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9. 김형석의 인생문답(1)(김형석著, 미류책방刊)

‘사람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물가에 앉는 마음

들어가는 말

누구나 갖고 있는 근본문제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본질적 물음입니다. 내용과 지적 수준에는 차이가 있고 다양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 함께 찾아 누리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입니다.

나는 독자들이 내 대답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더 좋은 결론을 스스로 찾기를 권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같은 삶과 사상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얻는 것이 각자의 삶의 양식이 됩니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려면 어떻게 해냐 하나요?

학생 때는 ‘어떤 학생이 될까?’ 직장에 가서는 또 ‘어떤 직장생활을 할까?’ 퇴직하면 ‘어떤 사회인으로서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이런 문제를 계속해서 물으면서 사는 것이 아마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30대 중반 연세대교수로 부임했을 때 선배교수들이 ‘정년퇴직했으니 해방됐다.’고 합디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면 회갑까지 사냐?’ 생각했어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5년 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갑이 되었어요.


80넘어 친구인 안병욱, 김태길 교수와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래도 60이 돼야 내 인생을 사는 때가 오고, 어른 될 자격을 갖추고, 존경받을만한 인격을 갖추려면 60세는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60에서 75세까지가 제일 좋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어요. 75세까지 성장했으니 그 다음에는 어떻게 유지해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잘하면 90까지는 연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세까지는 교육받고 65세까지는 사회인으로 일하는 기간이고요. 90세까지는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 사회 속에서 내가 어떤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사는가? 살아보니까 인생은 2단계가 아니라 3단계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살아보니 90세까지는 늙는 게 아니에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은 목적 개념이라기보다 인간답게 살았을 때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했을 때 주어지는 느낌, 그때 갖게 되는 정신적 보람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욕심스럽게 살아보자.’ 그런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 것까지 빼앗아서 더 많이 가지게 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행복은 인간답게 사는 노력, 과정, 그 성취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적이 좋았다든지,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든지,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은 젊어서 느끼는 행복입니다. 직장을 갖고 사회생활에 성공하는 사람이 행복해 보이니 행복은 성공과 더불어 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보다는 성취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정년퇴직 후에는 사회에 무엇을 주었는가하는 보람,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주어졌는가하는 보람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100세까지 살아보니 젊었을 때는 그런대로 재미있게 살았고 교수할 때는 나름대로 성공했고 늙어서는 사회에 무언가 조금씩 주고 있으니까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시면 아마 행복하실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본다면 행복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을 놓칠 수가 있어요. 욕심이니까요. 행복을 욕심내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잃어버려요. 이기주의자가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위해서 살 때는 행복이 없어지는 거죠. 인격을 갖추어서 사람답게 살고 사회인으로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 중에 사실 불행해진 사람은 없어요.

신부님과 목사님 스님들도 행복을 가르치지만 그들이 누구보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살아보니 행복은 주어지거나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어요. 언제나 우리들의 생활과 삶속에 있었습니다. 나는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또 하나는 감사의 마음이 낳는 행복입니다. 자신이 행복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감사합니다.’예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집의 노예가 된 것 같아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재산, 권력, 명예를 소유하기 원하고 얻었을 때 만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나 역으로 상실했을 때는 고통과 불행으로 바뀝니다. 그런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소유의 노예가 되어 정신의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나를 위한 욕심에 빠진 사람은 욕심 때문에 모두를 잃어버리고 헛되이 되고 말아요. 이런 사람들은 정신적가치의 중요성을 모르고 끝없는 소유욕에 빠지게 되지요.


돈은 얼마큼 가져야 행복할까요?

동이 틀 때 출발해 해가 지기 전 돌아오면 밟고 돌아오는 모든 땅을 주겠다는 톨스토이 우화입니다. 욕심에 너무 멀리까지 온 농부는 되돌아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출발점에 도착해 숨을 거뒀습니다. 농부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 소유욕에는 끝이 없습니다. 돈과 재물은 더 많이 가지라고, 혼자가지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남의 것까지 빼앗아 가지라고 부추깁니다. 유혹에 빠지면 돈과 재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됩니다. 인격과 인생까지도 희생하지요.


내가 항상 가족들이나 제자들에게 권하는 교훈이 있어요.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충고예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좋을까요? 인격수준만큼 갖는 것이 좋아요. 인격의 성장이 70이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돼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로부터 90의 재물을 물려받게 되면 넘치는 20의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거든요.


부산가는 열차 안에서 앞자리에 앉은 神父(신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이다와 빵을 내 것까지 사는 겁니다. ‘나는 교수니까 괜찮지만 신부님은 여유가 없으실 텐데요?’하니 ‘필요경비는 받아왔고 돌아가서 남는 경비는 반납하면 됩니다.’라고 해요.

無所有(가난), 無言(침묵), 無異性(여성) 등 3무규칙의 규제를 받고 돈은 외출했을 때 규정대로 쓰며 수도원 내에서는 가질 필요조차 없으니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면 경제적으로 완전한 무소유가 된다고 합니다. 스님과 신부님 중에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인생의 먼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어요.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갖고 떠날 수 없거든요. 짐이 없을수록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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