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 스페인(Spain)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 때문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포르투갈 라고스에서 스페인 세비야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한강 정도 규모의 강을 두고 국경이 나뉘나 경찰도 없고 출입국 사무소도 없다. 강북에서 강남 가듯 국경을 넘는다. 강 하나 사이로 차창 밖 풍경이 포르투갈과는 사뭇 다르다. 구릉 많은 포르투갈은 노는 땅이 많았으나, 스페인은 유럽에서 면적이 가장 넓고 농업 국가답게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대규모 경작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 오렌지류로 보인다. 그만큼 기후가 좋다는 傍證(방증)이다.

나주 버스 터미널 규모로 정겨운 곳에서 강남 버스 터미널 정도의 혼잡한 곳에 도착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나 똑같은데 분위기는 외국에 첫발을 디딘 느낌이다. 스페인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도둑놈으로 보이나 포르투갈 시골에 살다 스페인 대도시에 도착하니 정신도 없고 사주경계는 불가능해 보인다. 한적한 포르투갈이 휴양지라면 스페인은 관광지라 해야 할 것 같다.


세비야(sevilla), ‘세빌리아의 이발사’ 무대다. 세비야 역시 성곽도시로 성내에서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성내에 있는 숙소 역시 구옥을 리모델링한 전형적인 유럽식 구조로 대문을 들어서면 정원이 나온다. 아파트 식으로 개조해 모두 열 가구 정도가 살게 되어 있다.

포르투갈 전통음악 장르인 ‘파두’도 보고 듣고 싶었지만 패스했으므로, 스페인 전통인 플라밍고 공연을 보기로 했다. 집시들 음악과 무용인만큼 애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강렬하기도 하다. 50유로, 꽤 괜찮은 자리를 안내받았다. 별도 식사를 주문하지 않으면 전통 음료인 상그리아 한 잔을 준다. 예상외로 객석은 가득 찼고 대충 세어보니 150여 명이 될듯하다. 7명으로 이루어진 공연 팀이 열정적인 공연을 한다. 한 시간 반 정도 땀 흘려 노래 부르고 춤을 춘 공연 팀에게 절로 박수 세례를 보내게 된다.

그들 춤을 보고 있다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플라밍고와 탭댄스 스텝이 비슷한데, 어느 것이 원조일까? 아니면 사돈의 팔촌도 아닌 별개 관계인가? 귀국 후 ‘플라밍고와 탭댄스 관계’를 검색했더니 의미 있는 내용은 없었다. 예술에 대한 무식이 만들어낸 의문이었나 보다.


세비야 대성당은 숙소 옆에 있다. 이슬람식과 르네상스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대성당 안에는 콜럼버스 무덤이 있는데, 이탈리아인인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한 것 까지만 알기로 하고 호기심을 누르기로 했다. 성당 내 높은 종탑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세비아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35층을 계단이 아닌 슬로프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슬로프 구조로 되어 있는 이유는 말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며 실제 높이는 일반건물 35층보다 낮으므로 도전해볼 만하다.

대성당부터 스페인광장까지 관광 마차를 운행한다. 말들이 힘에 부친 지 연신 침을 흘리며 다닌다. 말똥 냄새도 독하지만, 말이 불쌍해 도저히 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페인광장까지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기로 한다. 길을 따라 설치된 깊은 垓子(해자)로 둘러싸인 건물은 분명 예전에는 성이나 관청 정도 역할을 했을 것이나 현재는 세비야대학이다. 물론 학생들이 오가는 정문에는 길이 있지만 담 넘어 도망가기 어려운 구조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도망가지 않고 면학에 정진할 것 같다. 세비아대학을 지나면 공원과 광장이 나타난다. 스페인광장을 감싸고 있는 건물은 최근(약 100년 전)에 만들어졌다. 붉은 벽돌 건물로 수백 미터 기다란 회랑이 인상적이다. 회랑 아래에는 걸어 다니느라 지친 발을 쉬게 하며 노을을 볼 수 있도록 타일로 조각된 벤치가 많다. 스페인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뒤엉켜 있어 사진 찍어달라며 핸드폰을 건네면 ‘땡큐’하며 뛰기 시작한다니 조심해야 한다.


