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 김형석의 인생문답(3) (김형석著,미류책방刊)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by 물가에 앉는 마음

노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건가요?

가장 힘든 것은 늙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 혼자 남겨두고 다 떠나는구나.’하는 공허감이에요. 피할 수가 없어요. 그때 찾아드는 어려움은 고독감이지요.

젊었을 때의 고독은 차라리 감미로웠다고 할까요. 노년의 고독은 뼈아프게 다가와요.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족과 이웃과 주변사람들과 사랑이 있는 인간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고독하고 외로울수록 친구를 만나 우정을 살려야 해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말고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우정을 나눠야 해요.


나이 들수록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장관까지 지낸 분인데, 그 교수는 회의에 나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발언해요. 늙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늙으면 필요 없는 자랑도 늘어나고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건강도 과시하며 집안 자랑, 손주자랑을 합니다.

갱년기에는 용기, 장년기에는 신념, 노년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갖추지 못한 늙은이들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지혜 없는 노인은 노욕에 빠져 명예와 욕심 때문에 더 유능하게 일할 수 있는 후배들의 시간과 가능성을 빼앗아 버립니다. 힘들여해야 할 일은 후배에게 물려주고 우리는 그 뒤에서 선배다운 지혜를 갖고 도와줘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직장이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요?

직장에는 언제나 경쟁이 뒤따르며 선의가 아닌 이기적인 경쟁심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성공의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고통과 불행의 짐을 지고 살게 됩니다. 이기주의자가 행복한 가정을 유지한 예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과 일을 하게 되면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불행해집니다.


성공과 행복 중 한 가지만 택하라면?

우리는 사회적으로 윗자리에 가느냐, 못 가느냐를 성공의 기준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고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누구든지 최선을 다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한 가지는 너무 빨리 성공하려 하지 말라는 거예요. 능력이 부족한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결국 떨어집니다. 그럼 만회하기 힘들어요. 능력을 갖춰 천천히 올라가면 오래갈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행복한 성공은 무엇이냐? ‘당신이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인사를 받을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필요한 갈등은 있어야 합니다. 갈등은 경쟁입니다. 문제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가 소멸되고 극복하면 사회다운 사회가 됩니다.

요즘 우리가 무한 경쟁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인간은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으면 경쟁하게 되어 있어요. 경쟁이 갈등을 만드는데 경쟁에는 세 단계가 있어요. 낮은 단계는 모든 경쟁을 이기적인 경쟁으로 끌어내려요. 그런데 그 그룹에 속하게 되면 서로 이겨야 하므로 갈등 극복을 못해요. 그래서 이기적인 경쟁을 선의의 경쟁으로 이끌어야 해요. 상대방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받고 싶은 거죠.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도 있나요?

행복해지기 힘든 사람은 두 부류입니다. 첫 번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거든요 돈, 권력, 명예에서는 행복을 찾기 힘들어요. 거기에는 만족이 없어서 그래요. 돈, 권력, 명예는 소유욕이라 가지면 가질수록 목이 마르고 배고파져요. 행복해지려면 필요한 조건은 ‘만족’입니다. 정신적 가치가 있는 사람은 만족을 알아요.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요. 정신적 가치가 없는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거머쥐면 불행해져요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로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게 되어 있으니 행복할 수 없어요. 이기주의자는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고 객관적 가치를 수용하지 못해요.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요. 그래서 인격을 갖추지 못하죠. 인격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인데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기 어려워요.


종교는 왜 필요한가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종교와 철학은 이것을 다루지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성실하게 사는 것이에요. 성실을 잃어버리면 인간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성실한 마음으로 살면 철학이 되지만 거기서 신앙이 나오지 않아요.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때 성실이 경건으로 바뀌고 신앙이 생겨요. 내 인생의 짐을 내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종교는 한마디로‘영원에의 동참’이에요. 그렇게 본다면 신앙은 인생의 마지막 물음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요? 잘 죽기 위해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 어떻게 고통을 줄일 수 있을까 준비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원한 있는 사람들, 고마웠던 사람들 다 만나서 풀고 가야 하고요. 세 번째는 재산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해도 정말 중요한 것은 죽음을 정말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그건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로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란 게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라톤을 시작했으니 결승선을 통과해야죠.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이 무엇인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선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요? 동물과 같이 죽음을 모르고 산다면 최선의 인생을 못 살지도 모르지요.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이 들면 귀찮은 건 많이 생기고 소중한 건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50세가 넘으면 건강도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열정이나 호기심, 이성에 대한욕망도 약화됩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도 소유욕은 줄어들지 않아요. 비싼 차를 타고 싶고 명예욕도, 권력과 지배욕도 줄지 않아요. 그러다가 80이 가까워지면 왕성했던 소유욕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되면 사랑했던 친구나 가족들이 내 곁을 떠나기 시작하고 노년이 쓸쓸해져요.


긴 인생을 살아보니까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어요. 안병욱 교수가 건강이 나빠졌을 때 전화를 했어요. ‘김태길 교수가 떠나고 우리 둘이 남았는데 아마도 김 선생 혼자 남을 것 같아요. 혼자 남더라도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남겨 놓은 일을 마무리해주세요.’ 안교수의 유언으로 생각합니다.

내 나이까지 살아보니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남는 게 없어요. 돈, 명예도 얻고 자랑스럽게도 산 것 같지만 마지막에 가서 보면 내가 나를 위해서 산 것은 흩어지고 말아요. 그런데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눈 사람, 사회에 한신한 사람, 거짓 많은 세상에 진실하게 산사람, 정의롭게 산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도 남는 것이 있어요.

내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보니 성공과 실패, 보람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차이는 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나로 구별되는 거예요. 결국 내 즐거움,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주는 거예요. 아들, 딸이 행복하니 아버지인 내가 행복하고 제자들이 보람 있게 사니 스승인 내가 인간답게 살게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이웃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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