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현대적인 문화생활을 포기한 대신 얻게 되는 대가
일과 가정 양립정책을 통해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을 동시에 끌어올린 선진국은 스웨덴(77.9%) 네덜란드(74.3)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올해 일본 출산율은 1.4%로 224개국 중 208위 한국은 219위로 꼴찌 수준이고 일본 고용률은 68%, 한국은 62%로 23위, 24위를 차지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하나의 성취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직장생활과 여가생활, 육아 등을 모두 만족스럽게 성취하고 있는 슈퍼맘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이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일거리 속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보인다.
본사가 나주로 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이 고충처리를 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여직원들이 더욱 많다고 하는데 육아, 남편 직장문제 등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다는 것은 분명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내 자신이야 외벌이에 아이들도 컸고 게다가 역마살도 있는 것 같으니 나주로 가든 금성으로 가든 커다란 불편은 없다.
우리 부서도 고충처리 하는 직원들이 있다. 나는 적성이 맞지 않고 열정이 없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어 본 적은 있어도 온다는 직원 막지 않고 간다는 직원도 잡아본 적은 없다. 면담신청자가 섭섭할 정도로 면담시간도 짧다.
처장님, 고충처리...?
이유가 뭔데?
애기가... 집사람과 가족들이...
오케이!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봐.
오죽하면 처장에게 말을 꺼냈겠냐 싶고 이미 팀장에게 보고 받아 알고 있는 사항이니 긴말은 필요 없다. 짧게 고충처리 사유를 물어본 것도 물어보지 않으면 고충처리한 직원이 ‘나는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하며 마음 상할까 봐 사무적으로 물어본 것이다. 고충처리 하는 직원들도 새로운 사업장에 가게 된다면 고충을 해결한 반면 기존 기득권은 포기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해야 하고 업무실적 쌓기 등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니 승진이 늦어질 수 있다.
공기업 지방이전은 국가 정책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기는 하나 문제도 있어 보인다. 각종 기반시설이 되어 있는 수도권에 인구집중이 되는 것은 당연하니 인재풀이 넓고 깊다. 반면 인위적 결정에 의해 전남 나주 허허벌판으로 가니 인재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신입사원 경쟁률이 현저히 하락했다.) 지방혁신도시는 근무할 건물이 먼저 들어서고 아파트 등 주거시설과 병원, 백화점 등 편의시설은 건설 중이다. 많은 직원들이 독신자로 내려가서 주말부부가 되니 소비 진작은 되지 않고 주유소, 고속버스 등 운송업 관련 분야에서만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전력그룹사끼리 모여서 회의하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고 전국 발전소에 기술을 지원하는 부서는 나주에서 동해, 삼척을 가려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방 도시들은 공기업이전으로 인해 세수증가와 지방인재 고용창출이라는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으나 기존 직원들은 문화적 혜택을 포기해야 하며 발생되는 사회적 비용손실은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절충안이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이전초기에는 절충보다는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항들이 많을 것이다.
서울에서 낳고 자라 우리 회사에 취직한 이후 처음으로 지방생활을 해봤다. 고리에서 근무할 때는 기장, 월내의 비릿한 멸치젓갈 냄새 맡으며 출근 했다. 멸치젓의 비릿한 내음이 구수하게 느껴질 즈음 본사로 전근 왔다. 한동안 월내川(천)에서의 장어, 은어 잡이와 멸치회 맛을 잊지 못했다. 지하철, 백화점... 문화적 혜택과 편리함을 포기한 대신 얻은 지방문화를 맛본 것이다,
몇 년간 본사 근무 후 울진에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울진은 오지 중의 오지라 모두가 꺼리는 곳이었지만 쫀득한 오징어회 맛에 빠지고 구수곡, 소광리 금강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냄새는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영광에 근무할 때는 짭조름한 법성포 굴비내음이 좋았다. 막걸릿집에 가면 한복 입은 기생들이 장구 치며 판소리를 부를 줄 알고 내려갔는데 이미 20년 전 풍경이라 해서 실망도 했다. 하지만 먹거리가 넘쳐나고 한정식 집에 가면 하늘거리는 한복 입은 아가씨가 서빙해 주는 분위기는 남도가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올해 11월, 나주에 가면 여러 가지 지방문화와 접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영산포 홍어거리에서 코가 뻥 뚫릴 정도의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를 맡아가며 홍탁을 즐길 것이고, 인근의 소박한 지방문화를 체험하면서 빠름 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배우게 된다면 서울의 현대적인 문화생활을 포기한 대신 얻게 되는 대가치고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