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3.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3)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3) (찰스 핸디著, 인플루엔셜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열다섯 번째 편지: 돈은 일과 성취의 불안한 동반자일 뿐이다. (필요와 욕망 구분하기)

돈을 역량을 측정하는 잣대로 바라보지 마라.

돈을 성패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여기지 마라.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걸지 마라.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빌 클린턴의 선거 전략가 james Carville이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외친 핵심 메시지다. 이 선거구호는 나에게 경제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가정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현실을 새삼스레 떠올려 주었다.

아버지가 성직자였기에 집에서 돈이라는 단어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아일랜드 선교회는 아버지에게 거처와 급료를 제공했다. 먹고살기에 충분했지만 부유하지는 않았다. 돈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던 아버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적정한 수입은 성직자라는 직업의 규범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이 많고 적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건 맞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다락방에서라도 살 것이다. 나는 석유회사 간부에서 교수로, 다시 프리랜서 작가로 변신하며 내 일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기대했고, 그 대가로 소득에 있어서 큰 삭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다고 너희들에게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은 아니다. 얼마를 버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생활수준을 소득에 맞게 조절해야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고 더 벌려고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친구들이 너희보다 높은 수준으로 산다면 쉽지 않겠지만 결국 너희들은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돈을 탐내면 영혼이 파괴된다.


강조하려는 것은 돈과 성취는 불안한 동반자라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동료들을 만나고 적절한 돈을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오래전에 깨달았다. 직업적 소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꿈의 조합을 찾아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꿈같이 완벽한 직업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했고 대신 돈과 즐거움과 성취감이 적절히 조합된 삶을 살아가려면 두세 가지 일을 결합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말하자면 work portfolio라는 것을 짜야한다.


열여덟 번째 편지: 셀 수 없는 것이 셀 수 있는 것보다 더 강하다. (숫자에 현혹되지 않는 법)

셀 수 있는 것에 인생을 맡기지 마라.

셀 수 있는 것은 부정적이고, 쉽게 조작될 수 있다.

삶을 지탱해 주는 가치들은 셀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이 숫자놀음인 것은 사실이다. 국가의 경제규모부터 개인의 전기 소비량, 영양 섭취량까지 숫자로 측정되고 평가된다. 하지만 숫자는 부정적이다. 숫자가 항상 진실, 온전한 사실을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대차대조표에는 그들이 흔히 주된 자산이라고 하는 사람의 가치가 포함되지 않는다. GNP에도 교통사고로 인함 병원비와 수리비는 포함되지만 양육, 연로한 부모 돌봄 등의 무보수 노동은 포함되지 않고 매춘과 마약거래는 추정치로 포함된다.

숫자는 또한 쉽게 조작될 수 있다. 숫자왜곡은 Robert McNamara가 미국 국방장관으로 계획했던 베트남전쟁에서 여실히 입증되었다. 그는 세상을 숫자로만 이해하려 했지만 베트남전쟁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인간 갈등의 결과물이었다. 수치적으로 계산된 아군과 적군의 피해규모만으로 성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통계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베트남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았고 미국국민들은 베트남 쟁을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서류상으로는 미국이 ‘승리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패배한 것이었다.

사회학자 Daniel Yankelovich는 이를 McNamara fallacy라는 이름으로 요약해 주었다. 그 오류는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띤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쉽게 측정되는 것은 무엇이든 측정한다.

두 번째 단계에선 쉽게 측정되지 않는 것은 무시하거나 임의적인 계량 값을 부여한다. 인위적인 결정이어서 잘못된 결과를 도출하기 십상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쉽게 측정되지 않으면 중요치 않다고 가정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쉽게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이쯤 되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McNamara는 자신까지 기만해 베트남전쟁 종전 후 전쟁이 이길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숫자를 믿고 전쟁을 계속했다고 인정했다.

교육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 교사들은 전인적 인간을 키우고 아이들의 장점을 끌어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또 시험결과는 여러 능력 중 일부를 측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숫자로 측정될 수 없는 재능은 실질적으로 무시되고 교육시스템은 교사에게 측정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로 숫자가 전인적인 교육을 대체하게 된다.


행복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친구들과의 우정, 운동과 여행, 맛있는 음식과 삶을 즐겁게 해주는 모든 것을 경험하길 바란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가치를 측정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페이스 북의 ‘좋아요’의 숫자나 팔로워의 숫자로 그런 측정치의 대체물로 삼는다. 결국 이런 숫자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리고 숫자를 위한 숫자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된다.

McNamara fallacy가 맞는다면,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이 두 번째나 세 번째 단계의 오류를 범한다. 아름다움과 조화, 사랑과 친절, 희망과 용기, 정직과 충성 등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부정행위와 속임수같이 정반대의 옳지 않은 것도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날씨가 허락되면 우리 부부는 테니스를 친다. 나는 이기고 싶었고 점수판에서 눈을 떼지 않는 반면 아내는 승부와 점수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테니스 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점수 없는 게임은 무의미하다고 우겼지만 아내는 내가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숫자는 재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경기에서 내 위치를 알려주는 기준이었다.

나는 여전히 삶의 여러 면에서 점수 매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숫자들 때문에 게임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아내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리하든 패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성공은 물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 나는 아늑한 집이 있고 건강하게 먹을 여유가 있어 즐겁다. 물론 그것만으로 삶을 정당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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