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 크로아티아(Croatia)

스플리트의 노을을 봤다면 아마도 통곡했을 듯하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비행길은 알프스산맥 위를 지나게 된다. 구름 없는 맑은 날이었기에 만년설로 덮힌 알프스산맥을 조감하는 호사를 누렸다. 비행기 가는 방향 왼쪽 자리를 예약해야 한다. 두브로브니크는 차량이 필요치 않은 관광지라 공항에서 숙소까지 우버를 이용했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크로아티아에서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는 뛰어난 풍광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는 종합편성TV 프로그램인 ‘꽃보다 누나’를 촬영 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촬영 장소 맞은편 숙소는 여행 고수 작은 아이가 아빠의 환갑 생일선물로 선택한 곳으로 두브로브니크 관광 홍보 사진을 보면 묵었던 숙소를 찾을 수 있다. 성벽 내에 지어진 古屋(고옥, 1000년?)이라 계단으로 4층까지 올라가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유리창 속 전망이 백만 불짜리 숙소였다. 창문 열고 베란다에서 차 마실 때는 성벽투어 다니는 사람들과 눈을 맞출 수 있고 성벽 바로 너머는 항구가 맞닿아 있어 옥색 바다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눈을 멀리하면 케이블카가 올라 다니는 높은 산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자동차 출입이 금지된 두브로브니크 성내 풍경은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마을 주민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빵집만 부지런히 문을 열고 음식점은 조금 늦다. 창문 밖 레스토랑에서 항구와 맞닿은 옥외 테이블 정리로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하면 브런치 먹을 시간이다. 맑은 하늘, 바다와 커피 내음, 갓 구운 빵 맛이 잘 어울린다. 성내는 좁아 하루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지만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는 없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면 낚시꾼 옆에 앉아 물고기 먹을 차례를 기다리는 고양이와 장난 치거나, 그것도 지루하면 등 뒤 숙소에 가서 낮잠을 자면 된다.

관광시즌이 끝나가기에 관광객이 적당히 있어서 다행이다. 붐비는 것과 줄서기를 싫어해 아무리 맛있는 집이라도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면 가지 않으나 대부분 식당에서 예약을 받으니 맛집 순례도 문제없고 친절한 것은 관광비수기의 덤이다. 생일기념이라고 집에서 맛나게 숙성시킨 하우스 와인을 공짜로 내어준 주방장이 성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좁은 골목길을 다닐 때는 숨을 멈추고 배를 집어넣고 옆으로 게걸음을 하고 다녀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 떠드는 것은 동, 서양 구분이 없는 듯하다. 운동장이 보이지 않는 조그마하고 재잘대는 학교를 지나 한국 유명 여배우가 낙조를 보고 눈물 흘렸다는 해안가 절벽 중턱 '부자 카페(Buza Bar)'에 앉았다. 일몰 1시간 전에 빈자리가 모두 채워졌으니 낙조로 유명한 장소가 맞는가 보다. 붉게 타는 노을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눈물 나지 않는 것은 내 감정이 메말랐거나, 유명 여배우가 이혼 후 외로움을 타는 중이었을 거라는 합리적 생각이 든다. 아무튼,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나 바로 옆자리 미국 아가씨도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


스플리트(Split), 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까지 버스를 이용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트렁크 하나당 이 천 원 정도 돈을 받고 태그를 붙여주며, 기사 두 명이 운전을 교대하는데 아마도 안전규정을 준수하기 위한 듯하다. 중간의 보스니아 국경은 여권만 쳐다보는 수준의 형식적 국경이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도 버스를 이용했는데 검문이 없었고 안내판만이 국경임을 알 수 있었으나 아마도 보스니아 내전 후유증을 아직도 겪고 있는 듯했다.

스플리트 가는 길은 산자락과 해안을 휘감는 도로의 연속으로 만약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차량 진행 방향 왼쪽에 앉는 것이 좋다. 평지 없는 동네, 산 아니면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 지 약 4시간, 꽤 규모 있는 도시인 스플리트에 도착했으나 관광객이 말하는 스플리트는 작은 성이며 성내 일정 구역은 두브로브니크와 마찬가지로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어 차량은 필요치 않다.

