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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작은 아이의 운전연습

현명한 나는 아내의 운전연수에 관여하지 않았다. 절대로.

by 물가에 앉는 마음

2개월간 한국에 휴가 및 재택근무차 들어온 작은 아이는 라섹 수술, 피부 관리, 운전연수, 맛집 순례와 네덜란드 친구가 한국에 휴가 오면 가이드를 해야 하므로 할 일이 많다. 회사 업무와 회의에 참여해야 하니 해외 업무시간에 맞춰 오전 10시에 기상해서 새벽 3시 정도에 잠을 잔다. 한국시간에 맞춰 병원 다니고 운전연수받고 애완견과 산책 후 저녁 무렵 회사업무를 시작하니 일상이 바쁘다.

4회, 8시간 운전연수를 마친 작은 아이는 전형적인 초보 모습이다. 운전대를 잡은 양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눈은 전방만 주시하고 사이드미러와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지 못한다. 양손에 힘이 빠지고 사이드미러를 보려면 운전연습을 더해야 한다. 본인도 답답하니 시간 날 때마다 운전대를 잡고 시뮬레이터로 주차연습을 하지만 실전 같지 않다. 주말에 목숨 걸고 운전연습에 동행하기로 했다. 운전경험자가 같이 타면 아무래도 심리적으로도 안정되고 실전운전 Tip을 알려줄 수 있으니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조수석에 타서 운전 Tip을 알려줘도 기능과 기술, 운전경험이 쌓여야 하니 능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운전연습 삼아 부모님이 누워계신 공원묘지에 다녀오기로 했다. 보슬비 내리고 안개 낀 토요일, 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원묘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에 감사하다. 솔직히 공원묘지 도착 전 사고 나서 어머니 옆에 눕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출발하기 전 고속도로에서 나와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3개 차선 변경 후 유턴해야 하는 것을 걱정했다. 평소에도 화물차량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역시 운전초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초보들이 어려워하는 차선변경을 하지 못해 목적지를 지나갔다. 차선변경을 하지 못해 부산까지 다녀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 200미터 정도 초과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공원묘지에 도착해 부모님께 가족모두 무사함을 고했다.


네덜란드 친구가 한국에 오면 안내할 곳이 많단다. 영국에서 맛있는 음식이 fish & chip이듯 네덜란드도 맛있는 음식이 fish & chip이란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맛있는 음식이 튀김이니 우리나라 분식집 수준과 같다는 이야기다. 직장동료들에게 네덜란드는 음식 맛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고 혹평을 해왔던 터라 친구가 휴가 온다 하니 은근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유명 맛집은 몇 달 전에 예약이 끝나기에 유료 App에 가입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했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 등 순례표를 만들어 놓고 가깝고 쉬운 길은 직접 운전해서 안내하겠다는 작은아이 생각이다.

부모님 산소에 다녀온 다음날, 네덜란드 친구가 오면 안내할 카페까지 초보가 운전했다. ‘깜빡이로 뒤차에 의사전달을 하고 여유 있을 때 차선변경 해야 한다. 고속도로에서는 2Km 정도, 시내에서는 2블록 전부터 준비해서 여유 있게 차선 변경해야 한다.’ 차선변경 Tip을 초보에게 전해줬지만 귀에 들릴지 모르겠다. 산속 외진 곳에 있는 카페를 무사히 다녀왔지만 아직도 차선변경과 우회전/좌회전이 서투르다. 운전연수받으면서 똑바로 달리는 것만 배운 것은 아니겠지.


아파트주차장에서 좌회전, 우회전 연습을 추가로 했다.

‘좌회전, 우회전시 어느 지점에서 핸들을 돌려야 해요?’

어깨선을 맞추고 돌라 했더니 크게 도는 것 같아 사이드미러에 맞추라 했다. 이제는 공식을 잊어버려 정성적, 운전 경험과 감각에 따라 운전하는 구세대 엄마, 아빠와 정량적, 공식대로 해야 하는 운전초보 작은아이는 사고방식이 다르니 의견이 맞지 않는다.

주차할 때도 공식대로 하지 않으면 후면주차를 하지 못한다. 후방카메라에 의존하는 부모와 배운 공식을 써야 하는 딸아이는 아직 交集合(교집합)을 찾지 못했다. 이번 주는 세대차이 나는 아이에게 이틀연속 운전교습 해주느라 특히 피곤했다.


‘아내 운전연수는 남편이 하면 절대 안 된다.’ 가정을 위해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당연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른 측면으로 이야기한다. ‘연수 끝나면 부부가 얼굴 맞대고 식사하기 어렵다.’ ‘운전연수 못해준다는 남편이 지극히 현명하고 지혜롭다.’ 운전연수하며 그것도 못하냐며 면박주니 운전연수가 부부싸움으로 번져 가정이 깨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회전할 때 너무 크게 돌아 중앙선을 물었잖아!’

‘우측에 장애물이 있으니 일부러 크게 돌았잖아요.’

룸미러를 보니 아내 인상이 좋지 않다. 딸의 운전연수는 엄마 아닌 아빠가 해줘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내 잔소리가 없었다면 내가 잔소리했을 테니 아내뿐 아니라 가족 간 운전연수는 하지 않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친구 만난다고 근처 카페로 차를 몰고 나간 왕초보가 들어오지 않아 걱정스레 아파트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초보시절을 회상했다. ‘현명한 나는 아내의 운전연수에 관여하지 않았다. 절대로.’ ‘아내보다 면허를 늦게 취득한 나는 아내에게서 운전연수를 받았다. 야단맞아 가면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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