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방법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방법(바바라 애버크롬비著, 책 읽는 수요일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책 제목은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방법’인데 읽다 보니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도 맞는 제목일 듯하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정식으로 글쓰기 강습을 받지 않고 되는대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며 회사 내에서 보고서를 쓰는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는 내용들 같다. 입사해서 처음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결재받는 날, 한편으로 설렜지만 내 첫 작품이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이것도 보고서라고 써왔냐며 집어던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사보에 연재를 시작하는 날도 비슷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등단해 보라는 누이의 말에 용기를 얻기보다는 공연히 ‘Yes’를 했다며 후회했다.

이러한 불안감과 후회를 날려버릴 바바라 애버크롬비의 훈수를 들어보기로 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가는 작가이나 방법을 모르고 있고 방법을 안다고 해도 실천하기 쉽지 않다. 실제 회고록, 자서전을 쓰고 싶다면 적어도 1년 동안 매진해야 초안정도 완성시킬 수 있다. 그러면 매일매일 글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엄청난 삶의 혼돈을 정리할 수 있고 좋았던 순간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 매일매일 글을 쓰다 보면 인생의 벽이 문으로 변하고 깊이 있고 의식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글 쓰는 법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쓰고 싶은 종류의 글을 읽고 공부하며 직접 써보는 것이 유일한 학습법이다.


나는 첫 문장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릴 때면 로스앤젤레스 북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오두막을 찾는다. 허름한 오두막에서 글 쓰는 것 말고는 달리 글 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글을 쓰기 좋은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 것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사진이나 물건을 놓아두어 영감을 유혹할 만한 장소로 만들고 글 쓰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다. 친구들은 글 쓰는 것을 취미생활이나 타이핑하는 것으로 치부할지 모른다. 취미생활은 우표수집이나 동전 모으기 등이고 글쓰기는 소명이다.

글 쓰는 것이 두렵고 위험하게 느끼는 이유는 ‘걸리는 것’ ‘발각되는 것’ ‘노출되는 것’이다. 우리는 물고기처럼 자기 글의 바늘에 걸리고 비밀이 노출되기도 하고 내면의 삶과 상상력이 검열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 머리와 가슴의 안전한 영역 밖의 감정을 인정함으로써 잠재의식 속의 비밀이 새어 나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목소리와 친하다. ‘바보, 그걸 글감이라고 생각해 낸 거야?’ ‘정말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왜 침실 슬리퍼를 신고 앉아서 네 따분한 인생이야기를 쓰려는 거야? 누가 읽고 싶어 한다고?’ 머릿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울려대며 자신감을 갉아먹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냥 계속해. 네 이야기를 써. 그건 중요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달콤하고 차분한 목소리 말이다. 스타벅스나 도서관에 있다면 이걸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집에 혼자 있다면 큰 소리로 말해라. 그것도 자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컴퓨터에서 바로 책을 출간할 수 있고 어디서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눈 깜짝할 새에 도서관을 컴퓨터에 옮겨 놓을 수 있고 버튼만 누르면 영화가 다운로드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재미있는 일이 아무리 널려 있어도, 글쓰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꿈을 꿔야 하고 기억해야 하며 생각해야 하고 상상해야 한다. 시간낭비라고 느껴지는 일도 자주 해야 한다. 적막이 있어야 하고 고독이 있어야 한다. 주위가 난잡해지는 상황도 자신이 무얼 하는지 모르는 상황도 아무렇지 않게 견뎌야 한다. 퇴고를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진실, 그 이야기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글을 쓰는 데는 지름길도 없고 왕도도 없다.


사랑? 존경? 신뢰? 어떤 말로 포장해도 좋다. 요는, 우리는 독자에게 가능한 최고의 것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독자가 자신 못지않게 똑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우리에게 시간을 내준다. 우리의 시간만큼 독자의 시간도 귀중하다. 또한 독자는 우리의 글을 읽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할 것이다. 독자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와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가장 가까운 친구는 진실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다.


예전에 내 수필집이 나오고 얼마 안 되어 인터넷에서 그에 대한 서평을 찾아보았다. 한 독자는 두 개의 문법적 오류를 발견하고는 몹시 분개했다. 어떤 사람은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썼다면 훨씬 더 나은 책이 되었을 거라는 평을 했다. 좋은 평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들은 부정적인 평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24시간 동안 부정적인 평들 때문에 우울해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들에도 나쁜 평이 달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를 뒤져보았다. 그런데 하, 이것 봐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회고록 집필에 관한 책에 아주 부정적인 평 ‘종이가 아깝다.’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보고 서평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서평에는 저자가 직접 댓글을 달아 놓았다. ‘저런, 환불을 요청하셔야겠네요.’ 이렇게 말이다.


내가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로 내겐 아이가 둘이 있었다. 식탁에서도 글을 썼고 젖을 먹이면서도 화장대에 안아서도 글을 썼다. 나중에는 작은 스포츠카 안에서 학교가 파한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돈이 없을 때에도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가계에 도움을 주는 게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글을 썼다. 마침내 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내가 강인한 성품을 지녔거나 자존감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고집과 두려움으로 글을 썼다. 내가 진짜 작가인지 아니면 교외에서 미쳐가는 애 엄마 일뿐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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