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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 微積分(미적분)의 세계, 莊子(장자)

장자는 자유분방한 대안학교 교육

by 물가에 앉는 마음

예전에는 지인들에게 논어를 추천했으나 요즈음에는 장자를 추천한다. 논어처럼 생활하되, 생각은 장자처럼 했으면 해서다. 아시다시피 장자는 장자,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며 사상이다. 논어처럼 생활하는 것은 몸에 익숙하다. 별도 교육을 받지 않아도 생각과 행동에 유교문화가 깃들여있기 때문이다. 유교는 한때 국가철학이기도 했으나 인간의 자세와 언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특정세대, 계층, 시대에 국한되는 철학은 아니다.

유교(儒敎)는 공자(孔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의 학문을 이르는 말로 핵심 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보통사람부터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보듯 몸과 마음을 닦아 집안을 보살피다 보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천하를 평정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자, 맹자사상의 유교에서는 집 크기, 관혼상례에 대해 꼼꼼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의 학자들은 인위적인 도덕이나 제도를 배격하고 자연 순리에 따를 것을 주장했다. 노자와 장자는 '도'는 인위를 초월한 곳에 있으며 인위를 배제하고 무위자연이 될 것을 추구했다.


장자는 삶을 맞다, 아니다 로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면 하나라고 생각했다. 현상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크게 보고 크게 이해하라 했다. 사과나무, 귤나무는 과일이 쓸모 있어 가지가 뜯기고 곧게 뻗은 소나무는 집을 짓는 재료로 쓸모 있어 베어진다. 사당 마당의 상수리나무는 배를 만들 수도 그릇을 만들 수도 없어 쓸모없는 나무였지만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니 쓸모 있다고 봤다. 無用之用(무용지용), 쓸모없는 것에서 쓸모 있는 용도를 찾듯 사고를 확장하면 보이지 않던 것에서 보이는 것이 있다.

혼자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논어는 반듯반듯한 정규교육 같고 장자는 자유분방한 대안학교 교육 같다. 바른생활(修身)을 위해서는 논어를 읽어야 하고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고의 확장을 위해서는 장자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장자가 허구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장자를 읽고 자유롭게 생각한 것이지만 장자가 현대에 탄생했다면 철학자보다는 유능한 수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x가 0에서 ∽까지 자유자재로 공간이동을 하는 微分(미분)과 積分(적분)에 능하지 않으면 미시적, 거시적인 관점은 물론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없다고 본다. 공돌이라 그런가? 공돌이가 보는 장자는 미적분의 세계이며 장자는 미적분의 거장이다.

‘蝸角之爭(와각지쟁), 세상일이란 엄지손톱만 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것과 같이 사소한 다툼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觸) 나라,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蠻) 나라가 있어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고 돌아오는데 15일이 소요되었다 한다.’ 공간을 넓혀 하늘 꼭대기에서 쳐다보면 인간세상의 전쟁은 蝸角之爭과 같이 하찮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달팽이 뿔 위에 있는 촉나라와 만나라 사람들이 잉어가 물 위를 뛰어놀고 오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봤다면 어떤 광경이었을까? 장자 내편 소요유에 나오는 이야기다. ‘북쪽 깊은 바다에 곤(鯤)이라는 커다란 물고기가 사는데 크기가 몇 천리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새로 변하여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면 붕(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새의 등도 몇 천리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붕(鵬)은 바다수면을 3천 리를 치고 9만 리 높은 곳에 올라가 6개월을 계속 난 뒤 숨 한번 쉰다.’


얼마 전 강의요청을 받고 기술기획과 연구파트에 종사하는 후배들을 대상으로 장자이야기를 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형화된 시스템 내에서 일하는 공기업 직원이지만 R&D파트에 종사하니 논어보다는 장자가 어울릴 듯해서다.

3M의 포스트잇이 쓸모없음에서 쓸모 있음을 찾아냈듯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이 곤(鯤)이나 붕(鵬)같이 너무 크기에 가까이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대기권 넘어 우주에서 바라볼 때 보일 수 있고, 반대로 대상이 너무 작아 보이지 않을 때는 蝸角之爭과 같이 나를 작게 만들면 대상이 붕(鵬)이나 곤(鯤)처럼 커지므로 보이는 것이 있다.


이제는 은퇴하여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지인들 또한 현실의 경제와 환경에 얽매어 있다면 근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떠났기에 상하좌우를 덜 살펴도 된다. 배려할 대상도 적어졌고 눈치 볼 사람은 오직 한 사람(사모님)밖에 없다. 논어를 읽었던 사람은 언행을 조심할 필요 없이 일정 경지에 오른 사람이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고 장자처럼 노닐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人生如白駒過隙(인생여백구과극), 인생은 백마가 좁은 문틈 사이로 지나는 것과 같이 순식간이라 했으니 쓸데없는 근심으로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은 백마가 좁은 문틈 사이...’ 장자의 비유가 극단적이었나요? 너무 순식간이라 삶과 남은 인생이 허무한가요? 그러면 장자 말씀대로 인생 100년을 하루살이와 비교하면 시간이 36500배 길어졌지요. 순식간에 지나간 백말도 좁은 틈을 슬로비디오보다 느리게, 아니 백말이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물론 장자는 수학으로 미분한 것이 아니라 개념으로 시간을 미분했지요. 미분으로 정지되어 있는 현재 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고 장자를 읽고 삶의 여유도 찾고 자유롭게 생각하라는 이야기지요. * 장자에는 미적분 공식이 나오지 않으니 수포자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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