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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봄은 왔다.

봄은 어느새 우리 옆에 와 있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출근시간이 빨라 나주가 고향인 사무실 청소 아주머니도 새벽같이 출근하신다. 다른 사무실 아주머니보다 출근이 한 시간 이상 빠르시니 여유가 있어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나주는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와요?’

‘그러게요. 작년에는 눈이 안 와 겨울가뭄을 걱정했는데 올해는 유난스레 눈이 많네요. 최근 이렇게 눈이 많았던 적은 없었어요.’

일출이 늦고 일몰이 빠르니 햇볕 쬐기 어려운 계절이지만 나주의 이번 겨울은 일주일에 3~4일 정도 눈이 왔고 산도 없고 바다도 먼데 바람은 왜 그리도 많이 부는지. 그렇지 않아도 가족과 떨어져 나주혁신도시에 이주한 공기업 직원들 대부분은 여러 가지 불편사항으로 우울했는데 거기다가 우울한 일기까지 경험했다. 이곳 나주는 비, 눈이 많고 흐린 날까지 감안하면 영국 런던보다도 기상조건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봄은 어느새 우리 옆에 와 있었다. 차가운 바람은 불었지만 버들강아지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피어올랐고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초록이 보이기 시작했다. 11월 말 늦가을에 나주로 내려왔는데 가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시간상으로는 세 달 남짓한데 세 계절을 겪은 것이다. 남녘 나주는 그만큼 겨울이 짧고 서울보다는 빠른 봄이 시작되는 듯하다.

아직 낚시하기에 이른 편이라 던져놓은 낚싯대는 명분이고, 봄나들이가 목적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바람의 촉감과 냄새가 달라졌다. 뺨을 할퀴듯 지나가던 바람은 날카로움이 꺾여 훈훈함이 느껴지고 촉촉한 흙냄새와 나무냄새가 실려 있다.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를 이겨낸 갓과 시금치는 푸릇함을 더하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고양이들이 볕을 쬐면서 졸고 있다. 둔덕에 자란 적갓은 터질 듯 활짝 피었다. 먼지를 털어내어 한입 베어 문 적갓의 알싸함과 싱그러움이 오래도록 입안에 머문다. 온실 안에서 자랐다면 이렇게까지 매콤하지 않을 텐데 바깥에서 추운 겨울을 버틴 갓은 억세고 입안을 찌르는 가시가 따끔거리지만 제대로 맵게 맛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봄맛이 아닌가 한다.

과수원에는 물이 오르기 시작한 배나무 전지작업이 한창이다. 농부들은 항상 부지런하다. 1년 후의 결실을 수확해야 하는 농부들 손은 빠르고 숙련되어 있다.


양지바른 둔덕에는 봄나물이 삐죽삐죽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리디 여린 어린 새싹이 얼마나 힘이 좋기에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올까? 들판의 냉이나 쑥은 컴퓨터 스캔하듯 대충 보면 보잘것없지만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볼품없는 무명초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가녀린 새싹에 봄을 달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특하고 귀엽다. 반갑고 대견하다 새싹들.

많던 오리들은 어느덧 북녘으로 모두 떠나고 북행 시기를 놓친 몇 마리 오리들만 저수지를 맴돈다. 늦가을에는 영역 지키는 활동과 구애하느라 푸드덕거려 주변이 매우 소란스러웠는데 이제는 조용하다. 언제 부화했는지 몰라도 크고 작은놈들이 연신 저수지를 박차고 날아오르고 수상스키 타듯 수면을 미끄러지면서 착륙연습 하는 것을 보니 장거리 비행에 대비하는 듯하다.


봄이 왔다. 언제 슬그머니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줄지 몰라도 봄이 되었다. 산적한 골치 아픈 현안들도 상큼하게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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