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이순신이 답하다(2) (방성석著, 중앙북스刊)
4장 항로는 리더가 정한다.
이순신장군이 한산도에 머물 때 운주당이란 집을 지어 밤낮으로 그곳에 머물며 장군이나 군사들과 전략과 계교에 대해 토론을 하여 결정된 뒤에야 싸운 까닭에 전쟁에서 패하는 일이 없었다. 운주당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같은 장소였다. 또한, 막걸리 1000통을 풀어 전쟁에 지친 병사들을 위로하고 수시로 활쏘기, 씨름대회를 열어 체력단련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소통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미 이순신장군은 소통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왜군에게 잇달아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옥포해전을 앞둔 병사들이 겁을 많이 먹고 있었다. 이순신장군은 병사들에게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 주문했다. 왜선 30척 중 26척을 격파했다. 명량대첩을 앞두고는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울돌목이 있어 한 사람이 지켜도 천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며 장졸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었다. 1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했다.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을 전하는데 편지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삼성 SDS의 김인 사장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7천여 직원에게 ‘월요편지’를 보냈다. 390여 곳에 흩어져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조직개편, 경영계획은 물론 흥미 있게 일었던 책이나 JSA에 근무했던 아들이야기까지 풀어놓으면서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냈다.
5장 불리한 현실에도 유리한 것이 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한 해 동안 10여 회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이러한 전승은 해박한 병법지식에서 나온 것인데 무경에 통달했기에 가능했다. 武經은 손무의 孫子, 오기의 吳子, 양저의 司馬法, 울요의 蔚繚子, 이정의 李衛公問對, 여망의 六韜, 황석공의 三略을 말한다. 이순신은 무장이었으나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꾸준히 책을 읽었다. 지식은 정보이며 독서는 경쟁력이다.
임진왜란은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쟁으로 한국은 이순신장군의 활약으로 왜군을 격퇴했다고 해석하고, 일본은 중국대륙으로의 영토 확장을 시도했던 위대한 전쟁으로, 중국은 조선을 도와 일본을 패퇴시킨 전쟁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당사국 모두가 패한 전쟁이었다. 일본은 땅 한 평 빼앗지 못하고 정권이 몰락했고 명나라는 국력이 쇄하여 금나라에게 망했으며 조선전역은 폐허가 되었다. 수차례의 협상이 있었으나 서로 간의 자존심싸움으로 불리함 속에서 유리함을 찾아내지 못했다.
6장 위기일수록 사람을 믿어라
1954년 4월 전쟁 중이었으나 한산도에서 과거시험이 열렸다. 전쟁에 지치고 미래가 불안했던 부하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순신이 상소를 올려 진중에서 과거를 보게 한 것이다. 이순신의 부하사랑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승전보고서에는 말단 수군인 개똥이와 망구지까지 이름을 올렸다.
옛날에 投醪精神(투료정신)이란 말이 있었다. 전쟁터에 나선 장수에게 임금이 하사한 한 동이의 술 그러나 수많은 병사들이 나누어 마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술이다. 장군은 주저 없이 강물에 한 동이의 술을 붓고 그 강물의 술을 병사들과 함께 나누어 마셨다. 이미 술이 아니라 강물에 불과했지만 작은 것 까지도 함께 나누려는 장수의 마음에 감읍한 병사들이 목숨 바쳐 싸운 결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는 나눔의 정신을 뜻한다.
이는 오늘날의 경영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지만 가장 범하기 쉬운 과오 중의 하나다. 함께 나누는 투료정신은 고사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종속물로 생각하는 직장이 많다. 자기의 조직에서 자기가 지휘하여 거둔 성과라면 자기의 공적으로 삼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성과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투입된 산물이다.
듀퐁의 경영이념은 ‘위대한 세계적 회사는 인재를 소중히 함으로써 만들 수 있다.’이며 P&G의 리처드 듀프리 회장은 ‘누가 우리의 돈, 건물, 브랜드를 남겨놓고 직원들을 데리고 떠난다면 우리는 망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더라도 직원들을 남겨 둔다면 우리는 10년 안에 일어설 것이다.’라며 사람을 중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