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이 행복 1등 국가였던 시기처럼.
‘가난한 행복’, 눈길을 끌기 위한 낚시질용 제목이 아니라 살아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돈만 밝히는 경제적 속물’이나 ‘돈을 초월했다며 고상한척하는 위선적 속물’ 에도 속하고 싶지 않으며 타인에게도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중간정도에서 살고 싶고 그 속에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솔직히 이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정도 차이만 있겠지. 중간정도,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을 기준으로 조금 왼쪽에 치우친 사람은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 할 것이고,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을 ‘고상한척하는 위선적 속물’이라 할 것이나 인간은 ‘속물(세속적 이익이나 명예에만 마음이 급급한 사람)’의 범주를 벋어나기 어려운지 모른다.
나 자신도 뒤돌아보면 기준이나 분별없이 왼쪽, 오른쪽을 왔다 갔다 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나 노력에 의하지 않은 유무형적 대가를 탐하지 않은 것이다. 오랜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면 중도에 망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돈’과 관련되어 있다. 회사 공금에 손을 대거나, 부정한 청탁과 배임의 이면에는 ‘돈’이 있었다. 선량한 얼굴이 파렴치하게 변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가난한 행복’에 어울리는 국가는 부탄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 부탄의 행복순위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행복은 국가의 최대 목표라는 행복 세계 1위 부탄이 위태롭다. 2010년 세계 행복도 1위에서 2016년 세계 56위까지 하락했다.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했음에도 인터넷으로 정보가 밀려들자 내가 빈곤하다는 것을 알게 된 부탄국민들의 행복도가 급락했다. ‘행복은 관계인데 서구사람들은 관계를 맺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이 아니라 신뢰입니다.’라고 말한 부탄 유일의 싱크탱크 관계자 말이 무색해졌다.
또 다른 연구결과를 보면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데는 사회적 비교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현상을 두고 작가 쥘 르나르는 촌철살인의 유머를 남겼다. ‘내가 행복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남들이 행복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선조들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으니 남보다 내가 잘 돼야 배도 아프지 않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사회학적 조사에 의한 연구나 작가 ‘쥘 르나르’ 이전 비교가 불행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796. 이스털린 패러독스(Easterlin Paradox)의 숨은 뜻 -
부탄=행복이란 등식이 성립하던 나라였기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지구상 마지막 샹그릴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교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잘 사는 것보다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기했고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부탄은 최빈국중 하나다. 질이 낮지만 대학교육과 의료도 무상이니 마지막 샹그릴라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가난해서 상대적 빈곤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가난과 행복은 어울리지도 공존하지도 않을 것 같았지만 비현실적 이게도 공존하는 나라 네팔. 하지만 ‘사촌 땅’으로 인해 행복이 깨졌다니 허무하기도 하다. 비교가 불행을 낳은 것이니 결국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듯하다.
퇴직 후 월급 없이 살고 있다. 물론 노령연금과 개인연금이 통장으로 입금되니 월급 외 소득이 있지만 소득규모는 반 이상 줄었다. 가계부를 작성하지 않아 정확한 수입과 지출 규모는 모르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다. 퇴직전후와 비교해도 생활에는 커다란 변화는 없다. 하루 세 번 밥 먹고, 낚시 가고 싶을 때 낚시 간다. 물론 1년 정도 살아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알겠으나 아직까지 불편함이 없다.
낙천주의자는 아니고 낙관주의자에 가깝다. 퇴직자들이 일반적으로 느낀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없고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아직 초보이기에 백수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들쭉날쭉하다. 분명한 것은 퇴직 후 조금 가난해졌을 것이다. 가난해졌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소득이 반절로 줄었다고 행복도 덩달아 반절로 준 것은 아니다.
아내는 반려견 ‘콜라’를 위해 개인적인 외출도 자제하고, 본인을 위해 쓰지 않아도 ‘콜라’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는다. 쿠싱증후군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콜라’를 위한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책시키고 처방약 이외에 간보호제, 오메가 3, 유산균 등 건강보조제를 먹인다. 처방 사료 이외 닭가슴살, 블루베리, 고구마, 사과, 당근, 무, 양배추, 브로콜리, 단호박 등 건강식을 먹인다. ‘콜라’ 건강이 나빠지지 않고, 시한부선고보다 오래 사는 것을 원하나 쉽지 않은 길이다. 당분간은 ‘콜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 아내 행복이다.
나는 원 없이 낚시 즐기기에 올인하고 있다. 낚시터에서 눈 어둡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을 여러 분 뵙는다. 건강이 허락할 때 마약과도 같은 낚시를 부지런히 다니는 것도 행복이다. 낚시터마다 음식점이 있지만 아내는 고혈압환자를 위해 저염김밥을 만든다. 낚시하는 것만도 행복인데 아내 도시락은 행복을 배가시킨다.
경주마처럼 시야를 좁히니 단순해졌나? ‘콜라’와 ‘낚시’에 관심을 집중하니 세상 보는 시선도 단순해졌다.
재주도 없지만 더 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실 더 갖고 싶은 것도, 살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명품과 해외여행도 부럽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니 욕심이 줄어들었다. 행복에 대한 목표 또는 모습이 ‘콜라의 건강’과 ‘낚시’가 아니었다면 더 벌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다.
추후 명품과 해외여행이 ‘행복’이 될 때를 대비해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나 감투를 포함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은 이성을 마비시키는지 멈추고 숨고를 시기를 놓치게 만든다.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에 의하면 멈춰야 할 시기를 모르고 지나친다는 것이다.
멈추는 데 서투른 우매한 사람은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덜 벌 때는 덜 쓰며 수입 규모에 맞게 지출을 줄이고, 뒤따르는 불편은 불행해질 정도가 아니라면 감수하는 것은 우매함보다는 자연스러움에 가깝다. 욕심을 줄이고 비교하지 않는 자기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부탄이 행복 1등 국가였던 시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