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1) (찰스 핸디著, 인플루엔셜刊)
이 편지들은 나의 손자 리오와 샘, 네퓨와 스칼렛을 위해 쓴 것으로, ‘기술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나도 삶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 편지에 내가 네 나이였을 때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 세상에 나가 삶과 직접 부딪치며 나만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담았다.’
프롤로그: 삶을 되짚어 이해해 보면
말해다오, 그대의 계획이 무엇인지
누구도 손대지 않은 하나뿐인
그대의 소중한 삶으로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들볶았지만, 대단한 무언가를 하기에 나는 이미 늦은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손자를 비롯해 어디에서든 풍요로운 삶을 위해 고심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쇼펜하우어는 ‘언젠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야 하지만 삶은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제 86세로 통계적으로는 이미 죽을 나이인 나에게 남은 날이 많지 않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이해해야 할 것은 여전히 많다. 이제 나는 삶이 너무나 소중해 결코 낭비되어서는 안 되고 그저 흘려보내는 것에 그쳐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 미래의 삶이 문젯거리가 아니라 기회라는 걸 깨닫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나는 조금 더 거칠고 과감하게 행동하며,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더 많이 상상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때 나는 메리 올리버와 그녀의 송곳 같은 질문을 만나지 못했다.
나는 삶에 대한 내 생각, 또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곤경에 대한 내 생각을 전함으로써 너희가 메리 올리버의 질문에 나보다 더 멋지게 대답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돕고자 이 편지를 썼다. 지금 너희는 내가 경험한 세상과 무척 다른 세상을 살고 있지만, 너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내가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게 쉽지 않겠지만 과거의 반추에 기초한 내 생각을 읽으며, 너희가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여유와 때로는 행동한 이후에도 숙고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첫 번째 편지: 왜 우리는 아침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가. (일하는 방식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어린이집과 일회용 기저귀가 등장하기 전 태어났고 젊은 남자가 귀고리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chip’은 나무 부스러기나 감자튀김을 뜻했고 ‘하드웨어’는 볼트와 너트를 뜻했으며 ‘소프트웨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너희가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때 세대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열 살 때 우리 가족은 수도와 전기 없는 집에 살았다. 풍력발전터빈과 배터리를 이용해 집에 불이 들어오자 마법 같았다. 5년 후 각 가정에 전기가 연결되었고 전기 토스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기술은 우리 삶을 바꿔놓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삶이 실제로 바뀔 때까지 기술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엄청난 발명이었으며 페이스 북과 구글로 이어지리라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가장 흥미롭게 시선을 끄는 기술은 자율주행 전기차로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달라고 명령어를 입력해도 비밀번호만 알면 수정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까? 인공지능이 완전히 자리 잡을 것인데 일자리가 없어질까? 아니면 일자리가 개선되어 업무에 도움을 받을까?..., 의사들은 더욱 정확한 진단을 내릴 것이나 의사가 보조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너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기술은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고 그런 변화를 외면할 수 없다. 나는 기술의 변화를 직접 목격해 왔으며 그런 삶에서 얻은 교훈은 변화를 차분히 맞이하라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그랬듯 너희도 충분히 변화를 극복할 수 있다.
물론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자세히 알 수 없고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다른 세계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며 로마인들은 일찌감치 그런 사실을 깨달았던지 ‘시대는 변하고 그와 함께 우리도 변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반드시 그대로 유지해야 할 것은 ‘노동’ 그것도 유급노동이다. 아침마다 우리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유의미한 활동이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소중한 삶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이다. 나는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처음 받았던 순간과 그 짜릿함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오래전에 쓴 책에서 말했듯이, 조직은 점차 세 개의 잎이 전체를 이루는 클로버 형태를 닮아갈 것이다. 첫 번째 잎은 핵심직원이고, 두 번째는 하청업체, 세 번째는 상시 고용이 없는 개인전문가 내지 프리랜서노동자다. 차츰 많은 업무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전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용절감도 되고 연금부담도 없다. 요컨대 안정된 직장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portfolio life'라는 것이 너희 세대에게 최상의 대안이 될 거라고 꾸준히 제안해 왔다.
‘portfolio life'는 작은 일자리들, 보수를 받는 일자리와 무보수임에도 유익한 일자리들의 집합체를 뜻한다. ‘portfolio life'는 이미 젊은 세대에게 고려할만한 삶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통제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젊은 세대가 밖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금전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독자적인 ‘portfolio life'를 영위하는 삶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너희는 아주 오래 살 것이고 그때도 계속 일을 하려면 ‘portfolio life'가 해답이라는 것이다. AI와 기계가 일을 대신하고 있고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일은 여전히 우리 삶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