고성 중심부에 있는 숙소는 밖에서 보면 1000년도 넘어 보일 정도로 고색창연하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걸어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내부는 리모델링하여 현대적이다. 옥상에는 노천 자쿠지가 있고 욕실에는 건식사우나가 설치되어 있다. 와이파이로 작동되는 내, 외부 스피커가 있어 옥상에서 음악을 들으며 와인에 자쿠지를 할 수 있다. 복층 천정에는 유리창이 있어 침대에 누우면 마음껏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국내, 외 여행에서 시장 구경을 빼놓지 않는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항상 활력 넘치는 곳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스플리트는 항구가 있어 어시장도 있으나 규모가 너무 작아 실망했다. 자갈치시장을 상상했는데 동네 어물전보다 조금 큰 규모이며 붉은 도미, 아귀 사이즈가 우리나라보다 작다. 스페인 세비야 시장도 규모는 크지 않았고 분위기도 차분했다. 왁자지껄하게 생기 돌고 사람 냄새 나는 것은 우리나라가 최고다.

전망대가 있는 공원에 올라 스플리트를 둘러보니 산, 바다, 요트,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해안가에 있는 현대식 건물 두 채가 눈에 거슬린다. 아마도 성곽 밖이기에 난개발이 되는듯하며 옥에 티처럼 보인다. 좁은 동네 몇 바퀴 돌고 유람선과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항구카페에 앉아 노을 구경을 한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이 맑아 노을이 화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고 처연한 핏빛이다. 가을을 타나보다. 두브로브니크 노을을 보고 눈물 흘렸다는 여배우가 스플리트 노을을 봤다면 아마도 통곡했을 것이다.

구시가 중심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역사가 깊다. 305년에 세워졌으니 필시 로마 시대 건축물일 게다. 石柱(석주)는 로마 시대 영향을 받은 듯하고 외부로 통하는 통로에는 기념품과 토산품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장 구조는 비잔틴 영향을 받은 듯하다.


스크라딘(Skradin)은 일정에 없던 방문지다. 스플리트에서 라스토케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멀리 기막힌 경치를 발견했다. 해안가 마을마다 항구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으나 스크라딘의 산과 바다, 요트가 어우러진 풍광은 여행일정을 바꿀 만큼 뛰어났다. 바쁠 것도 없으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인포메이션센터에 들렀다. 안내 아저씨가 매우 친절하다. 아마도 우리 가족이 첫 번째 방문자였기에 하루 종일 입이 근지러웠던 아저씨가 풀 서비스를 하는 것 같았다. 스크라딘은 국립공원이 있는 휴양도시이나 여름 휴가지이기에 여행객은 우리 가족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가게는 문을 닫았고 내부 수리하는 곳도 있다. 부둣가 요트 위에서 낚시하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산과 바다, 요트가 어우러졌지만, 두브로브니크나 스프리트와 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다. 바다와 연결된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다. 관광객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시간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더욱 느리고 평화롭다. 인근 계곡에 폭포, 트레킹 코스가 있고, 고성 등 문화 유적지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방문해 낚시 라이선스를 구매해서 낚시 하고 느린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라스토케(Rastoke), 스크라딘에 들렀기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라스토케까지 밤 운전을 해야 한다. 요정의 마을이라는 라스토케는 계곡 깊은 물방앗간 마을이다. 가로등은 없고 왕복 2차선 도로에 절벽 길도 있다. 마을을 제외한 도로의 제한 속도가 90Km이지만 지리에 익숙지 않아 가끔 따라붙는 차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 밤에 도착한 라스토케는 우렁찬 물소리가 가득하다.

요정의 마을답게 주택들은 아담하고 물소리만큼 경치가 대단하다. 숙소는 200년 된 물방앗간을 개조했기에 물 위에 떠 있는 셈이고 계곡에는 팔뚝만한 송어가 노닌다. 정원에서 나무다리를 건너면 바비큐 시설과 원두막이 있는 우리가족 전용 섬이다. 200년 된 숙소, 바비큐 시설과 송어가 뛰노는 계곡이 있으니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물방앗간 마을답게 근처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아름답지만, 근처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있기에 명함 내밀기 어려워 보인다.

