘만’이라는 나라이다. 두 나라가 서로 땅을 빼앗으려고 수시로 전쟁을 벌였다. 워낙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죽어 널브러진 시체가 수만이 되었고 도주하는 패잔병을 쫓아 나서면 보름 후에나 돌아왔다.

觸蠻之爭(촉만지쟁)또는 蝸角之爭(와각지쟁)이라 불리는 우화다. 두 나라의 싸움은 처절하고 절박했지만 기껏해야 달팽이 뿔 위에서 아귀다툼하는 것에 불과하다. 무한한 우주에 비할 때 인간세상의 전쟁이나 달팽이 뿔 위의 전쟁과 무엇이 다른가?


아무리 큰 고난이라도 따지고 보면 모기 눈썹 위의 티끌에 불과하다. 태산 같은 부를 쌓았다고 해도 우쭐거릴 일도 못된다. 인생은 길이로 재는 것이 아니고 깊이를 재야 하고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만큼 이룬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이뤘는가가 중요하다. 인생은 성취로써 재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 재는 것이다. 하루를 천일 같이 살 것인가 천일을 빈 하루같이 흘려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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