세비야 왕궁은 이슬람 양식과 기독교 양식이 혼합된 궁전이다. 천장 문양을 보면 이슬람이고 아치 형태 기둥을 보면 기독교이다. 이슬람 지배로 인해 혹독한 시기를 보냈겠지만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건축물이 태어나 후손들이 관광으로 편하게 먹고사는 아이러니가 생겨났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현대식 건물로 1층은 현대식 시장이며 옥상은 기이한 형태의 산책로 겸 전망대이다. 전체 모습은 버섯 여러 개가 군집해 있는 형상이다. 건물을 짓다 로마 시대 유적이 발굴되어 이를 보존하기 위해 메트로폴 파라솔을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가이드 없이 다니는 여행의 단점이다) 아무튼 지하에는 발굴 유적을 보존해 놓았다. 유적과도 같은 세비야의 건축물 사이에 초현대식 구조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렇게 이질적이지 않다. 건물이기는 하나 ‘초현대식 구조물’이라 표현한 것은 하나의 예술작품 같은 조형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고 미국 오렌지에 비해 크지 않지만, 가격은 무척 싸고 맛도 새콤하고 달다. 올리브도 유명하지만, 스페인의 대표 음식은 역시 하몽이다.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내는 스페인 전통음식으로 거의 모든 음식점이 취급한다. 아침 식사 때 이용하는 동네빵집도 하몽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점심, 저녁을 먹는 음식점 메뉴에도 빠지지 않는다. 길거리 정육점, 핫도그 가게, 올리브가게, 슈퍼마켓에서도 하몽을 판다. 슈퍼마켓에도 돼지 뒷다리가 걸려있고 가격은 100~200유로 정도 하며, 대부분 음식점에서도 뒷다리를 걸어 놓고 있다. 하몽이 들어간 음식은 조금 비싸고 돼지비계가 있기에 아침 식사로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을듯하나 입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침에 하몽샌드위치를 먹었는데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것 같으나 짜게 염장했기에 고혈압 환자에게는 좋지 않은 음식이다. 스페인 음식 값은 포르투갈보다 조금 비싸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과일, 우유 값은 거의 비슷했다. 포르투갈과 같이 문어요리와 생선구이, 소고기 등 원재료는 비슷했고 인공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자연의 담백함을 지니고 있어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도토리를 먹였다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는 냄새 없고 부드러워 소고기와 구분하기 어렵다.


세비야 성곽 내 구도심은 골목길이 발달되어 있다. 예전에는 넓은 길이었겠지만 마차 한 대가 지날 정도의 좁은 골목인데 사람들을 피해 자동차가 잘도 다닌다. 골목길을 다니는 차들은 대형차는 거의 없고 경차와 소형차 수준이다. 숙소로 가려면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골목을 지나야 한다. 아침마다 골목골목 물청소를 하기에 선진국답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화장실 후진국이라 물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 좋은 곳이라 공원에서 밤늦게까지 술판 벌이는 사람들이 많으며, 음식점 문을 닫으면 딱히 소변 볼 곳이 없어 취객들은 골목길을 찾아 볼일을 봐야 한다.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도 예외가 아니어서 취객들 소변 테러로 어떤 날은 실개천을 이루는 날도 있었다.


코르도바(Cordoba), 코르도바는 세비야에서 기차로 1.5시간 걸리는 옆 동네다. KTX가 아닌 전철급 속도니 그다지 먼 동네가 아니라 아마도 서울에서 대전 정도 거리가 될듯하다. 카탈루냐 분리 독립 시위 여파인지 기차 승강장에서의 보안검색이 마치 공항 출국장 같아 살짝 긴장했다. 만약 테러가 발생한다면 대피로가 어디일까? 본능적으로 이곳저곳 지형지물을 살피게 된다.

일부러 창가 자리 기차표로 구매했지만 먼저 앉아계신 할머니가 자기 자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승차권을 보여주며 윈도우사이드가 내 자리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서로 언어소통이 되지 않으니 더 이상 이야기해도 되지 않고 승무원에게 이야기해서 자리를 바꾼다 해도 그리 즐겁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하게 불편한 시간은 더디 흐른다. 이래서 노인네들이 고집 세다고 욕을 먹는가 보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코르도바 Alcazar(왕궁)는 왕궁이자 요새로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워 Real Alcazar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코르도바는 스페인에서도 이슬람 흔적이 많은 도시다. Real Alcazar는 이슬람식으로 건축되었고 정원도 이슬람 풍이다. (알람브라 궁전 정원과 유사한 형식이라 하는데 알람브라를 보지 못했다) 유럽여행은 성지순례처럼 성당을 많이 다니게 되어 시간이 흐르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풍경이 뒤죽박죽되어 사진을 봐도 어느 나라 풍경인지 모호할 때가 많지만 세비야, 코르도바의 유적들은 건축양식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세비야 골목길과 지린내에 익숙해질 무렵 바르셀로나로 이동해야 한다. 큰 아이는 휴가 기간이 끝나 귀국길에 올랐다. 애를 가지면 한동안 어려워질 해외여행,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온 가족 해외여행에 동참한 큰아이가 고맙다.