바비큐 시설이 있어 소고기, 돼지고기, 채소, 과일 그리고 크로아티아 최고 맥주라는 ozujsko도 넉넉히 샀다. 언어소통이 시원치 않아 인터넷 사진을 보여주고 어렵게 구한 소고기 등심은 마블링이 없어 맛이 없었으나 돼지고기 삼겹살은 참나무 향이 배어 훈제 햄과 삼겹살 중간 정도의 기막힌 맛이 났다. 막내가 삼겹살로 유명한 약수동을 이겼다는데 나는 아직 약수동 삼겹살을 먹어보지 못했다. 깊은 맛의 ozujsko도 좋은 맥주라 크로아티아에 있는 동안 ozujsko만 마셨다.


플리트비체(Plitvice), 웅장한 폭포와 어울리지 않게 작은 규모의 화장실과 안내소가 있는 공원 입구는 잘못 찾아왔나 할 정도로 아담하다. 트레킹코스는 2시간에서 8시간까지 다양해 체력에 맞는 3~4시간 코스를 선택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플리트비체 상징인 빅폴의 신비와 만난다. 나이아가라 폭포 높이가 55M인 데 반해 빅폴은 78M,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물줄기를 쏟아낸다. 나이아가라는 수량과 낙차에서 사람들을 압도하지만, 빅폴은 태고의 원시 세계라는 느낌을 준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신비한 배경들은 플리트비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니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면 된다.

크로아티아는 석회석이 많은 곳이다. 남부에 있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중부권인 라스토케까지 석회암이 많은 산, 건물은 대리석으로 지어졌고 석회성분이 많은 지형이라 호수와 계곡물이 에메랄드빛이다. 16개 호수와 크고 작은 90개 폭포가 있다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보행자가 걷는 길과 다리를 흙과 나무로 만들어 인공이 배제된 자연 속을 걷는 느낌이다.

11월 8일, 산속 기온이 걱정되어 중무장하고 갔지만, 한국 늦가을날씨와 비슷하다. 한국은 단풍이 한창이라는데 이곳은 아직 단풍이 화려한 색으로 갈아입지 못했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멋질 것 같다. 계곡은 침식작용으로 깊고 수량도 풍부하다. 크고 작은 폭포와 호수가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있어 힘든지 모르게 선착장까지 도착했다. 일본, 한국, 중국단체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인 듯 오랜만에 소란함과 만났다. 오리, 송어가 노니는 맑고 푸른 kozjak호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건너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빅폴 전망대까지 걸어가거나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크로아티아는 도시도 깨끗하고 자연도 깨끗하며 관광국가라 그런지 주민들이 친절하고 인상이 좋다.


모토번(Motovun), 트러플(송로버섯)은 푸아그라, 케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고 Motovun은 트러플 산지로 유명하다. 다음 행선지인 자그레브 공항으로 가는 길은 아니지만 트러플 요리를 맛보고 가기 위해 여행일정에 있는 목적지다. 라스토케에서 160Km정도 떨어져 있으나 길이 좁고 험해 세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공기도 맑고 주변 경관이 뛰어나 피곤함은 없다. 모토번은 산꼭대기에 있는 조그만 성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아래 펼쳐진 농장과 빨간 지붕 집들이 스위스를 연상시킨다.

마침 트러플 축제 기간으로 훈련된 개와 함께 트러플 캐기 체험을 할 수 있으나 다음 일정이 음식체험이기에 특산품인 트러플 소금, 트러플 오일, 트러플 페스토, 트러플 슬라이스, 트러플 감자칩 구매에 만족해야 했다. 트러플을 엄청나게 뿌려준다는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된 음식점, 물론 가격은 높으나 비쥬얼과 맛, 서비스가 뛰어나다. 트러플 풍미도 뛰어나지만,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고 가끔 눈으로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2시간 반 만에 디저트인 트러플 아이스크림을 끝으로 식사가 끝났다. 1인 식사비가 크로아티아 GNP 1%에 해당한다. 라스토케에서 소고기, 돼지고기로 바비큐를 해 먹는데 1인 식사비용이 10,000원 정도였으니 엄청난 비용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에서는 유적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자연을 즐겨야 하는데 유적지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 인터넷을 뒤져 알고 넘어가는 수고를 해야 하기에 맑은 공기로 숨 쉬고, 푸른 하늘과 깨끗한 자연으로 눈 호강하며, 좋은 음식으로 여행의 풍미를 더 하는 데 신경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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