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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열정은 고용 절벽도 넘는다.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지만 기술직 전기 직군으로 입사

by 물가에 앉는 마음

기술개발실에서 근무 후 보직이 바뀌었으나 나주로 내려오면서 공교롭게도 기술개발실과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다. 기술개발실 식구들은 아직도 출근하면서 내 사무실로 찾아와 인사하고 본인 사무실로 간다. 내가 그네들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라면 출근을 빨리 하는 것 밖에는 없다. 빨리 출근하는 직원은 6시 10분경에 출근하고 7시 15분에 출근하는 O팀장이 인사오지 않으면 출장을 갔나?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 처 직원들이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왜 저 친구들은 출근하자마자 자기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우리 처장에게 인사하고 가지? 오후 4시 간식 먹는 시간에는 많던 적든 반을 떼어 갖다 주게 하니 그것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출장 갔다가 호두과자를 사 오는 직원들도 기술개발실 몫까지 챙겨 온다. 물론 기술실 직원들도 간식거리가 생기면 어김없이 우리 처로 반을 갖고 온다. 기술개발실을 떠난 지 1년이 넘었지만 같은 층, 같은 식구로 살면서 불편했던 점이 하나도 없다. 회사 업무도 이런 식으로 하면 막힐 것도 없고 안 될 것이 없을 듯하다.


부서는 달라졌어도 내가 기술실 식구들을 대하는 것이나 호칭도 예전이나 같다. 작년 12월 초,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야 하는데 나서는 직원이 없었다. 우리 처 직원을 시킬까 하던 차에 아직도 나를 보면 깍두기처럼 90도로 인사하는 기술실 직원 K를 복도에서 만났다. ‘K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사무실에 장식을 했으면 한다. 내가 작년에 사다 놓은 장식들이 있으니 찾아보면 있을 거다.’

내 성격을 아는 소대장 출신 K는 10분도 안 돼 찾아와 묻는다.

‘처장님, 어느 곳에 설치하는 것이 좋을까요?’

‘양쪽 부서 직원들이 모두 볼 수 있게 출입구 측에 설치해라.’

‘알겠습니다.’

K는 시원시원한 것이 최대 장점이다. 입사 2년 차 신입사원이지만 소대장으로 군 복무를 했기에 본인에게 재량이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소신껏 처리한다. 또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잘못했다는 등 잔소리하지 않으니 본인이 최대한 노력해서 설치하면 뒷소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설치 후 가서 보니 튼튼하기는 하지만 美的 감각은 없었다. 돼지 불알 옭아매듯 얼기설기 설치해둔 크리스마스 장식에 12월 연말이 되었구나 라는 기분만 들면 된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야단이다. 고용 절벽이라고도 하며 문과 졸업생들 취업난을 빗대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도 생기고 금도끼, 은도끼가 아닌 금수저, 흙수저 논란도 거세다.

K는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우리 회사 입사는 기술직 전기 직군으로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우리 부서에 배치되었기에 면담했는데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친구가 기술직으로 입사했으니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의문사항이 많았다.

‘중어중문학을 했으니 중국어 잘하겠네’

‘네, 조금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기 직군으로 입사했냐?’

‘제대 후 상경하여 노량진 고시 골목에서 2년간 공부해서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나는 직원을 선발할 때 실력보다는 열정을 중요시하기에 K의 전공이 인문학이어도 가르쳐 육성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기술직으로 평생을 일해야 하니 나하고 2년간 일하다가 현장으로 내려가서 실무를 익혀라. 너무 늦으면 현장 업무를 배우기 힘들고 사무실 근무만 하다 보면 나처럼 얼치기 기술자가 되니 내 말을 명심하고 처장이 바뀌더라도 네가 현장 근무하겠다고 면담 요청해라. 네 장래는 네가 책임져야 하니 열정을 갖고 일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부 정책에 의해 K가 입사할 때, 대졸 수준 직원은 관련 기사 자격증과 TOEIC 성적만을 요구했기에 입사하기 어렵다는 우리 회사에 ‘중어중문학 전공’한 친구가 ‘전기 직군’으로 그것도 ‘대졸 수준’으로 입사했다. 적어도 K 사례를 보면 고용 절벽이란 단어가 이해되지 않는다.


예전 분당 본사에서 근무할 때 인턴직원을 채용한 적이 있었다. 지방대학 법률행정학과 전공 남학생이었고 토익점수는 없었다. 면담 결과 spec보다 꿈이 컸다. 천안 이남에 위치한 회사로는 가고 싶지 않고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단다.

‘왜 천안 위에 위치한 회사를 선호하지?’

‘통근 거리가 짧고 전철이 연계되니까요.’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 부산, 제주 등 전국은 물론 해외에도 가야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다른 말은 않고 토익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다.


고용 절벽, 흙수저 논란도 좋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젊은이들에게 노량진 고시촌에 가서 2년 동안 공부해 봤는지 묻고 싶다. 충남 천안 이남으로 가지 않는다면 그에 맞는 기업을 목표로 하여 공부하면 될 것이나 내수만으로 기업활동울 영위하는 대기업은 우리나라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조차도 세계화가 상당 부분 진척된 지금 상황에서 인턴직원 입맛에 맞는 기업이 천안 이북에 위치하고 있으려는지 의문이다.

이른바 ‘지식인 노마드’ 시대, 국경 없이 세계를 유랑하여 다니는 시대에 충남 천안 이북만을 고집하는 젊은이만 있다면 SKY를 졸업했다 해도 우리 회사에서 일하기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면접 위원장을 할 경우에는 절대로 선발하지 않겠다. 비전공자라도 노량진에서 2년간 치열하게 공부했고 코브라가 기어 다니는 인도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과 패기로 무장된 젊은이라면 어느 기업에서도 환영할 것이고 고용 절벽은 없을듯하다.


요즈음 전국의 송변전 사업소를 돌아다니면서 하는 잔소리 주제 중의 하나가 ‘열정을 갖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업역량 확장을 위해서라도 국가기술자격증을 하나씩 더 취득하자.’이다. 연배 있는 선배 직원들이 ‘에이 이 나이에...?’ 할까 봐 나도 50세에 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철벽 방어선을 친다.

그래도 ‘에이 전공이 다른데... 되겠어...?’ ‘에이 그것 취득해서 뭐할라고...?’ 하시는 분들,

현대 정주영 왕회장님 말씀이 생각난다. ‘이봐 해보기는 했어?’


* K는 금주 토요일 예쁜 신부와 사내결혼 한다. 그간 먼 거리를 오가며 치열하게 연애했는데 이제는 같이 근무하게 되었으니 치열하게 사랑만 하면 될 것 같다. K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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