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숨을 끊는 일인 줄 모르고 죽도록 그 맛을 탐하는 어리석은 짐승
어머니
세상에 따뜻하고 너그럽고 사랑 깊고 편안하기도 한 자리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 누구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지 싶습니다. 당신을 통해 세상에 왔습니다. 대개는 그 품에서 자라고 배워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안에서 얻은 사랑이 넉넉할수록 온전한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막된 사람들, 거짓말하고, 오만하고, 예의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 사랑에 배곯고 자란 탓일까요? 잘 못살면 부모님 욕되게 하는 셈입니다.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드렸더니, 어머니 말씀이
'- 나는 매일매일 어버이날이다. 괜한 걱정하지 말고 네일 잘해라. 잘들 지내고!'이었습니다. 팔순 노모 이렇게 쿨 하십니다.
잊지 않기를....
봄비 넉넉했습니다.
비를 바라보고 맞는 마음도 흔쾌했지요.
날씨 뜨거워지면 생명들 키를 키우겠지요?
농사짓는 손은 바빠질 테고...
일속에서 마음 놓치지 않기.
내 잇속과 사회의 공익을 따로 생각하지 않기.
존재하는 것,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그게 축복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게 되기를....
이우
‘이우’라는 짐승이 있다고 합니다. ‘이우’ 안녕?
동물원에 있는 짐승이 아닙니다. 깊은 산중에 있느냐고 물으시면 아니라고 해야겠습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속에는 있다고 말해도 되겠네요.
얼룩소도 그 이름으로 부른다기에 소를 닮도록 그려보았습니다.
꼬리가 날카로운 칼날 같아서 ‘이우’가 제 꼬리를 핥으면 혀에서 피가 흘러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제 피를 제가 핥으면서 ‘맛있다 맛있다’하느라, 제 목숨을 끊는 일인 줄 모르고 죽도록 그 맛을 탐하는 어리석은 짐승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들 사는 꼬락서니를 이야기하고 싶은 옛 선지식의 마음이 ‘이우’를 태어나게 했지 싶습니다.
그 마음 얻어서
어제도 달빛이 좋더니, 오늘 달도 환하게 밝습니다.
달이 좋은 밤, 환한 달빛에 대나무 그림자 소소하여 눈길을 끕니다.
바람결에 대 잎사귀 드문드문 낙엽을 내려놓는 가을입니다.
안 될 것을 일찍 놓아버리는 대나무의 마음이나,
가을 어디에고 달빛을 뿌리는 달의 마음에나 어두운 구석 없습니다.
그 마음 얻어서, 가을을 살게 되시기를...
감사합니다
연세 많으신 수녀님께 손수 바느질해서 만드신 열쇠 주머니와 지갑을 받았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보낸 선물입니다.
솜씨가 부끄럽다는 편지도 함께 있고, 각국 동전도 몇 개 들었습니다.
침침한 눈으로 한 땀씩 바느질하셨을 것 생각하면 송구스럽고, 동전 칸에 넣을 동전을 뒤지시는 작은 방안 풍경을 생각하면 감각 있으신 노 수녀님의 은근한 눈웃음이 떠올라 행복해집니다.
여기서나 이국에서나, 세상의 그늘진 곳에 상처받고 사는 이들과 함께 하신 분입니다.
그 마음을 우리에게까지 나누어 주시다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귀한데 쓰겠습니다.
그러시라는 가을
들에서는 늦사과 향이 속속들이 과육에 배어들고, 붉은 사과 빛깔이 갈수록 고와지는 가을.
절기는 입동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 영글지는 못하고 찬바람을 맞는 열매들은 걸음도 마음도 바빠져 있을 겁니다.
그래야지요. 아직 조금 시간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그만큼은 열심히, 부지런히, 향기롭고 아름다워져야지요. 그러시라는 가을입니다.
소중한 일원
기형으로 태어난 아기처럼, 기형으로 자라 가을을 맞은 감도 슬펐습니다.
모양의 다름만 있을 뿐 곱게 삭으면 맛있는 감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다 익기 전에 버림받기도 일쑤입니다.
불운을 비관하지 않고 늦가을 맞은 기형 감을 깎아, 곶감 널어 말리는 채반에 잘 모셨습니다.
가을 수확의 소중한 일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조용히 익어가는 감의 얼굴에는 그늘이 보일 리 없습니다.
편견이 많은 사람의 마음이 오히려 문제겠지요!
기형 감이 제 위로를 뭐라 하며 받았을지, 잠시 궁금합니다.
거기서, 다시
모과를 잊고 있었습니다.
뒤란에 모과를 입동 껏 잊고 있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 찾아가 보니,
모과들 대부분 땅 위에 내려와 있습니다.
떨어지며, 무서웠을까?
행복한 귀의였을까?
입동의 뒤란에 모과 덩이들 즐비합니다.
사람도 무덤자리가 마지막 자리일 수 없는 것처럼,
향기로운 모과의 마지막 귀의처도 거기일 리 없습니다.
모과도 거기서 다시 길 떠나고 있습니다.
깊고 오묘한 관계
가을 깊어지도록 꽃을 보았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 피우려고 하늘과 땅에 속한 수많은 힘들이 다 거들었다는 건 잘 아시지요?
햇볕과 비와 바람뿐 아니라 달과 별과 흙속의 거름기와 땅 위의 벌레들조차 힘을 보태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지요.
꽃이 시들어 말라 흙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길에도 내내 하늘과 땅에 속한 그 힘을 빌리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깊고 오묘한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