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은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는다
갈등은 한자로 칡의 葛과 등나무의 藤이라 쓰는데, 칡이나 등나무 한 놈이 휘감아도 복잡한데 두 놈이 서로 얽히니 얼마나 복잡한가. 인간세상에서 갈등이란 개인이나 집단사이에 의지나 처지,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것으로 고부갈등, 남남갈등, 남북갈등과 같이 몇 천 년 , 몇십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풀리기는커녕 되레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칡은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는다 하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예전 단독주택에 살 때 우리 집 전체를 등나무가 휘감고 있었다. 여름이면 시원하지만 전지를 해주지 않으면 흉가처럼 보이는 단점이 있었다. 등나무가 커감에 따라 철제 난간까지 우그러트릴 정도로 강력하게 휘감았던 기억은 나는데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휘감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세미나에 갔더니 원자력 원로께서 나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을 바로 잡으시겠단다. ‘칡은 왼쪽. 등나무는 오른쪽이라 했는데 칡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고 등나무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입니다.’ 오른쪽? 왼쪽? 칡?, 등나무? 서로가 얽히고설켜 바로 잡은 것이 아니라 더욱 혼란케 만드셨다. 이것이 갈등인가 하고 속으로 웃은 적이 있다.
최근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과 수회 회동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상대방은 채권자이고, 나는 채무자이니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우리 회사 산정금액의 5배를 달라는 공사비 산정상의 이견으로 인해 대금지급을 지연했다. 대기업인 우리 회사가 채무를 해결하지 못한 사실 자체만으로 볼 때는 분명 잘못된 일이고 ‘갑질’에 해당한다 하겠지만 사실 내막을 들여다보면 공기업을 상대로 한 중소기업의 ‘을질’ 소지도 다분히 있다.
공기업은 약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정부관료, 정치권 입김에 따라 춤을 추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공기업 약점을 아는 하도급 업체의 청와대, 감사원, 정부부처에 대한 진정과 투서에도 약하다. 잘못한 것이 있어 약하기보다는 진정과 투서가 허위임을 입증하는데 소요되는 열정이 아깝고 허위일 경우 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등의 소송을 하게 된다면 이에 빼앗기는 시간 또한 국민의 세금이기에 주저하게 된다. 갈등관계인 중소업체는 또 다른 공사에서 우리 회사에 50억 원 정도의 채무를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하고 있지 않으니 대단한 악연이 있는 회사이고 지독한 갈등관계이다.
채권자인 중소기업은 하도급대금을 미지급했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였고 우리 회사는 적든 많든 공사대금을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정위제재를 받아 다른 공사 수주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과 회사신인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 더욱 커다란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다.
상대방은 공정위 조사결과가 회사에 미치는 파장을 정확히 알고 있어 협상카드로 사용하고 있으니 협박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기업 특성상 확정된 금액은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으나 공정위 과징금을 예상하여 지불할 수 없는 일이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협상은 겉돌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상대방은 돈을 많이 받아내려고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이고 나는 솔직함을 무기로 감성에 호소하려 앉았으니 공통의 주제를 찾기 어려웠다. 갈등관계는 대화로 풀어야 하나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이 사람에게 커피도 사주고 밥값까지 내야 하나 하는 것도 갈등이었다.(공기업 윤리강령에 따라 내가 사주는 것은 되어도 상대방에게 대접받으면 안 된다.) 결국, 협상은 불발에 그쳤고 협상상대자는 앞으로 공정위 조사에서 불꽃 튀게 싸워야 하는 경쟁자이기는 하나 본인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협상논리를 펼쳐준 데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예전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방법에 대한 짧은 동영상 광고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풀려해도 더욱 꼬여만 가는 실타래, 누군가 가위를 들고 등장하여 ‘싹둑’, 해결했다.
갈등, 특히 민간업체와의 채권, 채무 문제는 감성적 방법은 효과가 없고 정확한 셈법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싹둑’ 나도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하여 정확한 셈법으로 갈등관계를 끝내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