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2)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對談, 여백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진정한 나에게 이르는 길

최작가: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의 ‘난 무엇이 되고 싶지 않고 난 나이고 싶다.’라는 구절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법정: 나 다운 내가 되고 싶다는 것, 어디에도 의존 않는 나 다운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최작가: 전에는 서슬 퍼렇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스님께서 바깥까지 배웅해 주셔서 인상적이었고 오늘 뵈니 무척 부드러워지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법정: 전에는 괴팍하고 인정사정없이 대해 반성하고 있습니다. 불일암 초기 사람들이 나보고 시퍼런 억새 같아 가까이 오면 베일 것 같다 했는데 인도 다녀온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려운 여건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애서 보자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버려야 할 것이 많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 이기적 행동은 내게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할 부분입니다.

최작가: 저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내 소유, 내 편견, 내 지식, 내 위선 등 위장된 나 자신이며 진짜 소중히 지녀야 할 것은 ‘眞我’ 나의 진면목입니다.

법정: 저마다 본인의 특성이 있는데 타인을 닮으려고 하는데 병이 생깁니다. 나뭇잎도 고유의 빛깔을 갖고 있는데 학교에서도 닮으라고 교육을 하니 본인의 특성을 펼치지 못하고 틀에 갇혀 고생을 하는 거지요. 우리 교육은 사람을 활짝 펴게 만들지 못하고 주눅 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술을 마시고 때려 부수고 하는 것이지요.

최작가: 한 사람의 ‘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합니다. ‘된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데 1명의 난사람을 만들기 위해 99명이 들러리를 섭니다. 성품이 결여된 지식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성적으로 보면 우등상감인데 조급하고 경솔해서 우등상 받기에 부족하다고 저에게 우등상을 주지 않고 가량상을 주셨어요. 그 후로 조급할 때 한 박자 늦추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법정: 한 사람의 성장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은혜와 영향이 있습니다. 9세기 선승 임제와 조주스님은 내 삶에 영향을 끼쳤고 ‘윌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불의에 맞서는 시민정신을 배워줬습니다.

최작가: 저는 예수를 가장 큰 스승으로 꼽습니다. 신적 존재나 성인이 아니라 우리 같은 인간으로 보고 싶은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인간에 대해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는, 그런 이였지요. 그 외 불경 속 부처나 선승, 가톨릭의 성인, 성녀들이 저를 감동케 합니다.



시대정신에 대하여

최작가: 간디는 우리를 파괴하는 일곱 가지 증상이 있다고 했는데요. 일하지 않고 얻은 재산, 양심이 결여된 쾌락, 성품이 결여된 지식, 도덕이 결여된 사업,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원칙이 없는 정치, 희생이 없는 종교, 위기의 시대에 인도에서 간디가 한 말이 우리 현실과 다 들어맞으니 기가 막힙니다.

법정: 무엇을 갖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끝없는 야망은 분명히 병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현대인의 병입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행복한 가는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최작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상과 물질이 너무 복잡하고 풍부하니 이제는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조차 잃어버렸어요. 진리는 아주 단순한데 말이죠. 세상이 복잡할수록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단순 명료한데도 그 사실을 잊거나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법정: 어지러운 세상이기에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너무 태평스러우면 짐이 듭니다. 외환위기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다면 한국인들은 더욱 무력해졌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잠재력과 새로운 저력, 기상을 내뿜었습니다.

최작가: 대개는 난세일수록 남을 바꾸려 드는데 자기 자신이 변화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입니다. 난세일수록 의식의 촉수를 세우고 홀로 빛나야 합니다.


참 지식과 죽은 지식

법정: 참된 지식이란 사랑을 동반한 지혜이며 반면 죽은 지식이란 메마른 이론이며 공허한 사변이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머리가 아니라 따듯한 가슴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에게 끝없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거들고 보살피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박학한 지식보다 소중하지요. 하나의 개체인 나 자신이 전체인 우주로 확대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최작가: 참된 지식과 죽은 지식의 차이란 결국 실천의 문제군요.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깨어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지성인이 되어야 하고 제가 지성인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영성인’이랄까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죽음이라는 여행

법정: 사람이란 탐구하는 노력이 끝나면 그때부터 늙음과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며 육신의 나이를 의식하는 자체가 벌써 늙음입니다. 인도식 인생관으로 생각하자면 우리의 육신이란 잠시 걸치고 있는 옷일 뿐입니다. 육신에는 세월이 있을망정 영혼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에 이 나이에 뭘 하겠냐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는 일이지요.

최작가: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셨는데 정말인지요?

법정: 우주의 질서처럼 늙거나 죽는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멸한다는 생각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기량과 톡이 커지며 사물을 보는 눈도 깊어집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순간을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지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최작가 :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인생이 의미 있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철학과 삶이 사고, 행동 그 밑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최인호가 물었다.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법정이 답했다.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일 걸요.’

둘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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