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말을 잘 들으니 자다가도 떡이 생겼다.
생일선물을 기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이 먹었다는 것인데 아내 한마디로 인해 생일선물이 생겼다.
복원력 좋다는 라텍스 매트리스도 오래 사용하면 탄력을 잃어 누운 자리가 꺼진다. 아내 척추건강을 위해 교체하기로 하고 인터넷 주문 후 내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새로운 매트리스에서 잠을 잔 아내가 편하다며 교체하길 잘했다고 하니 다행이다.
며칠 지나고 내 생일이 가까워올 무렵, 새로 구입한 매트리스가 내 생일 선물이라고 아내가 말했다.
‘???’,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부인이 편하게 자면 남편이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부인이 편하게 자면 남편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가 맞기는 하지만 매트리스를 남편 생일선물과 연관 지을 수 있을까? 억지 논리로 선물을 생략했으니 言語道斷(언어도단)인가? 아니면 희롱했으니 言語暴力(언어폭력)에 해당할까?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각방을 사용한 지 오래다. 사이가 벌어져서 각방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패턴과 취미활동도 다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나 아내는 저녁형이다. 4~5시에 일어나 6시 전 회사에 도착한다. 출근도 빠르고 낚시터 갈 때는 더 빠르다. 책도 아내는 소설을, 나는 인문학 관련 책을 좋아한다. 아내는 거실에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방 안에서 중요 구절을 노트북에 요약해 가며 읽는다.
내돈내산 매트리스를, 그것도 생활패턴이 달라 각방을 사용하기에 본인만 사용하는 매트리스가 내 생일선물이라니..., 내년 아내 생일선물로 ‘남편이 좋아하고 즐기면 부인이 좋은 것’이라며 낚싯대나 인문학 책을 선물한다면 부부싸움이 일어나 죽을 때까지 각방을 써야 할지 모른다.
부인의 言語暴力에 저항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핑계 낌에 나를 위한 생일선물로 낚싯대를 골랐다. 짧은 낚싯대를 쓰셨던 선친에게 낚시를 배워 1.5칸(2.7M)~2칸(3.6M) 짧은 낚싯대를 주로 사용한다. 같은 크기의 붕어를 잡아도 짧은 대는 손맛을 극대화시키는 장점이 있으나 분명 단점도 있다.
날이 추워지자 붕어들이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짧은 대 조과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몇 시간 앉아 있어도 찌 올림을 맛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잡은 붕어를 놓아주고 ‘물멍’하고 온다지만 가끔씩 숨 막힐 듯 찌가 오르는 ‘찌르가즘’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낚시꾼들에게 중간정도 길이지만 나에게는 기다란 3.2칸(5.76M) 낚싯대를 구입했다. 나에게 긴 낚싯대는 쓰임새가 많지 않고 11월에 잠깐 사용하는 낚싯대가 될듯하다. 생일선물로 내돈내산 낚싯대, 이거는 완전 ‘자기 닭 잡아먹기’ 같은 선물이다.
큰 아이부부는 밥을 사고 봉투를 준비했다. 예전에 갖고 싶은 선물을 물어보기에 ‘무선 이어폰’을 이야기했더니 ‘본 선물’에 부록으로 ‘무선 이어폰’이 딸려왔다. 그 이후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선물 필요 없음’이라 하고, 큰 아이부부는 현금봉투를 준비한다.
사실 손녀가 태어난 이후에는 별다른 선물이 필요치 않다. 손녀 재롱 보는 것이 선물이나 마찬가지다. 건강하게만 키우면 다른 선물로 무엇이 필요할까? 꼬물거리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 눈에도 사랑스러운데, 아내는 손녀 재롱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한다.
네덜란드에 있는 작은 아이는 조만간 들어와 무엇인가를 선물로 내어놓거나 밥을 살 것이지만, 까다로운 취향을 맞추기 어렵다며 빈손으로 들어와 밥값계산 할 가능성이 높다. 내 생일선물이라 해도 예년에도 그랬듯이 ‘너는 먹고 싶은 게 뭐니?’ 물어보고, 작은아이가 그동안 먹지 못했던 한국음식을 먹을 듯하다.
반려견이 주는 생일 선물은 확실히 받았다. ‘쿠싱증후군’으로 수의사가 2년 반이란 시한부 선고를 내린 후 1년이 지났다. 아직까지 씩씩하게 잘 살고 있고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짓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20년은 살 것 같다.
내 생일 일주일前이 반려견 생일이었다. 매일 같은 메뉴지만 차려준 생일상을 반찬투정 하지 않고 잘도 먹는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생일상을 받아먹는 것이 내 생일 선물이고 고깔모자를 씌워 축하해 줄 수 있는 것도 생일 선물이다.
편지를 끄적거리면서 깨달았다.
아내 건강이 생일선물이란 것을
반려견 건강한 것이 생일 선물이듯
아내 건강이 내 생일선물이란 것을
게다가 아내 말을 잘 들으니 자다가도 떡이 생겼다. ‘내돈내산 낚싯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