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원철스님著, 불광출판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모태신앙은 기독교지만 산문집은 목사님께서 쓰신 것보다 스님들께서 쓰신 것을 좋아한다. 공감이 가면서도 겨울시냇물처럼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글귀와 무릎을 칠만한 기막힌 비유는 오랜 수도를 하지 않았다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 산문집은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나주에서 분당 집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왜 그리 마음도 설레고 가깝기만 한데, 거꾸로 내려오는 길은 마음도 무겁고 길도 멀다. 물리적인 거리야 오고 가는 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지만 마음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책은 산문집으로 특정주제를 다룬 것이 아니므로 스토리텔링보다는 맑은 글귀들을 소개하려 한다.


계절의 흐름을 읽듯 인생 흐름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짧은 가을이지만 겨울준비를 위한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인생의 중년기도 길지 않지만 한 호흡 고르면서 준비하는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 누구든지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타성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때가 되면 부서나 회사를 옮기고 스님네는 주섬주섬 걸망을 챙긴다. 사람들은 무릉도원을 희구하며 수시로 길을 떠난다.


깨를 잘 볶을 수 있는 아주머니라면 커피콩도 잘 볶을 수 있으며 깨 볶는 기계를 만든 아저씨는 커피콩 볶는 기계도 만들 수 있고, 두부콩 맷돌을 잘 돌리는 할머니는 커피콩도 잘 갈 수 있다. 한 가지를 진심으로 통하면 다른 일도 되는 것이다.


봄은 우리말 “봄(春)”이고 동은 한자어로 겨울인 “동(冬)”일 것이다. 봄나물을 상징하는 쑥이나 냉이는 겨울과의 단절을 전제로 한다. 겨울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나물이다. 하지만 절기란 두부 자르듯 나눠지는 게 아니다. 겨울은 봄을 안고 봄은 겨울을 안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거두어주는 가운데 서서히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봄동은 봄이라고 해서 결코 겨울을 버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 덕분에 겨울과 봄을 포섭하는 두 가지 맛을 가지게 되었다.


사슴 똥을 치우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대문 앞을 쓸었다. 부지런하고 청정한 전통이 오늘날 관광객을 부르는 부자 마을의 바탕이 되었다. 쓸고 닦고 청결히 한다면 많은 재물이 들어온다고 하잖은가. 길 청소는 도(道)를 닦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우선 주변 청소부터 시작할 일이다.


인생의 환절기는 사추기(思秋期)이다. 여름을 끝내고 겨울이 오기 전 가을처럼 짧은 기간이기도 하다. 사추기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에 비유할 수 있다. 즉 한 호흡을 고르면서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마음을 젊게 만드는 일은 독서뿐이다. 젊은 마음이란 사고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갖추는 일이다. 늙은 마음이란 변화를 싫어하고 완곡히 가는 것을 말한다. 인생후반기를 老年期로 만들 수도 있고 回春期로 만들 수도 있다. 옛 선인들도 “책 안에 원하는 대답이 있다.” 했는데 多讀과 朗讀을 통해 회춘기로 만들어야 한다.


눈길을 걸으면서도 뒤에 남은 발자국까지 걱정하지 마라 사실 그냥 당신 갈 길만 유유히 바르게 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은 뒷사람의 몫이다. 설사 앞사람의 발자국을 똑같이 그대로 따라간다고 할지라도 그건 같은 길이 아니라 뒷사람이 새로 가는 길일뿐이다. 지나친 머묾은 정체를, 지나친 이동은 불안정을 내포한다. 머물고 있으면서도 늘 떠날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매듭지으며 살고, 반대로 늘 떠돌아다니면서도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간순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붙박이와 떠돌이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마을의 ‘주전자’는 절집에 오면 ‘차관’이 된다. 막걸리를 담는 게 아니라 청정수를 올리는데 주로 쓰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같은 그릇이지만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주전자가 되기도 하고 차관이 되기도 한다. 주전자가 차관이 되는 것처럼 번뇌가 바로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이니, 범부의 모습으로 성인이 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책이란 수집이 아니라 읽을 때 생명이 살아난다. 가장 좋은 책은 자기 손때가 반질반질 묻은 책이다. 경전류는 삶의 길을 알려주는 길라잡이다. 하지만 인생길 안내책자 속에 모든 내용을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 너머에 있는 것은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쳐야만 비로소 체득할 수 있다. 문자만 뒤따라가다 보면 결국 글자에 걸려 넘어지기 마련이다.


찻물을 끓였다. 끓는 물은 올라가면서 소리를 내고 비는 내려오면서 소리를 낸다. 두 소리가 방문을 경계로 묘하게 어우러진다. 김장을 담갔다. 배추걷이가 끝난 휑한 빈 산밭을 바라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배추로서는 아름다운 마무리이겠지만 김치로서는 새로운 시작이다.


수백 년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마당 한 편의 화강암 수곽은 12월이 되면서 물을 담는 본래 역할을 끝내고 바닥을 드러낸 채 제 몸을 말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철철 물이 넘쳐 가끔 새들도 와서 목을 축이고 잠자리가 꼬리를 담갔다 사라지곤 했다.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눌음으로 적막을 깨뜨릴 뿐 한 해가 저물어가는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설사 생명 없는 돌이라 할지라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쉼이 해마다 있었기에 그 자리를 오늘까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12월엔 돌도 쉬고 나무도 쉬고 산도 쉰다. 사람도 매듭을 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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