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하나?

‘스님, 나는 왜 공부가 안될까요?’

by 물가에 앉는 마음

인문학자들 이야기입니다. 후회 없이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져 낯설게 보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질문을 만들어 내고 답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목에 물음표가 있습니다. 제가 질문 한 개를 만들었습니다.


무엇이 행복일까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전제가 없는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어렵다.

제자들과의 질문과 대답으로 교육을 시키신 공자님 정도의 식견이 있어야 즉문즉답이 가능하다. 요즈음 법륜스님 강연 중 즉문즉답 코너가 있는 모양이다. 즉문에 대한 즉답이 가능한 것은 정답, 오답을 떠나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므로 법륜스님의 공력을 가늠해 보고 싶다는 것은 건방진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스님의 즉문즉답 강연을 들어보고 싶다.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사실 이 질문도 뜬금없는 질문이다. 태어나서 엄마젖을 빠는 것은 본능적이라 하지만 빠는 자세도 그렇고 젖을 뗄 때 익모초 즙을 발라 엄마 젖이 쓰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도 공부이자 학습이다. 커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로 배우고 경험하지 못한 지식은 여행이나 독서를 하면서 배운다. 그러면 선조들은 언제까지 공부했을까? 나이의 異稱(이칭)을 보면 언듯 15세 까지 아니면 30세 전까지 공부했다고 보이지만 ‘이순’이 남의 말을 듣고 이치를 깨닫는 것이니 60이 넘어서도 공부했다고 볼 수 있고 비로소 나이 70인 ‘종심’이 되어야 하는 일이 거리낌 없으니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라고 추정이 가능하다.

옛날 나이 70이면 눈도 보이지 않을 테고 기력도 없고 그때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니 죽을 때까지 공부했다고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志學(지학): 15세, 학문에 뜻을 둠

而立(이립): 30세 뜻이 확고하게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뜻을 세우는 나이

不惑(불혹): 40세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 하거나 판단을 흐리지 않는다. 미혹되지 않고

知天命 (지천명): 50세 하늘의 뜻을 깨달아 알고

耳順 (이순): 60세 남의 말을 듣기만 해도 이치를 깨달아 이해가 된다.

古稀, 從心(고희, 종심): 70세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해인사 내에서 전국 고승들이 모여 공부하는데 공부시간에 잠깐 졸은 고승이 죽비를 맞고 잠에서 깬 후 사감스님께 물어봅니다. ‘스님, 나는 왜 공부가 안될까요?’

천하 고승들도 공부하고 노인 분들도 죽기 전까지 공부합니다. 수의도 준비하고 영정사진도 찍어 놓습니다. 물론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는다고 준비하지만 이는 먼저 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배운 겁니다. 잘 죽는 법을 배우는 거니 사람은 눈을 감기 전까지 배우는 동물입니다.


사실 저는 목적성이 있는 공부만 했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는 군대에 가지 않는 특례보충역을 하기 위해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했고, 입사 후에는 해외교육을 가기 위해 영어공부, 회사에서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생겨 자격증 공부, 직원들 공부를 시키기 위해 솔선수범하느라 공부, 글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해 공부, 인문학을 우리 회사 기술과 영업에 접목시켜볼까 공부... 생각해보니 끝없는 공부의 연속이었습니다.


퇴직 후에는 어떤 목적을 만들어 공부를 시작할지 모르나 인문학 공부는 계속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직 끝을 보기는커녕 ‘도대체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 거야?’하는 의문점도 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눈이 침침해 책을 보지 못하는 시기 또는 죽을 때까지 공부만 하다가 ‘나는 왜 공부를 했고 무엇을 얻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풀지 못하고 눈을 감을지도 모릅니다.

한편으로, 지켜보는 집사람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돈 되는 공부도 하고, 생활에 이익이 되는 원두 볶는 것, 수제 맥주 만드는 것을 공부하고 낚시 가도 바다낚시 가서 먹을거리도 챙겨 오는데, 이놈의 인간은 원두를 볶기는커녕 카페에 가서도 책 보는 것, 잡은 후 놓아주는 붕어 낚시하는 것, 해가지면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 먹는 것 등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만 하고 다니니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며 걸어온 인생이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는 세계 속의 존재이니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으로 세계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談論(1) (신영복著, 돌베개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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