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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재미있는 회사생활을 위해

화음을 만들어 내는 법을 늦게 알았는데 조금 빨리 알았다면

by 물가에 앉는 마음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앞만 보고 열심히 일 했는데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늘 혼자더라. 매일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느라 주위사람과 멀어지게 되었다.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있지만 정작 소중한 사람은 주위에 없다.

퇴직 선배님들 이야기이며 산업화시대에 직장생활을 하셨던 대부분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산업화시대에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일만 했던 워커홀릭이 많았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재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실 저도 산업화시대를 살았으므로 같은 생각으로 앞만 보며 일했습니다. 혈기 넘치는 차장시절에는 싸움닭 같이 일해서 타 부서나 동료들과의 논쟁에서는 절대로 지지 않았고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는 책상서랍을 잠그고 업무 보이콧을 해서 상사를 당혹스럽게 만든 별종이자 독종이었습니다. 또한, 업무 성과를 내면 내가 잘해서 실적이 좋아졌다는 부질없는 자만심으로 가득한 시간도 보냈습니다.


하지만 철들면서, 부장이 되면서,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면서 순둥이로 변했습니다. 부장이 되니 왜 그렇게 직원들이 예뻐 보이던지요? 직원들과 일하고 같이 뛰어놀고 공부하는 것이 좋았고 포상과 진급기회를 부하 직원들에게 양보하는 기쁨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원들을 예뻐하니 직원들은 당연히 형님처럼 따르기 시작했고 부서 내에 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으니 일할 때는 우리 식구들 같이 일사불란 한 조직이 없었습니다. ‘힘들겠지만 이 일은 내일까지 끝내야 한다.’ 한마디 하면 쉬고 있던 직원들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듭니다. 해병대 정도 규율인데 제가 큰 소리를 쳤냐 하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주기적으로 직원들과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는 일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지방에서 독신으로 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숙소에서 회식을 했습니다. 삼겹살만 사놓으면 직원들이 나머지 부식들을 갖고 오는데 밥, 김치, 기름이 튀니까 신문지를 갖고 오는 직원도 있습니다. 회식이 끝나면 삼겹살 기름을 닦아내느라 직원들이 대청소를 합니다. 파출부가 해야 할 일을 직원들이 해주니 제가 삼겹살을 샀지만 손익계산을 해보면 손해 본 것도 없습니다. 청소가 끝나면 직원들은 옆집이 자기 집인데도 저하고 같이 자고 출근합니다. 직원들 이야기로는 콘도에 놀러 온 것 같답니다.

제가 부장 이후에는 이른바 고속 승진을 했는데 비결은 직원들을 위하고 같이 재미있게 놀아준 것 밖에 없습니다.


1명의 핵심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하지만 만 명도 오케스트라와 같은 방식으로 열심히 합니다. 오케스트라 마이스터 지휘에 따라 각자 악기를 연주하듯 조직은 관리자 지휘에 따라 업무 합니다. 타이핑 하는 여직원과 전화받고 열심히 상담하는 직원도 있지만 담배 피며 쉬는 남자직원도 있습니다.

이들이 마이스터 지휘에 따라 화음을 만들어 낼 때는 좋은 조직이 되고 소음을 만들어 낼 때는 나쁜 조직이 됩니다. 지금 담당하는 조직이 화음을 만들어 낼 것인가 소음을 만들어 낼 것인가는 마이스터 손에 달렸으니 관리자 책임이 막중합니다. 저는 화음을 만들어 내는 법을 늦게 알았는데 조금 빨리 알았다면 회사생활이 더욱 재미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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