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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기

293. 책 읽는 회사

창의성은 독서와 대화, 토론 속에 살고 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인류 역사는 불() 발견 후 불의 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시대를 지나 유비쿼터스의 공간혁명으로 발전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 혁명이다. 기술을 이용한 상품화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는 기술과 이성이 아닌 꿈과 감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물론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겠지만 인문학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제품과 기술이 세계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적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물들 간에 관련성을 찾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인문학적 창의성이다.

호랑이와 자동차는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KIA자동차 헥사고날 라디에이터 그릴은 호랑이 코를 본떠 만든 것이다. 코카콜라 병은 아름다운 여성 곡선미를 본떴다고 하고 애플 아이폰에 열광을 하는 이유는 인문학적 창의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상호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자동차와 텐트, 별장을 결합한 것이 캠핑카이고, 밥과 반찬은 따로 먹어야 한다는 사고의 틀을 부순 것은 비빔밥이다. 창의성은 단기교육을 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며 토론, 논술, 독서 등이 체질화되게 하는 교육체계나 방법과도 관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미국과 이스라엘 교육체계를 부러워하고 오바마대통령은 한국 교육을 부러워한다. 이스라엘은 자국 교육체계의 우월성은 인정하나 사람을 키워 놓으면 미국 발전에만 기여한다고 푸념한다. 한국 인재들은 한국을 위해 일하며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만들었는데 이스라엘 인재는 모두 미국에 가기에 이스라엘에는 세계적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대화한 적은 없지만 오바마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한국 교육열을 부러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교육이 주입, 암기식에서 사고, 논리 쪽으로 옮겨가기는 하나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전반적인 학력 수준은 분명 높아 보이나 창의력개발 면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있다.

한국은 과거 기능올림픽을 석권했고, 선진국 제품을 카피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창조적 공법을 개발하여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애플의 스티브잡스 같은 창조적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 황창규사장의 ‘황의 법칙’이 인정되었고 황우석박사도 창조적 인물이 될 뻔했으나 윤리문제로 인해 문턱에서 좌절되었다.


아시다시피 스티브잡스 학력은 대학중퇴이다. 초등학교시절 수업을 자주 빼먹는 비행(?) 청소년이었고 리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나 필수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학교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1학기 만에 자퇴했지만 대학은 도서관 출입까지는 막지 않았다. 리드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학부중심 교양대학으로 미국에서 학생들이 가장 공부 많이 하는 대학 중 하나로 교수와 학생비율은 1:10, 교수와 학생은 문답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리드대학 교육방법은 이스라엘의 문답식 교육방식인 하브루타와 비슷하다.) 스티브 잡스가 학교에서 ‘창조’라는 과목을 이수한 흔적은 없으나 창조적 인물이 탄생한 것인데 끊임없는 독서와 토론을 통해 창조성이 생긴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아직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교육을 하지 못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창출은 아직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며, 기업에서는 대학 졸업하고 입사한 신입직원들에게 재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기업에 필요한 지식을 주입하기 위한 맞춤형 교육을 하느라 땀을 빼고 있고 기업에서는 아예 대학에 주문형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얼마 전 모 대학에서 에너지학과를 개설하려는데 자문을 받겠다고 교수님들이 방문했다. ‘전력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려 하는데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한국수력원자력(주), 두산중공업(주), 한전E&C(주)를 다녀왔다며 우리 회사에서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수력원자력(주)에서는 운전을, 두산중공업(주)에서는 생산을, 한전E&C(주)에서는 설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텐데 4년이란 짧은 기간에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냐? 운전원 계통교육이 20주, 800시간인데 대학에서 1년 이상을 가르쳐야 하는 분량이다. 생산, 설계, 정비에 대한 것을 가르치려면 4년은 짧으니 공통적으로 필요한 Code&Standard를 가르쳤으면 한다. Code&Standard 도 ASME, ASTM, ANSI, IEEE, KEPIC 등을 가르치려면 이것만 해도 4년은 족히 걸릴 것이니 활용하는 방법정도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즉, 고기 잡는 방법만을 가르쳐 줬으면 한다.’고 자문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정부 조치로 인해 외국인 학교에 다녔던 내국인들이 전학을 왔다. 그들은 고3과정에서 배우는 미, 적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배우질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기껏 인수분해와 이차방정식정도만 배우고 전학 온 아이들은 수학시간에도 적응하지 못했으며 영어회화는 선생님을 능가하는 원어민 수준이었으나 영문법위주 영어시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물며 국사..., 성적순으로 하면 그들은 지진아였다.

그러면 미국교육은 사람을 하향평준화 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전학 온 아이들이 나에게 반문했다. ‘미, 적분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지식, 협동심, 정의 등을 배웠기에 단체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에세이형태 과제물을 제출하는데 익숙했던 그들은 오히려 논리성 측면에서 우리들을 앞섰다. 40년 가깝게 지난 지금, 물론 집안 후광이 있었지만 그들은 중견기업 CEO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창의성은 독서와 대화, 토론 속에 살고 있으며 우리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회사에서 시행하는 독서교육 Book-Learning, 단발성에 그치지 말고 5년만 해보자.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한 직원들이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모습은 아름답고 미래가 있는 회사처럼 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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