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1) (최진석著, 열림원刊)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뿐이지요.
최진석 교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위의 한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열 번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새김해 본다. 혹독한 思秋期(사추기)를 지내며 마음먹었던 ‘원하는 삶’은 이러저러한 사유로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기보다, 흔들림을 용인할 수 있는 유연함이 현명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서문
책 읽기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다음’으로 가는 일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곧 상상력이고 창의력이지요. 높은 지혜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인간은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멈추면 부패하고 건너가면 생동합니다.
건너가기를 멈추면 양심도 딱딱하게 권력화 됩니다.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너가기의 힘은 책 읽기로 가장 잘 길러집니다. 우리 함께 책을 읽고 건너갑시다.
인간은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로 무엇인가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변화를 딛고 미지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지요. 건너가는 힘은 창의력이며, ‘대답’은 건너가기를 멈춘 상태에서의 소극적 활동 ‘질문’은 건너가려는 적극적인 시도입니다. 세계는 대답하는 습관으로 닫히고 질문하는 도전으로 열립니다.
책 읽기는 정보수집이 아니라 일종의 수련입니다. 낱말과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독서의 전부는 아닙니다. 책을 읽는 것은 문장들 사이에 머무르며 자기만의 처소(세상)를 만드는 것이죠. 물론 쉽지 않은 일로 저자의 길을 따르기도 하고, 거기서 또 내 길까지 찾아야 하니 간단하지 않은 일이지요.
우리는 보통 ‘공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成功’이라 하고 모자는 ‘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功成’이라고 합니다. 순자는 바람과 비를 갖고 싶다면 흙을 쌓아 산을 이루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람과 비가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거죠. 이처럼 바람과 비는 내 수고를 거쳐 현현하는 그들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만 나타난 결과가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마음의 터전을 갈고닦을 뿐이지요. 이렇듯 심리적인 준비가 중요합니다.
‘건너가기’를 하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며 책 읽는 습관을 쌓으면 내공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책을 읽고 ‘마법의 양탄자’에 올라탑시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미친놈’만이 내 세상의 주인이 된다.
존재론적 의미에서 모험은 인간이 쌓는 위대한 탑의 첫 번째 벽돌이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첫 벽돌을 움켜쥐고 일반화된 자신을 넘어서서 고유하고도 특별한 각성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높은 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는 그를 미쳤다고 했다.
돈키호테는 친구들과 공유하던 취미인 사냥을 끊고 땅을 팔아 책을 샀다.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하겠는가. 책으로 단련한 지적 탄력이 가장 강하다. 책을 읽는 양이 많아지고 지적 탄력이 커지면 경계를 넘고 또 넘다가 황홀경에 빠진다. 결국 자신만의 세계로 진입해 고유한 영토를 갖게 된다.
돈키호테는 자기가 만든 환영인 거인이나 군대나 악당과 싸울 때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만큼 죽어라 싸우지만, 정작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는 것과 싸울 때는 힘을 쓰지 않는다. 싸울 필요 없이 상대가 굴복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진짜 무서운 상대와 싸우는 장면은 단 한번 나온다. 산초 판사 등 모든 이가 말렸지만 우리에 실려가는 사자를 보고 돈키호테는 창으로 주인을 위협해 사자 우리를 열게 한다.
우리에서 나온 사자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창을 들고 물러서지 않는 돈키호테를 보고 뒤돌아 슬금슬금 우리로 되돌아갔다. 맥없이 끝난 전투지만 이것이야말로 소설 전편의 백미다. 이 장면은 삶의 승리가 모조리 미친 돈키호테에게만 있을 뿐 나머지 정상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평범한 이들은 미처 황홀경에 빠진 단독자를 이길 수 없다. 그들은 겁먹은 표정을 감추며 안전과 먹이를 찾아 다시 자신을 가두는 ‘우리’로 기꺼이 들어갈 뿐이다. 쭈그러진 심장을 지닌 채 스스로 갇힌다. 돈키호테는 집단적인 정상의 편안을 포기하고 고독한 비정상의 황홀경을 선택했다. 그는 우리와 결별해 자신을 섬기는 자다.
돈키호테는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 미쳐서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하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누구나 사용하는 언어를 구사하며 죽는다. 비정상으로 살 때는 자기였는데 정상으로 돌아와 우리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미쳐서는 풍차에 덤볐으나 제정신으로 돌아와서는 흔해빠진 유언이나 고해나 준비하는 자잘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크고 굵게 살다가 좀팽이로 죽었다.
돈키호테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한마디는 무엇일까? ‘쭈그러진 심장을 쫙 펴십시오. 그러면 나쁜 운수도 부숴버립니다.’ 우선 쭈그러진 심장부터 쫙 펴자! 좀팽이처럼 자잘해지지 말고 크고 굵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