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4) (찰스 핸디著, 인플루엔셜刊)
세 번째 편지: 누구나 혼자 힘으로 자기 신념을 만들어야 한다. (철학자가 되어 삶을 꾸리는 법)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재능, 능력, 적성이 있으며 너희 또는 누군가가 그것을 찾아낸다면, 적당한 비료로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면 너희는 잘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정직한 인품을 유지한다면 목적의식에 충만하고 성취감을 만끽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편지: 네 인생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너 자신뿐이다.
종교에는 도덕적인 지침과 계명을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또 다른 역할이 있다. 물론 법이 있지만 합법적으로 행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은 너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 부분은 윤리의 영역이다.
좋은 사회는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옳고 정당한가에 대해 공통된 이해가 있는 사회일 것이다. 서구세계에서는 아직도 기독교 사상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지만 너희가 속한 새로운 세대는 각자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소셜미디어로 확산되고, 집단마다 다른 가치와 우선순위를 주장하고 있어 다양성과 상대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용기, 절제, 친절, 기품, 자부심, 명예, 온유, 친목, 진실, 위트, 우애, 정의 등 12가지 부수적인 미덕을 열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을 중시했다. 용기가 지나치면 오만이 되고 부족하면 두려움에 시달린다. 자부심이 지나치면 허세가 되고 부족하면 자기 비하가 된다.
다섯 번째 편지: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
부모님이 세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세상사가 그런 거야.’였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어른들이 ‘나도 모르겠다.’를 흔히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 입학 후에도 똑같았다. 선생님들은 모든 답을 아는 것 같았지만 교사용 교과서 뒤쪽에 정답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게 생각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까지 받았다 그들은 성경과 다르게 지구가 회전한다고 했다. 권력자들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인가를 해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저작 ‘지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뒤척이다 숨을 거뒀다. 갈릴레오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집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자신의 방 벽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새겨두었다 한다.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상관이 확신하는 것에 의심을 품되 적절한 때가 될 때까지 의심을 밖으로 드러내지 마라.
여섯 번째 편지: 모든 문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내면의 호기심을 회복하는 법)
창의력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태어날 때 호기심이 가득 하나 부모가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나치게 염려하며 보호하면 호기심은 쉽게 사라진다. 모험적인 기업가 상당수가 둘째나 셋째인데, 둘째나 셋째를 기를 때가 되면 부모들이 한층 여유롭게 자녀 양육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뒤 회고록을 썼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와 실수에서 배운 교훈들이 가장 흥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더 많이 실수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있다. 그랬더라면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았던 내 삶이 훨씬 더 흥미롭고 유익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덟 번째 편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면 모두가 승자다.(삶과 마라톤의 공통점)
열두 번째 편지: 우리를 지배하는 ‘그들’은 결국 우리 손으로 선택되었다.(개인과 국가의 관계)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그들이 지닌 권한의 범위에 대해 너희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란다. 너희는 체스판의 졸이 아니라 시민이다. 사회는 너희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민주주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삶은 우리 손으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열세 번째 편지: 누구나 세 번의 다른 삶을 살 수 있다.(인생의 변곡점을 만났을 때)
우리 삶이나 조직은 정상에 도달하면 하강하기 시작한다. 제2의 삶 역시 정상에 도달하면 하강하기 시작한다. 정상에 이르기 전에 새로운 학습이나 실험 등의 투자가 시작되어 하강곡선을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조직과 개인, 심지어 국가까지 적절한 때에 바뀌지 않았는지, 변화할 기회를 놓치고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후회하는 모습을 봐왔다.
열네 번째 편지: 무엇이든 부족하지 않으면 충분한 것이다.(삶의 기회비용을 놓치지 않는 법)
왜 우리는 그렇게 일하는 걸까? 더 많은 물건, 더 많은 돈, 더 큰 즐거움 등 더 많이 가지려는 듯하다. 억만장자 자선가였던 Rockefeller도 ‘충분한 것’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조금 더 있는 것’이라 대답했다. 우리 욕심에는 한계가 없다.
일은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중 하나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로 정의될 때가 많다. 일은 사회를 결속시키고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우리의 하루를 구성하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를 준다.
우리가 비교적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충분함’이라 생각한다. 강연과 집필을 어느 정도에서 계약해야 하는지 계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분함’의 기준을 낮출수록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 의지대로 가난할 수 있다면 가난이 축복이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열여섯 번째 편지: 가장 소중한 것은 혼자 가질 수 없다.(타인과의 연대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개인적인 소망과 불확실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 즉 동지애는 무척 중요하다. 그 대상이 반드시 삶의 동반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족, 함께 일하는 팀이나 조직전체, 심지어 시민 단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직장으로도 이어진다. 많은 기업가들은 혼자 힘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팀은 목적을 고유하는 집단이며 느슨한 형태의 우정이며 서로를 존중할 때 최상이 된다.
열아홉 번째 편지: 이제 ‘은퇴’라는 단어를 은퇴시켜야 한다.(마지막 쿼터를 품위 있게 뛰는 법)
너희는 백 살까지 살 가능성이 높으며 75세가 정상적인 은퇴연령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너희가 은퇴하려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은퇴’라는 단어가 은퇴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50세부터 64세까지 연령대의 70퍼센트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기에 연금, 은퇴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그들은 또 다른 연금을 갖게 될 것이고 자기 집을 소유한 첫 세대인 그들의 부모로부터 집을 물려받았거나 물려받을 것으로써 자기 집을 소유하게 된다. 하지만 너희 세대는 오래전부터 노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네 번째 쿼터(75세~100세)를 준비하는 것은 너희 의무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책무이기도 하다. 돈과 건강에 대한 적정한 준비가 있을 때 삶의 마지막 쿼터에서 너희는 자유롭게 완전한 너희 자신이 되고 함께 꿈꾸었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