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에 한발 다가선 것이 가장 기쁘다.
타고난 천재성을 갖고 있다 하여도 골프, 작곡, 소설, 야구... 하다 못해 도둑질까지도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 경지에 오르려면 1만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1만 시간이란 하루 3시간씩 10년간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1만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을 테고 반대인 경우는 1만 시간이 모자랄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해당분야에서 성공하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1만 시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과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은 기형에 가깝고 피겨퀸 김연아의 종아리 근육은 남자의 것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인데 바로 1만 시간의 흔적이다.
체육계뿐 아니라 문단에서도 1만 시간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님은 1980년에 시작해 17년 만에 혼불을 완성했다. 글을 읽기만 해도 등장인물의 표정이 그려질 정도로 표현력과 묘사력이 뛰어나신 박경리 선생님은 1969.9월 토지를 쓰기 시작하여 1994년 8월 25년 만에 탈고하였다.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감동을 하고 글귀 하나에 눈물을 흘린다.
이인석시인이 고모부, 선친은 임진수시인이시다. 여름이면 개울에 나가 미역을 감아주시던 소설가 곽학송선생님은 앞집아저씨였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해도 책과 술손님은 넘쳐났다. 산처럼 쌓여 있는 책 속에서 형제들과 숨바꼭질을 했고 연희옥이라 불렸던 우리 집의 술손님은 모두 시인, 소설가, 수필가, 기자 등 글로 생계를 유지하시는 분들이었다.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이라 술손님들의 문학적 비평은 밤새도록 이어졌고 숨바꼭질에 지친 우리 형제들은 책 속에서 잠이 들었다.
글쓰기와 가까운 환경이어서인지 음악을 하셨던 어머님도 가끔은 방송에 투고하여 살림살이를 마련하셨고 미국에서 사업하는 누님은 隨筆家로 직업을 바꾸었다. 동생은 그림 그리는 직업을 택했는데 이 또한 한때 그림도 그리셨던 선친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자라왔던 환경과는 다르게 기술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나 자신도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해서 私報 등 사내 지면을 통해 雜文을 기고하고 있어 끄적거리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한 지는 6년 정도다. 시간으로 따지면 5천 시간 남짓하니 아직은 먼발치에서 작가들 얼굴을 敬畏(경외)의 눈길로 보는 수준이고 경지에 오르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끄적거리는 것이 취미이기도 하지만 사실 글쓰기 연습을 시작할 때 목표는 등단을 하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있지만 30여 년 이상을 키워준 회사를 위한 작은 선물로 퇴직 전 ‘한전KPS’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만들고 싶었다. 삼성전자를 검색하면 관련 서적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문화적으로도 일류회사라는 것이 배가 아프도록 부러웠기 때문이다. 10년, 1만 시간 정도 연습하면 등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퇴직 전 책을 한 권 만들겠다는 목표는 시간이 흐를수록 허영심의 表出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솔직히 표현하자면 능력이 부족하니 본인이 좋아서 글쓰기를 하는데 등단작가면 어떻고 등단작가가 아니면 어떻겠는가, 남들이 읽었을 때 공감한다면 더없이 좋은 글이며 화려하게 치장한 글보다야 백배 좋은 글이 아니겠는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에 初心이 흐려졌다 해야 맞을지 모른다.
수필전문 잡지가 발간되면서 등단작가가 아닌 비전문가의 글도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가 많아지고 넓어졌다. 물론 샘터, 좋은 생각 등 수필과 사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잡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다빈치, 그린에세이 등 수필 전문잡지가 생겼다. 筆陣(필진)도 전업작가 이외에 의사, 변호사, 군인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갖고 있는 겸업작가도 있어 글쓰기 연습생인 나도 기웃거려 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족과 친척들에게 매주 보내는 글들을 보고 있는 누님이 신병치료차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등단을 권유했다. 하지만 習作들은 온통 회사 업무와 관련된 것이며 일주일에 한 꼭지씩 생산하는 관계로 완성도가 떨어진다. 등단투고용으로 적합치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간 보낸 편지내용 중에서 몇 개 골라 각색만 하여 응모했다.
2014년 1월 수필전문잡지인 ‘그린에세이’ 창간과 함께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게 되었지만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내공이 부족하여 아직은 끄적거리는 수준이다. 이번 등단을 계기로 앞으로의 오천 시간은 기성작가 책을 읽고 흉내 내는 것을 탈피하여 진지함을 갖고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 하는 데에도 할애해야 할 것 같다. 등단했으나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의 끄적거림이 언젠가는 글쓰기로 탈바꿈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지만 흥미를 갖고 정진한다면 독자가 공감하는 글들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누이가 병아리 문인시절 선친께서는 누이에게 글쓰기 자세를 가르치셨다. ‘대저 문인이란 돈벌이와 관계없이 글쓰기를 늘 연습해야 한다.’ 요즈음은 신병으로 인해 뜸하게 글을 쓰지만 누이는 아버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글쓰기를 했다. 한주에 한편씩 생산하는 부지럼을 보였고 나는 누이의 부지럼에 자극받아 독후감이나 회사 일상, 심지어는 회사 행사 환영사나 책자 발간사까지도 일주일에 한 꼭지씩은 끄적거렸다. 사보 원고료와 환영사를 써준 대가로 가끔씩 막걸리 한잔 얻어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버님의 가르침을 따라 돈벌이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글쓰기 연습을 하려 한다.
이번 등단으로 퇴직 전 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에 한발 다가선 것이 가장 기쁘다. 내 사랑 ‘한전KPS’ 이름이 들어간 수필집을 만들게 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6년을 연습해서 4년이란 기간이 남았으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니 먼 길의 반은 온 셈이다.
골프연습 후 필드에서 첫 라운딩을 할 때 머리를 올린다 하는데, 추천해 주셔서 문단에 머리를 올려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그간 이야기 소재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시고 읽어 주신 사장님, 전무님, 주위 동료분들과 가족들 특히, 하늘나라에서 웃고 계실 아버님께 이 글로 감사 인사를 대신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