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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南道 人心(남도 인심)

예술의 고향 남도 땅에 와서 남도 인심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나주에 내려온 지는 1년여이나 전라남도 땅을 밟고 산지 칠 년이 넘었다. 태어나 자란 서울과는 말씨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판소리는 연배 있는 어른들만 할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아이들도 창을 배우는 학원에 다닌다. 藝鄕, 남도.


대부분의 발전소는 냉각수와 부지확보, 님비현상 등의 문제로 바닷가를 끼고 있는 오지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발전소 부근도 도시화로 여건이 좋아졌지만 30년 전에는 부임지로 가는 길이 귀양길 같아 눈물을 흘린 이들도 많았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영화, 연극, 병원, 학교 등 문화혜택 면에서는 불리해도 음식 문화면에서는 많은 혜택을 보고 있고 지역특산물에 길들여진 입맛은 고급화되어 있다. 고리원자력에 근무할 때는 기장 붕장어(아나고)회, 대변 멸치회를 밥처럼 먹었다. 울진원자력에 근무할 때는 귀하다는 자연산 송이, 영덕 대게, 복어회를 마음껏 먹고 다음날 해장으로 곰치국을 먹을 수 있었다.


이후 영광원자력에 6년여 정도 근무했고 현재는 나주에 1년을 살고 있으니 7년째 남도 땅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영광에 있을 때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남도 향토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매주 복권을 구입하던 직원들을 포섭하여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할 테니 남도에 살고 있을 때 남도음식을 먹으러 다녀야 한다고 법성포 굴비정식과 덕자찜, 풍천장어, 담양 암뽕순대, 송정 떡갈비, 목포 민어회, 여수 새조개, 백수 백합죽, 순천 피조개 등 지역특산물을 먹으러 다녔다.

나주에 내려와서도 맛있다는 음식점을 찾아다닌다. 알싸한 홍어는 일상적 음식이라 광주와 나주의 어느 한정식집이나 기본 메뉴로 나오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홍어 맛을 보기 위해서는 영산포 홍어거리를 찾아야 한다. 흑산도 홍어가 귀하니 대부분의 홍어집에서는 아르헨티나 또는 칠레산 홍어를 삭히고 있지만 그래도 홍어거리의 홍어 맛이 일품이다. 이외에 짱뚱어탕, 무안의 세발낙지. 목포 꽈배기(웬 꽈배기? 이 지역에서는 목포 꽈배기가 고유명사화될 정도로 유명하다. 미친놈이라 할지 몰라도 휴일에는 시간이 남으니 꽈배기 먹으러 목포 가는 멋도 있다.) 나주곰탕, 수구레국밥(요즈음 분들은 수구레를 모른다. 수구레는 소를 도살한 후 가죽을 벋길 때 묻어 나오는 기름도 아니고 고기도 아니고 가죽도 아닌 것인데 소고기가 귀한 시절에는 이것으로 국을 끓였고 60년대 중반인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어렸을 적에 미군부대에서 신다 버린 군화를 양잿물에 불려 수구레 국을 만들어 팔았다 하여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었다.), 구진포 장어, 함평 한우, 무안 짚불구이 삼겹살 등 서울에서 일부러 차를 몰고 와서 먹어야 되는 음식을 맛보러 다닌다.


남도는 예전부터 음식문화가 발달된 곳이기도 하지만 인심도 남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름 없는 음식점에 들어가도 기본 반찬이 너무 풍성해서 모두 먹을 수 없을 정도지만 추가 반찬을 더 달라고 해도 인상 쓰지 않는다. 남도 사투리가 아닌 서울 말씨로 ‘이것 맛있는데 조금만 더 주세요!’ 한마디면 가격이 꽤 나갈 것 같은 반찬도 내어 놓는다. 광에서 인심이 난다고 해산물과 농산물 먹거리가 풍성한 지방이라 그런지 맛도 그렇지만 음식 인심도 전국 최고일 듯하다.

영광에서 낚시할 때는 농부들이 새참을 먹을 때마다 같이 먹자고 손을 잡아끌어 못 이기는 체 따라가 신세 지곤 했는데 나주에서는 새참을 얻어먹지 못했다. 인심이 사나워져서가 아니라 요즈음에는 영농 주식회사에서 경작해주니 농부들 보기 힘들어 새참을 얻어먹지 못한다.

농부님들 대신 사무실 청소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정성스레 준비하신 진귀한 음식들을 맛보고 있다. 나주가 고향이신 아주머니는 혼자 사는 기러기가 딱해 보였는지 손수 만드신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챙겨주신다. 철마다 집에서 기른 방울토마토, 고구마, 땅콩 등 농작물을 맛보게 해 주신다. 이외에 구운 달걀도 직접 만들어 제공해 주시고 하루 한 수저씩 먹으면 좋다는 생 들깨도 챙겨주신다. 봄에는 직접 채취해서 덖은 수제 냉이차를, 여름에는 시원한 식혜, 추석 즈음에는 수정과를 갖고 오신다. 엊그제는 생강을 저며 울금 가루를 묻힌 울금 생강편을 주셨는데 이것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것이다. 아주머니께서는 이외에도 오메기떡, 모싯잎 송편 등 수없는 음식물을 제공하고 계신데 내가 다른 복은 없을지 몰라도 먹을 복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남도의 인심이 후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보니 아주머니보다 일찍 나왔는데 요즈음에는 아주머니의 출근시간이 훨씬 빠르다. 제가 불편해할까 봐 아주머니께서는 4시 30분에 출근하셔서 내 방을 정갈하게 청소하고 정리해 놓는다. 이것도 남도 인심의 단면이 아닐까 한다.

제가 아주머님께 해드리는 것은 보는 책을 빌려 드리는 것 밖에 없다. 일찍 출근하시는 아주머니가 고마워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을 나눠 보기 시작했는데 아주머니께서는 그것이 고맙다고 먹을거리를 챙겨 오시며 나는 매일 얻어먹기 미안해 가끔씩 생기는 소품들을 선물해 드린다. 진귀한 음식, 책, 선물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어 예술의 고향 남도 땅에 와서 남도 인심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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