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 김형석의 인생문답(2)(김형석著, 미류책방刊)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내가 나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모르고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살다가 언젠가 한 번은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 다른 사람하고 꼭 같지 않다.’ 그렇게 자기를 느끼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중학 2학년,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인데 윤시인은 ‘시인으로 출발해 시인으로 내 인생을 끝낸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어요. 황순원 선배는 ‘나는 소설과 더불어 살고 문학과 더불어 내 인생을 이끌고 간다.’는 생각을 뚜렷이 가지고 있었어요. 두 사람은 나보다 자의식이랄까? 그런 게 또 하나 있었던 셈이에요. 나도 중학 4학년이 되어 철학책을 비롯한 많은 책을 읽고 일제강점기에 시련을 겪고 나니 철학을 통해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 인생에 또 새로운 인생이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을 바꾼 것이 오늘날까지 온 셈이죠.


사람은 자기 인생길에서 스스로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내 인생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거나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는 왜 나나 우리하고 다르냐?’는 생각을 갖고 사람들을 대해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성공과 행복을 누리면 됩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성공과 즐거움을 찾으면 돼요. 그런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이나 불행의식에 빠집니다. 그것이 시기와 질투심을 유발하게 됩니다. 시기, 질투는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이럴 때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서로 칭찬해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윤동주시인이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으나 문제의식이 있어 자기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똑똑하다는 것은 문제의식이 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입니다.

철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류대학을 나와도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평범해집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즉 철학적 사유를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을 만나면 ‘앞으로 네가 5~60대가 되었을 때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그런 자화상을 그려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문제의식이 자기 발견의 가장 큰길이 아니었나 생각하니까요. 뚜렷한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은 목표를 향해 직진하기에 성공 가능성도 높고 행복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방황하기 쉽고 친구들 뒤를 따라가기도 합니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행복해지기도 쉽지 않지요.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50세가 넘으면서부터 신체적으로 잃는 것이 많았어요.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기억력도 쇠퇴하죠. 열정이나 호기심도 줄어들고 왕성했던 이성 간의 욕망도 약화됩니다. 그러나 소유욕은 그대로입니다. 재물욕심은 60, 70세가 되어도 줄어들지 않아요. 친구가 비싼 차를 타면 나도 타고 싶고 명예도 마찬가지며 권력과 지배욕도 줄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80세가 가까워지며 소유욕도 줄어들기 시작해요. 소유해 보니까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욕심조차 없어지고 말아요. 이때는 주위에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도 하나둘씩 곁을 떠나기 시작해요. 일몰이 쓸쓸하듯 노년도 쓸쓸해져요.


어른이 된 다음에 가장 행복했던 것은 안병욱, 김태길 등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거예요. 셋이 50년 동안 공동체의식을 갖고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우정을 나누었어요. 그런데 두 친구가 다 떠났어요.

내 나이까지 살아보니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은 남는 게 없어요. 돈도 벌었고 명예도 얻은 것 같고 자랑스럽게 산 것 같아도 마지막에 가서 보면 나를 위해서 산 것은 다 흩어지고 말아요. 오히려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부끄러움밖에 남을 것이 없어요.

그런데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눈 사람,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쓴 사람, 거짓이 많은 세상에서 진실을 가지고 함께 산 사람, 정의가 무너진 사회 속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는 것이 있어요. 누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보람 있게 살았는가? 그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었나로 구별되는 거예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이 준 것입니다. 목숨은 부모님, 지식은 스승을 통해 받은 겁니다. 내가 내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덕분이에요. 결국 내 즐거움, 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만들어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남이 만들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내 아들, 딸들이 행복하니까 아버지인 내가 행복한 거예요. 내 제자들이 보람 있게 사니 스승인 내가 인간답게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보답하기 위해서, 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무한경쟁 속에서 힘들게 살다가 늙어버리는 인생에도 행복이 있을까? 그런 걱정을 함께 해보는 때가 오면, 그래도 인간애가 상실되는 사회가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나는 그렇게 살아보려고 내 친구들과 함께 노력했는데 여러분도 사랑하는 이웃들과 더불어 그런 뜻을 가지고 새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자녀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들 교육방침은 ’평범하게 자라서 일에 최선을 다 해라. 가능하다면 주어진 분야의 지도자가 되어라.‘입니다. 그 이상은 원하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어요. 아이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겼어요. 자유는 곧 선택입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삶을 헤쳐나갈 힘이 생겨요.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으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힘이 없어져요. 자아가 없어지고 중심이 없어지는 거죠.

인생은 50세가 되기 전에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이 애들이 50세쯤 되면 어떤 인간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좋은 고등학교 가고 일류대학 가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천천히 성장하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삶이 행복해요.


부모보다 자식을 더 위하는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독교 전통을 이어받은 서구 사회도 부모가 자녀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갖는 것을 강조해요. 구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있으나 신약에 와서는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더 강조해요. 동양의 전통도 孝(효)보다는 親(친) 정신이 먼저였어요. 五倫(오륜)의 기본은 父子有親(부자유친)이에요. 親이 후에 孝로 변하면서 ‘부모를 위한 자녀’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자녀를 위한 부모’라는 의미가 약화되었던 셈이지요.

직접 가정을 이끌어보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책임이 더 중한게 정상인 것 같아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아들딸에게 베풀면 가정이 빛나고 가문의 영광이 생기죠.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와 이해가 있고 서로 위해주는 親은 질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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