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막걸리가 생각나는 날
‘토사구팽’이란 사자성어는 중국 월나라 재상 범려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범려는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고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좌한 名臣으로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후 구천은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범려는 구천에 대해 고난을 같이 할 수 있지만 영화를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로 판단하여 제나라로 탈출하였다. 탈출 후 범려는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하였으나 문종은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구천에게 반역 의심을 받은 끝에 자결하고 말았다.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을 때는 홀대하거나 제거한다는 뜻이다. 토끼와 개에 비유했지만 토사구팽은 인간의 역사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앞장서서 숙청을 지휘한 사람은 숙청이 끝나면 결국에는 본인이 피의 숙청을 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화 시점 군부 독재자의 충실한 개가 되어 ‘정화’, ‘정풍’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낙마하게 되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토사구팽’은 권력의 하수인이나 대리인이 쓸모가 없어졌을 때 내팽개쳐진다는 것이지만 최근의 사건들을 보면 대리인뿐 아니라 권력자도 항상 유념해야 할 사자성어이다. 권력자란 대통령, 기업 회장만이 아니라 작게 보면 단위조직 Boss도 될 수 있다. 권력자가 대리인을 두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적이나 부하들을 제거한 후 대리인을 처단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면 이것이 인간사회의 ‘토사구팽’이다.
주인은 교활한 토끼를 잡는 개를 부리고 있지만 효용가치가 떨어진 개를 삶아 먹힐 수 있듯 권력자는 하수인을 두어 칼을 휘두르게 하지만 조직이 정비되어 하수인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언젠가는 제거한다는 이야기다. 상황이 정리되면 권력자는 하수인에게 죄를 씌운다. 주위 동료들을 무참히 정리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몰고 칼을 겨누어 정리한다. 권력자는 숙청당한 반대세력 불만을 잠재우고 정의를 바로잡는 듯한 인식을 주어 민심을 사로잡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은 이미 역사에서, 정치계에서,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익숙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 역시 하수인에게 칼을 쥐어 주었으나 때로는 하수인에게, 때로는 정리해야 하는 정적들에게, 아니면 민초들에게 역풍을 맞아 ‘팽’당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으니 이 또한 조심해야 한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사례가 그랬고 군부통치를 종식시킨 민주화운동이 그렇다.
일찍이 공자님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했다. ‘양식을 늘리고 군비를 확충하며, 백성으로부터 신임을 얻어야 한다.’ 제자가 역으로 물었다. ‘부득이하게 세 가지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 왈 ‘군비를 버리고 그다음은 양식을 버려야 한다. 양식이 없다고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양식과 군비는 물론이고 나라마저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사는 세상이니 회사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상황을 겪게 된다. IMF 관리시절 우리 회사뿐 아니라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겪었다. 당시 전기팀장이었던 내 손에도 정리예정 직원 5명 명단이 들려있었다. 만 40도 되지 않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여러 날을 고민했으나 직원들을 살릴 묘안은 없었다. 출근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해당 직원들을 보기가 죄스러웠으나 다행스럽게도 직원들은 구조조정 되지 않고 모두 무사했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도 인사처장 중심으로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선별하고 심사하여 정리한 후 인사책임자 역시 구조조정을 당했다. 전두환대통령 집권초기에 언론사 구조조정을 할 때도 유사했다. 언론인들이 해직되고 난 뒤 시간이 흐른 다음 구조조정 단행자는 민심에 의해 ‘팽’ 당했다. 민초들 손에는 칼이 들려있지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 힘이 강하다는 것을 공자님께서는 일찍이 간파하시고 교훈을 준 것이다.
같이 근무하던 식구들 징계 인사위원회에 참석했다. 징계하기 위한 인사위원회에는 모든 처장들이 참석하기 꺼리고 해당 처장은 인사위원에서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나 근무기간 중의 사건이 아니었으며 내막을 잘 알기에 인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징계조치 당한 당사자들은 더욱 속이 상하겠지만 식구들을 징계하는 내 마음도 아프고 ‘兎死拘烹’ 같은 상황이 연출되어 심란한 마음에 몇 자 적어봤다. 오늘은 막걸리가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