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이야기
1년에 대여섯 편을 보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영화를 보는 편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로 화제작들을 보는데 천사백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은 영화 스토리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뻔한 스토리라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들 부모님 이야기로 눈물 날 것이 뻔해 보고 싶지 않았지만 영화마니아인 집사람이 나와 같이 보기 위해 남겨놓은 영화로 설 명절에 같이 봤다.
1.4 후퇴, 흥남부두에서 미군 배를 타면서 여동생과 아버지와 헤어진 장남 덕수(황정민분) 가족은 부산에 도착해 구제품가게 “꽃분이네”를 운영하는 고모 집에 더부살이로 기거하며 어머니 삯바느질로 연명한다. 청년이 된 덕수는 아버지 당부대로 가장이 되어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부두에서 날품 팔던 덕수는 공부 잘하는 동생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독광부로 나섰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집도 장만했다.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고요?’라며 따지는 파독간호사 출신 부인, 영자의 불평에도 동생 결혼자금마련과 고모가 운영하던 구제품가게를 인수하기 위해 파월 외화벌이 근로자로 떠난다. 결국 덕수는 월남에서 폭발사고로 인해 장애를 얻고 귀국한다. 여동생을 잃어버린 것이 응어리가 된 덕수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출현하여 흥남부두에서 헤어져 해외 입양된 여동생과 재회한다.
재개발을 위해 구제품가게 ‘꽃분이네’를 비싼 값에 인수하려는 사람과 빚어지는 마찰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사람들과 갈등도 그려진다. ‘꽃분이네’는 헤어진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다면 찾아오실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국제시장’은 픽션과 논픽션이 가미된 영화지만 우리나라 현대사를 겪은 고달픈 아버지 삶을 그린 영화이다.
흥남에서 피난 내려오신 것은 아니지만 선친은 평양에서 월남하셨으니 나는 실향민 2세이다. 선친은 평양중학시절 ‘詩’로 이름을 날렸다. 박남수시인의 1호 추천 시인 이셨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詩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빈손으로 내려왔으니 월남 후 미군부대 雜夫도 하셨다. 국제시장 덕수는 어머니와 같이 월남하였으나 선친은 형제들끼리만 빈손으로 월남하여 고생깨나 하셨을 것이 뻔하다.
나는 부모님 영정사진도 없고 기일도 몰라 설과 추석명절에 紙榜(지방)만 모시고 차례 지내는 실향민의 깊은 한숨을 듣고 자랐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친척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화면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슬픈 눈을, 이슬 맺힌 눈을 보고 자란 실향민 2세다. 선친은 행여 자식들이 볼까 조심하셨지만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방송되거나, 상봉할 때마다, 상봉이 불발될 때에도 눈물을 보이셨다.
영화 ‘국제시장’은 눈물을 쥐어짜는 슬픈 영화는 아니지만 장면 장면이 눈물 나게 한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었으니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운 것에 눈물 났고, 동생들을 위해 막노동하고 파독광부가 되고 파월근로자가 되어야 했던 우리 아버지들 슬픈 이야기이니 눈물 났다. 영화 속 장면에서 정주영, 김봉남(앙드레 김), 남진, 나훈아가 깜짝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젊은 세대들은 웃었지만 가족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주인공 덕수를 보고 눈물이 나지 않았다면 실향민 2세를 떠나 대한민국 아버지세대가 아닐듯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 덕수의 독백이 눈물을 더욱 자아낸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아래 詩는 힘들지만 열심히 살다가신 선친의 두고 온 고향이야기이다.
故鄕이야기(1973.11.28)
학교길에 만나던 그여학생
그녀를 만나 얘기했지.
옛날 이야기, 고향 이야기
松井학교 加德학교 碑石里
그리고 뭐더라
옳아 옳아
玉泉台 峰台山 朏發島
지금은
記憶속에 가물거리는
이름이여 山河여 나의 사랑.
학교길에 만나던 그여학생
그녀를 만나 얘기했지.
韓晶東선생님 아시죠?
그럼요
요즘도 가끔 만나뵈요.
眞露 두꺼비
眞池洞에서 만들던 술.
그래서 마시는건 아니지만
소주를 좋아한답니다.
그녀가 말하길
술 많이 드시면 해로우세요.
아, 여기가 어드메길래
세월은 가고
존댓말이 서글픈 고향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