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2) (최진석著, 열림원刊)
-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뿐이지요.
알베르 카뮈 ‘페스트’: 부조리한 세상에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지독한 어느 것과 싸우는 중이다. COVID-19다. 오래전 유럽에는 페스트가 돌았다.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페스트와 싸웠던 사람들 속에 우리가 있다. 카뮈의 말을 직접 듣는다. ‘나는 페스트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고통스럽게 겪은 그 숨 막힐 듯한 상황과 우리가 살아낸 위협받고 유배당하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동시에 나는 이 해석을 존재 전반에 대한 개념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을 선량한 사람이란 방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긴장해야 한다.
題詞(제사)는 글 전체의 방향을 말해주는데 작가가 어떤 태도로 글을 썼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말해준다. 페스트의 題詞는 ‘한 감옥살이를 다른 감옥살이에 빗대어 표현해 보는 것은 어느 것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당한 일이다.’ 이것은 글쓰기의 가장 일반적인 수사법이면서 글쓰기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은유로 카뮈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페스트를 쓰지만 사실은 다른 어느 것을 쓰기 위해 페스트를 도구로 사용한 거야. 다른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 페스트를 빗댄 거야.’
카뮈는 페스트보다 더 심각한 문제, 즉 전쟁에 관해 말하려 했다.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겪은 고통과 고뇌가 없었다면 ‘페스트’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페스트로 비유된 이 전쟁은 결별, 감옥, 엉뚱한 부조리에 갇힌 상태를 의미한다. 이해되지 않는 일, 예상하지 못한 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곤혹, 이런 것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요. 이것들이 바로 페스트다. 소설 속에 ‘인생 자체가 페스트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우리 인생에 빗대면 페스트는 특정 관념에 지배당하는 것, 정해진 마음에 갇히는 것을 말한다.
이 모든 게 다른 세계와 만나지 못하는 결별이며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학대지요. 나에게 페스트가 무엇이냐 물으면 ‘너의 정해진 마음이요. 묶인 발이다.’라고 답하겠다. 정해진 마음, 미래에 대한 곤혹, 고통, 번민, 나를 갉아먹고 세계와 결별시키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더 나은 단계로 건너갈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다.
모든 사람은 페스트에 걸릴 수 있다. 나를 감옥에 가두는 병균에 감염되는 것이다. 나는 정해진 마음에 기대어서 습관처럼 사는 것이 페스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 확고한 이념을 가졌던 사람이 평생 그 이념에 기대 살아간다면 그는 이념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감옥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마치 소설 속 미셸 같은 인물이 페스트의 등장을 부정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걸린 페스트도, 자신이 갇힌 감옥도 모르는 체한다. 평생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페스트가 있을 때 그것을 이겨내려 하지 않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다. 자기를 가두는 정해진 마음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은 페스트에 진 게으른 사람이다. 이 소설은 의지를 갖고 긴장을 유지하며 페스트를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 안의 페스트를 어떻게 극복해 자유를 얻고 해방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페스트의 발견부터 해방까지의 이야기를 빗대어 문학작품으로 대답한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나’로서 승리하는 삶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고기잡이 노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기잡이는 아니더라도 긴 시간 자신의 삶이 팍팍하고 이룬 것 하나 없다는 허탈한 맴을 도는 사람도 있다. 85일이 되는 날 아침, 바다로 나가기 전에 노인은 ‘오늘은 자신이 있다.’라고 중얼거리며 배를 탄다. 팍팍하게 지쳐가는 당신,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오늘은 자신이 있다.’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가?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라는 다짐을 자기 고유한 호흡에 새길 수 있는가? 삶은 투쟁이다. 겉으로만 싸우는 투쟁으로는 진짜처럼 살아가기 어렵다. 겉으로 아무리 깨져도 심장 가까이 파고 들어가 그 안의 무엇을 찾아내고 성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돈키호테’와 ‘노인과 바다’까지 큰 흐름은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 자기를 함부로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끝없이 질문하며 탐험하는 인물들입니다.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지요. ‘데미안’에 이런 대목이 나오잖아요. ‘모든 삶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다.’ ‘노인과 바다’도 자기를 향해 걸으며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 지키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에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속이면 안 되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를 향해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서 상어 떼와 싸우는 것은 돈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왜 나인가. 내가 왜 어부인가’하는 자부심을 지키려는 행위입니다. ‘돈키호테’와 ‘데미안’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도 외적 재산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태도, 생활의 안정보다 희망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유성룡 ‘징비록’: 치욕을 또 당하지 않으려면.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면 잘못한 후에 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써서 반성한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마음을 써서 반성하지 못하므로 잘못을 반복한다. 반성한 후에 남긴 기록물은 귀하다.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환란을 겪었는가 보다 환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치욕을 또 당하지 않으려면 환란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자기를 잘 살필 일이다. 환란 속에서도 사적 이익에 눈이 먼 벼슬아치들에 싸인 채 제일 높은 자리의 선조가 국가경영의 길을 잃고 정치공학에만 빠져있을 때, 우리에게는 그래도 이순신과 유성룡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선조, 유성룡, 이순신인가.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