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 손녀 바보

손녀는 볼 때마다 쑥쑥 자란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초보 엄마, 아빠가 아이를 잘 키운다. 요즘은 사람이 아닌 장비로 아이를 키운단다. 처음 보는 장비와 소품들이 집안에 그득한 것을 보니 신세대답다. 우유 분량을 맞춰주는 머신, 흔들거리는 요람, 캐빈 유모차, 기저귀부터 면봉 등 육아소모품 탑재 카트, 전동 콧물제거기, 젖병소독기, 젖먹이는 요람, 음악 나오는 전동 모빌... 가득한 장비를 보면 아이가 열 명이라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가물거리는 기억에는 백일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외출한 기억이 없지만 초보 엄마, 아빠는 갓난쟁이를 데리고 쇼핑, 외식도 가고 호캉스도 다녀온다. 병치레 없이 아기를 잘 키우고 있으니 초보 엄마, 아빠의 육아방식이 맞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육아 방법도 많이 달라진듯하다. 출산 후 산모와 아기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육아방법이었는데 산후조리원 퇴원 후 손녀를 보러 갔더니 추울 정도로 에어컨온도를 낮춰 놓고 있었다. 胎熱(태열)과 땀띠를 예방하려면 집안온도를 23~24도로 유지해야 한단다. 한여름에 소름 돋는 경험도 했다.

韓方(한방)과 洋方(양방), 무엇이 맞는지는 몰라도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니 삼복중에도 땀 흘리며 덥게 지내는 것은 미련한 산후조리와 육아방법이었는지 모른다. 하긴 미국 사는 누나는 조카 출산직후 병원에서 차가운 오렌지주스를 주더라며 한국과는 산후조리 방법이 다르단다, 출산 후 삼칠일동안 뜨거운 방에서 뜨거운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는 口傳常識(구전상식)은 舊識(구식)이 되었다.


손녀는 볼 때마다 쑥쑥 자란다. 부모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겠지만 저절로 자라는 것 같아 보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가 종일 잠만 잤었는데 때맞춰 우유 먹고 트림도 한다. 낯익은 얼굴을 보면 웃고 기분이 언짢으면 미간도 찌푸린다. 시간 맞춰 잠자고 때가 되면 배고프다며 보챈다.

백일 지나니 목을 가누기 시작했다. 눈이 작아 걱정이라지만 커가면서 백번도 바뀔 얼굴이니 걱정거리도 아니다. 의자에 앉기도 어려운 아이를 앉혀놓고 백일사진 찍은 지 엊그제인데 기어가기 시작했고 앞으로 가기보다 뒤로 기어가는 것에 더욱 익숙하단다. 부모들이야 앞으로 기지 않고 뒤로 기어가는 것이 걱정되겠지만 내 눈에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대견하기만 하다.

육아지식 없는 외할아버지 신소리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얘야, 자동차 운전할 때 후진이 더 힘들고 어려운데 어려운 것부터 했으니 얼마나 대견하냐? 앞으로 기는 것은 시시해서 건너뛴 거지. 걱정할 것 없다.’


집사람은 이미 손녀바보가 된 지 오래다. 가족 카톡방에 손녀 사진이 올라오면 웃던 찡그리던 무조건 예쁘고 사랑스러워 눈에서 꿀이 줄줄 흐른다. 큰아이 집은 차 갖고 가면 20분 거리에 있다. 집사람은 주말에 시간 맞춰 같이 가곤 했는데 요즘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고 혼자 다녀오기도 한다. 우리 집 No1인 반려견 병구완을 하는 것도 벅찰 텐데 할머니노릇 할 때는 피곤함도 잊는 듯하다. 이제는 쌀부대만큼 무거워진 아이를 여전히 잘 안고 어른다.

해외 근무하는 작은아이가 휴가 겸 재택근무차 입국했다. 아빠 선물보다 조카 장난감을 잘 챙기던 이모는 조카 실물을 처음 봤다. 아이랑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인형 갖고 놀듯 조카를 어르면서 본인이 노는 것 같다. 20대 후반이며 본인말로는 회사의 에이스라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내 눈에는 이모가 아니라 손녀의 언니뻘 정도다.


친 조부모님께서 보셔도 예쁜 손녀다. 여섯 손자에 일곱 번째 손녀가 태어났으니 많은 아이들 중 유일한 손녀다. 손녀를 보면 누나의 데자뷔가 보인다. 큰집 삼 형제, 우리 집은 누나와 삼 형제, 나이차 있게 작은집 삼 자매. 남자애들 많은 집에서 누나는 공주처럼 자랐다. 작은집 삼 자매가 출현하기 전 확실한 공주였고 우리 집에서도, 명절 때 큰집에 가서도 공주대접을 받았다. 명절에 전 부치고 송편 만들고 밤 깎는 일도 남동생들 차지였다. 손녀는 아마도 여섯 오빠 잘 만나 공주 대접받으며 클 것 같다.


지인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대부분 손녀, 손자 사진으로 바뀌었다. 손녀가 생기기 전 지인들의 유별남(?)에 의구심을 가졌었다. ‘왜 그러지? 오버 아니야?’ 막상 손녀가 생기니 마음이 달라졌다. 무엇이든 하는 짓이 귀엽다. 오늘도 이름 부르면 ‘배시시’ 웃는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내 프로필 사진은 아직 우리 집 서열 No1인 반려견 ‘콜라’ 사진인데 조만간 바뀔듯하다. 물론 ‘콜라’도 귀엽다. 이제 나이 들어 ‘밥이 부족하다.’, ‘물도 없다.’, ‘과일도 먹고 싶다.’, ‘등을 시원하게 긁어라.’ 하며 아랫것들을 훈계 내지 야단치는 경우가 많아도 귀엽다. 하지만 No1 ‘콜라’도 귀여운 것으로 따지면 손녀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물론 ‘콜라’가 억울할 수도 있다. 손녀 생기기 전에는 ‘낑낑’ 대는 것도 예쁘다며 좋아했는데..., ‘하여간 인간들 변덕이란(콜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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