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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아삭한 단감을 누가 보냈을까?

단감 잘 받아먹고는 꼰대질만 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전생에 가정주부였는지 주방일도 좋아하고 칼질도 잘한다. 아내 대신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 맛은 프로주부를 따라가지 못하니 불량 가정주부였을 듯하다. 맛으로 승부를 못 내니 음식재료 다듬을 때 칼을 사용하는 주방보조 작업은 내 차지다.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 여행길에 시장 구경을 빼놓지 않으며 현대식 시장 구경도 좋아한다. 하지만 코로나 창궐 이후 모든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택배로 배송하니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없어져 아쉽기만 하다.

‘밀양産’ 단감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 내가 주문하지 않았으나 발송자와 수신자 모두 ‘내 이름’이다. 가끔 집사람이 내 이름으로 등록된 사이트에서 물건 구매를 하므로 집사람이 주문했거니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박스를 열어 감을 깎았다. 단감이 달고 아삭하다. 달아서 단감인가?


단감 먹으며 이야기하다 보니 아내가 주문한 단감이 아니었다. 내가 주문한 물건이 아니라고 하자 아내는 ‘대봉감’을 주문했단다. 혹시 ‘대봉감’이 ‘단감’으로 둔갑하여 잘못 배달되었는지 확인해 보곤 아내 물건은 아직 배송되지 않았다고 한다. 부부는 서로가 주문한 물건으로 생각하며 단감을 맛나게 먹은 것이다.

‘운송장 확인해 보세요.’

‘확인했는데 발송자와 수신자 모두 내 이름이야.’

이상하다. 밀양에는 지인이 없는데..., 간혹 지인들이 여행하다가 지역특산물을 구입해 보내는 경우도 있다.

‘조금 기다려보면 보낸 사람이 연락할 거야.’

시간이 흐르고 다음날이 되었으나 단감 보냈다는 연락도 없으니 아는 사람이 보낸 것도 아닌 듯했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다.

단감박스는 버렸지만 사진 찍어놓은 송장을 다시 읽어보니 발송자가 모르는 사람이다. 송장을 잘못 읽어 발송자와 수신자 모두 ‘내 이름’으로 인쇄되어 있는 줄 착각했다. 받는 사람 주소와 이름은 정확하다. 다른 집으로 배송된 물건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발송자는 단감을 판매하시는 분인 듯해서 문자를 보냈다.

‘수신자는 ooo이며 발송자는 ***입니다. 저는 발송자를 모릅니다. 실제 발송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참고로 운송장 사진을 함께 보냅니다.’

문자를 세 번이나 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어느 분이 보내신 것인지 모르겠으나 보내주신 단감은 아삭아삭하고 맛있다.

‘단감 보내신 분은 자수하여 광명 찾기 바랍니다.’

보낸 분이 누구인지 모르면 남은 단감을 맛나게 먹기 어려울 것 같다.

** 단감 보내신 범인을 찾기 위해 위의 내용을 지인들에게 공개하려 했으나, 전화 한 통으로 나머지 부분이 추가되었다.


단감 받은 지 4일이 흘렀다. 한 군데 지피는 데가 있기에 연락은 해야겠는데 확인하기 거북스럽다. 예전에 감을 보내준 지인이 발송자일 가능성이 높으나 ‘단감’ 이야기를 꺼내면 오해 살까 고민 중이었다. ‘시치미 떼고 안부만 묻고 끊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단감 보냈냐고 물어볼까?’

오늘은 전화해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거짓말같이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에 그의 이름이 표시되자마자 ‘단감을 무단으로 발송한 범인’을 검거했다고 확신했다.

‘오랜만에 전화드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확인 전화하려 했지.’

‘아, 단감이요?’

‘그래, 지금 범인을 찾고 있는 중인데 아직 못 찾았어. 발송자에게 연락해도 답이 없어서 유력한 용의자가 당신이구나 생각했지. 오늘 전화하려 했어. 아무튼 범인을 잡았으니 잘 먹을게’


영광원자력발전소에서 같이 근무했던 친구다. 자주 야단맞았던 친구로 이제는 중견간부가 되었으나 그와 나는 예전 관계인 팀장과 직원처럼 통화를 이어나갔다.

‘요즘 발전소에 일이 많아 전화드리지 못했습니다. 변압기에 문제가 생겨 발전기까지 점검하고 있습니다. 점검해보니 보호계통이 작동해 발전기는 문제없습니다.’

‘고생 많이 하겠네. 그런 일은 전기쟁이가 퇴직할 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하는 희귀한 일이야. 나는 겪어보지 못하고 퇴직했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가끔 발생하지.’

‘맞습니다. 이 발전소 내에도 경험자가 없는 듯합니다.’

‘몸이 고생해도 안전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다.’

‘네, 힘들어도 안전사고가 아니니까 다행입니다.’

‘전기 분야는 특히 감전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작업 전 차단기 조작이 확실한지 재차 확인해야 해. 예전 영광에서 근무할 때 차단기 조작을 잘못해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뻔했었지. 운전원이 신입직원인 경우에는 특히 조심해야 해. 화력은 요즘 차단기 관리 잘하나?’

‘화력발전소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직원들에게 작업 전 차단기 조작 상태 확인하라고 수시로 주지 시키고 있습니다.’


단감 잘 받아먹고는 꼰대질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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