작은아이와 큰아이 모두 영어는 잘하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커다란 지장 없이 소통하는 큰아이에게 물어봤다. ‘언제 배웠니? 잘하는데.’

‘생존에 필요한 단어만 알아요. 뭐라 뭐라 떠드는데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원하는 음식과 술이 나왔고, 서로 웃고 고맙다는 인사도 한다. 어학 능력이 아닌 눈치 백 단?


바르셀로나(Barcelona)까지 비행기로 이동했다, 카탈루냐 분리 독립 시위 중심이 바르셀로나였기에 계속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지만, 시위 소식이 없어 안도하며 비행기에 올랐고 도시는 평온했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 때문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우디 성당) 인근 호텔에 묵었다. 가우디 성당은 오래되거나, 화려하거나, 희귀하거나 등의 수식어가 붙는 문화유적을 잠재워버릴 만한 건축물이며 아직까지 봐왔던 건축물의 경이를 뛰어넘는다. 1883년부터 계속 짓고 있는 가우디 성당은 입장료를 내지 않고 볼 수 있는 외관만으로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당일 입장권이 매진되었으나 작은 아이 수족처럼 움직이는 네덜란드 친구에게 SOS를 쳤더니 여행사가 미리 확보해 놓은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다. 국제공조 덕에 입장료는 비싸지만(50유로) 가이드와 함께 입장한 가우디 성당은 죽기 전 봐야 하는 건축물이다. 석조건물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특이한 구조의 내·외관은 사람이 설계하고 만들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당 내부 풍경을 시시각각 바꾸며 조각상과 구조물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성당을 세밀히 관찰하려면 1주일 정도 봐야 할듯해서 퇴장하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구엘 공원도 가우디 작품이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가우디 풍임을 알 수 있다. 경제적 후원자였던 구엘이 의뢰하여 조성된 공원으로 처음에는 고급 주택단지를 만들려 했지만, 돌이 너무 많고 경사가 심해 실패했단다. 고급주택이 지어졌다면 입장하지 못했을 텐데 다행이다.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구엘 공원은 전망 좋은 공원이자 하나의 조각품과 같은 곳이다.

라 페드레라 라는 이름의 카사 밀라(casa mila)는 아파트 같은 주거공간으로 만들어 졌으며 현재는 가우디 기념관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건물 외관은 손으로 주물러 놓은 듯한 가우디 특유의 곡선미를 자랑한다. 옥상에는 개성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멀리 가우디 성당 불빛이 보인다. 가우디가 생선 뼈, 나무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물에 응용했다는 여러 흔적을 전시한 조그만 가우디 박물관 같기도 하다. 내부의 공간배치와 조형물도 이해하며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곳 역시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일정 관리하느라 애쓰는 작은아이 생일선물로 롱부츠를 사줬다. 물론 쇼핑하는 데는 따라다니지 않고 돈만 지불했다. 작은아이와 집사람은 몇 군데 상점을 기웃거렸고 한 곳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상점 앞 벤치에 앉아 바르셀로나 야경을 구경하는 것도 지쳐 상점에 들어가 부츠 고르는 진도를 점검했다. 작은 아이는 결정 장애(?)를 갖고 있어 자기 물건을 사지 못하거나 구매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합리적 구매를 위한 것이라지만 소요시간을 고려하면 엄청 불합리한 구매행위를 하는 것이다.

들어가 보니 스타일은 결정되었고 종아리 폭에 대해 갑론을박 중이다. ‘추운 날씨에 겨울 바지를 입고 신어야 하니 종아리 폭이 넓어야 한다.’ ‘아니다, 스키니를 주로 입으니 현재 입고 있는 바지를 기준으로 사면된다.’ 두 사람 모두 호리호리해서 언쟁이 필요치 않은 사항인데도 오래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50kg을 넘지 않는 몸매이기에 종아리 폭이 좁은 것을 사도된다 하고 논쟁을 끝냈다. 이렇게 바르셀로나에서의 금쪽같은 한 시간을 롱부츠와 교환했다. 내일은 크로아티아로 이동만 하면 되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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