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311.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著, 메디치刊)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간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대통령은 말로 자신의 뜻을 밝히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두 대통령으로부터 짧은 시간에 쉬운 말로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직접 배웠다.

리더는 무엇으로 구성원을 이끌까? 과거에는 힘이었고 돈이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과 글이다. 대통령에게 있어 말과 글은 국민들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된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통령은 무엇을 쓰느냐 고민한다.


글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쓰는 사람들 몫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 몫이라 하지만 송나라 구양수는 글을 잘 쓰려면 多讀(다독), 多作(다작), 多商量(다상량) 해야 한다 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헤아려야 한다는 뜻인데 노대통령은 독서, 사색, 토론을 많이 하셨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중독일 정도로 열정적으로 책을 읽으셨다. 글쓰기는 독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대통령들에게 독서는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노대통령은 퇴임 후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두 권의 책을 찾았고 심지어는 외신에 등장하는 기고들도 찾아 달라 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이란 노대통령의 표현이 적절하다.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란 책에서 좋은 글의 조건을 이렇게 말한다.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싸움이다. 글쓰기는 결국 글의 구성 혹은 배열, 전체구도를 짜야하는데 어떤 순서와 논리로 글을 엮을 것인지 틀을 짜고 뼈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노무현대통령은 이것을 글의 체계를 세운다고 이야기하거나 얼개를 짠다고도 했다.

짧은 말은 긴말보다 쉽지 않다. 조선 후기 명문장가 이덕무선생은 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글쓰기의 화룡점점은 제목이다. 그래서 신문은 ‘1면 머리기사 제목 장사’라 하지 않나. 신문, 잡지를 볼 때 제목부터 본다. 책 제목도 중요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책 제목은 ‘유 엑설런트’였는데 제목을 바꾼 후 성공을 거뒀다.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고 길어도 상관없지만 최대한 압축하는 것이 좋다.

말과 글의 성패는 첫 문장 첫마디에서 판가름 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출발에서 실패하면 독자와 청중이 떠난다. 그런 점에서 글의 시작은 유혹이어야 한다. 치명적인 유혹이면 더욱 좋다. 그래서 시작은 전업 작가에게도 어렵고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에게도 어렵다,

글쓰기 최고의 적은 횡설수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우선은 쓸데없는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글을 멋있게, 예쁘게, 감동적으로 쓰려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 길어진다. 이 얘기도 하고 싶고 저 얘기도 하고 싶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둘째 느슨해진다. 미사여구가 많아지고 수식어가 많아진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셋째, 공허해진다. 현학적인 말로 뜬구름을 잡고 선문답이 등장한다.

횡설수설하지 않으려면 가급적 한 가지 주제만 다뤄야 한다. 두 번째는 할 이야기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첫째 하고 싶은 말 즉 주제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둘째 뼈대, 글의 구조가 분명히 서있어야 한다.

셋째 문장, 군더더기가 없이 명료해야 한다.

느낀 그대로, 아는 만큼 쓰고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면 된다.


두 대통령은 생각이 많았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면서 늘 생각을 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했으며 그게 맞는지 맞는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쪽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 여러 입장을 함께 보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노대통령도 생각이 많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생각이 많은 분이었다. 김대통령의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생각의 원칙은

-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 둘째, 나쁜 점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상대가 있는 경우에도 세 번 정도 생각을 했다.

- 첫째,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 둘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인가?

- 셋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문 초안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첨삭하셨고 주로 수석에게 지시해서 직접 뵐 일이 없었지만 노무현대통령은 작성자를 직접 불러 연설에 관한 한 눈이 높다며 지침을 줬다.

-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는데 이를 존중해 주게

-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으니~같다는 표현을 하지 말게

- ‘부족한 제가’와 같은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은 예의가 아니네.

-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해야 하며 비유는 너무 많지 않아야 한다.

- 쉽고 친근하게 쓰게

-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 ~등이라는 말은 힘이 떨어지네.

- 때로는 반복도 필요하네. 킹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반복처럼

- 쉽고 간결하게 쓰게

- 수식어는 줄이게

- 스케일은 크게 그리게

-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네.

- 치켜세울 일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니 과감하게 치켜세우게

- 문장은 가능하면 단문으로

- 통계수치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네

-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 글은 자연스럽게 쓰고 중언부언하지 말게

-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 중요한 것은 앞에 배치하게

- 사례는 많아도 되고 한 문장에는 한 가지 사실만 언급

- 북핵,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하는 것도 방법이네

-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모으게

- 평소에 쓰는 단어를 사용하게 식사보다는 밥 영토보다는 땅

-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 이전의 말과 일관성을 유지하게

-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모호한 표현을 쓰지 말게

-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