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선배노릇

‘막걸리 한잔해?’

by 물가에 앉는 마음

입사 동기들은 반도 남지 않았다. 공기업 특성상 이직률이 낮으나 입사 30년이 지나다 보니 반도 남지 않았고 Baby Boom세대가 본격 퇴직하는 요즈음에는 동기 인원 감소가 심화되었다. 본격적인 정년퇴직이 시작된 것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동기들은 퇴직하고 나는 정년 60세 정년퇴직이 법제화되는 혜택으로 2년의 연장시간을 부여받았는데 앞으로의 시간은 엄청 빠르게 흘러갈 것으로 생각된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다. 제대 후 취업준비 할 때 처음으로 직원모집공고를 낸 것이 우리 회사였다. 경험 삼아 시험에 응시한 것이 합격했고 당시 부친께서 사회부 기자를 시켜 우리 회사를 조사했더니 괜찮은 회사이며 게다가 공채 1기라는 프리미엄이 있고 급여는 당시 국내에서 7위권 정도의 회사라 했다.

사실 입사해서 한 달에 노란 월급봉투를 4번 정도 받았다. 월급, 900% 보너스, 식비, 시간 외 근무수당 등 네 번의 봉투를 받으니 항상 주머니가 두둑했다. 신입사원 첫해 연봉이 천만 원이었는데 당시 부산 해운대 13평 아파트가 오백만 원 할 때니 아파트 두 채 살만한 큰돈이었지만 발전소 앞 술집주인은 그 돈으로 빌딩을 지었다.


요즈음 후배들에게는 돈을 보고 일하지 말라고 한다. 재테크에 성공하지 못한 내가 후배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며 자격없는 것은 사실이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나 나 자신이 직원이었을 때는 많은 월급에 홀려 일했기 때문에 직업/직장 선택의 폭이 좁아져 있었다. 그렇다. 나는 젊은 시절 돈에 눈이 멀어 일을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철이든 나는 재테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축재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새롭게 시작한 인생 공부, 수도승이나 철학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공부하고 있다.

후배들에게는 뭔가 보람을 느끼는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관행적으로 일 하고 피동적으로 지시된 업무만 해서는 절대 보람을 느낄 수 없으니 본인의 의식부터 개혁해야 가능한 이야기이니 쉬운 것은 아니다.


‘무엇 때문에 일 하는지 가끔 막막합니다.’ 후배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고민 상담을 하거나 막걸리 한잔할 때 뜬금없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가족을 위해?’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가 그랬듯 사실 제 연배까지의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일을 했고 헌신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자신을 위해서도 일 해야 하는데 가족만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일하는 재미가 반감되고 아침에 눈을 뜨면 기계적으로 출근하는 쳇바퀴 인생이 되기 쉽다.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님처럼 업무를 인격을 수양하는 수도의 과정으로 본다면 문제없지만 그는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니 가능한 것이고 일반인이 그 정도 반열에 들기 어렵다.

‘업무나 공부나 목표를 세우고 한다면 막막함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직장인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므로 현재 업무와 연관성 있는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여 업무한다면 업무의 질도 높아질 것이고 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번 하다 보면 공부에 취미도 생기고 업무성과도 높아지고 아이들도 부모들 덩달아 책을 보게 되니 아이들이 우등생되는 것은 부수입이다.

사실 후배들의 ‘무엇 때문에 일 하는지 가끔 막막합니다.’는 행복하고도 배부른 고민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막걸리 먹을 돈도 없고 그런 고민을 할 정신적인 여유도 없다. 하지만 배부른 고민이라도 하는 후배들이 대견하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막막함은 자아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고 성숙의 단계가 아닐까 한다. 막걸리 한잔 나누는 동안 막막함이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막걸리 잔을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민이 해결된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단지 막걸리 한잔 따라주고 고개만 끄덕거려 주면 된다. 유능한 정신과의사가 말을 하기보다는 환자 말을 들어주고 말을 많이 하도록 맞장구를 쳐주는 것처럼


‘막걸리 한잔해?’

선배노릇 하고 선배대접받도록 30년을 버텨온 나의 유일한 힘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58. 詐欺꾼과 事業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