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새뮤얼 플러먼著, 유유刊)
요즈음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상황에 딱 맞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바로 구매했다. 저자는 공학학사 학위를 받고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설 회사를 경영하는 CEO이자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문적 권위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공학을 전공한 후 인문학과 공학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간간히 글을 썼기에 이 책을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다.
o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o 공학과 인문학을 잇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봄으로써 ‘두 문화’ 사이에 자연스럽게 흥미와 관심의 다리를 놓는 것
o 인문학의 속성과 내용을 폭넓고 간략하게 훑어봄으로써 평범한 엔지니어가 기억을 금세 ‘되살리도록’ 돕는 것
o 엔지니어가 인문학의 세계를 더 깊이 여행하도록 이끌고 그때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을 추천하는 것
* 책을 만든 목적을 보면 채사장著, 한빛비즈刊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제목의 책과 유사하다.
2000년대 들어 인문학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어떤 문제에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그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 주장이 옳은가는 시간이 흘러야 결론이 날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엔지니어가 인문학 관련서적을 읽어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인문학 열풍은 애플, 스티브 잡스의 성공담이 크게 한몫을 했고 삼성전자에서도 인문학, 경영학 등 소위 문과출신의 직원들을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개발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회사는 사무와 기술의 경계가 명확하지만 ‘사무를 아는 기술직’, ‘기술을 아는 사무직’, ‘기계를 아는 전기직’ 등이 업무를 잘한다고 평가받고 있으므로 직무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고 판단되며 언젠가는 ‘통섭’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이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하려니 책의 의도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의 주장을 굳히기 위한 것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지만 책을 읽고 지식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은 만고불변의 진리에 가깝다.
공학을 전공한 독자들에게 교양 기초를 속성으로 알려주는 이 책에 대해 저자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간명한 선언을 했다. 저자 본인이 수십 년간 사무실과 현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겪었던 경험은 엔지니어는 교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이 책을 썼다. 교양의 세계에 발을 들이려는 엔지니어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역사, 철학, 문학 미술, 음악이다. 다섯 분야에 대해 기초개념, 역사개관, 주요 명작과 대가, 미래의 전망을 소개했다.
저자는 실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걸작의 명성에 헛되이 목매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헤로도토스는 시간이 많을 경우에만 읽어라. 단테의 신곡에 대해서도 시어가 장엄하다지만 이탈리아 어를 모르는 사람은 남들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 책은 1968년에 출간되어 영화, 만화,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동양예술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았고 인문학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심리학도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양과 인문학의 핵심인 역사, 문학, 철학, 미술, 음악에 대해 첫 발판을 마련하고 싶은 사람, 즉 엔지니어이면서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만한 책이다.
저자가 실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걸작의 명성에 헛되이 목매지 말라는 충고를 했듯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도 서양 인문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책을 멀리하는 분들, 처음으로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볼까 하는 분들께는 우리나라의 역사나 공자, 맹자, 한비자등과 같은 동양철학서를 먼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알게 모르게 살아오면서 접해왔고 단편적으로 들어봤던 내용들이 등장하니 이해도 빠르고 친숙하기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 요즈음에는 고전을 현대 시각으로 해석한 책들이 많으므로 이해도 빠르고 재미도 있다. 내 자신도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편이지만 서양 인문학과 관련된 책보다는 동양 인문학이 친근하고 재미있다. 인문학에 가까워지기 위한 시도로 공자, 맹자, 한비자가 부담된다면 서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삼국지’를 꺼내 읽는다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