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맞지만 시간이 흐르면 틀리게 된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체계를 말한다. 패러다임은 정치에도 적용됩니다만 남자들끼리는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기시되기에 정치이야기는 쥐꼬리만큼만 하겠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으로 직업군인이 아닌 일반국민이 세운 정부라는 뜻으로 김영삼 정부의 별칭은 ‘문민정부’이고 이것이 새로운 정부를 이끄는 정책과 계획의 패러다임이 되어 하나회 척결 등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 노무현대통령 ‘참여정부’, 이명박 대통령 ‘실용정부’ 등 각각의 정부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정부와 정책을 이끄는 패러다임으로 작용했다.
새로 선출된 박근혜대통령은 대선 선거전에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국민행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으니 ‘행복정부’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박근혜정부’라고 칭한다 해서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만 ‘국민 행복을 위한 상생과 창조경제’가 박근혜정부의 화두이며 정책기조가 될 것이다.
치열한 선거전에서 상대방을 헐뜯게 되는데 ‘문민정부’는 잘못했다, 나는 국민들이 중심이 되는 정부를 만들겠다 해서 태어난 정부가 ‘국민의 정부’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는데서 선거가 시작되고 성패가 갈린다. 문민정부에서 잘 살아왔던 국민들이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신기하게 과학계에도 존재하는데 가장 간단하고 냉정하게 정의한 것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재 정의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옛날 문제들은 더러 다른 과학 분야로 이관되거나 또는 완전히 ‘비과학적인’것이라고 선언한다. - 1962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패러다임은 시대의 흐름이고 방향성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해석은 제 나름의 정의라 자세한 판단은 인문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던 아니면 각자가 이해하고 있는 지식에 맡긴다. 흔히 회사업무에도 유행이 있다고 말하는데 유행이 아니라 패러다임이다. 나는 기술개발업무를 오래 했으니 우리 회사 기술개발 역사를 빗대어 이야기하겠다.
1단계 패러다임: 자체연구
1994년 기술연구원이 태동하며 연구개발이란 단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기술개발이란 없던 기술을 해외교육, 신장비구입, 기술협력으로 시중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며 당시에는 좋은 전략이었지만 기술연구원이 생기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겼다. 필요한 기술은 구매하는 것뿐 아니라 ‘자체연구’해야 우리 실정에 맞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연구원 초창기는 직원 중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모아서 시작했으니 성과가 좋을 리 없었다. 연구에 대한 비전과 전략도 없는 상태였기에 당연한 일이다.
2단계 패러다임: 수탁연구
이후 기술개발처와 연구개발분야가 위기에 직면한다. 연구결과물의 활용도는 떨어지고 쓸모없는 결과물만 양산하면서 돈만 쓰는 부서로 낙인이 찍혔다. 한해 200억 원 이상을 쓰면서 어떤 일을 했냐? 장비운영팀(100억 원), 교육훈련팀(50억 원)도 기술개발처에 속해 있으니 도매금으로 싸잡아 넘어갔다. 처장님과 관련자들이 모여 대책을 숙의한 결과 정부과제로 연구개발을 한다면 돈을 많이 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으면서 우리 회사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결론내고 새로운 전략과 패러다임으로 무장했다. ‘수탁과제 우선’ 정부과제 수탁을 위해 처장님도 1년 치 업무추진비를 저에게 몰아주셨다. 2000년 당시 수십억 대의 정부과제를 딴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기술개발처와 우리 회사를 바라보는 대내외 부정적 시각을 한 번에 바꾼 적이 있다. 운도 따라주어 우리 회사 기술개발계획을 정부의 원전고도화계획의 일부로 반영시키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다.
3번째 패러다임: 시장중심적 연구, 돈 버는 연구
초기 수탁연구 시에는 정부에서 연구비를 100% 지원하는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지원금을 감축하는 등 혜택이 줄었다. 이로 인해 정부과제도 수탁여부를 엄격히 심사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 패러다임을 변경했다. 바로 ‘돈 버는 연구’다. 기업부설연구소이니 당연한 이야기이며 조금 고상하게 말씀드리면 시장중심적 연구다. 모든 연구과제에 대해 완료 후 어떠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인가. 어떻게 사업화를 할 것인가를 과제 기획 단계부터 따진다. 연구를 수행하는 분들이 변화된 패러다임으로 인해 우왕좌왕했지만 이제는 당연한 패러다임으로 이해한다.
과제가 종료되면 결과물의 활용보다는 새로운 과제착수에 매달렸던 연구원들이 패러다임을 바꾸니 자발적으로 결과물 활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결과물 활용도가 높아졌음은 물론 예상보다 빠르게 유, 무형 결과물을 판매하고 역기술협력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따져보면 내가 새로 내세운 패러다임은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구과제마다 성공하고 돈 버는 일은 어느 나라에도 없기 때문이다. 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어느 임원분께 고백했습니다.
‘현재는 제 말이 맞지만 시간이 흐르면 틀리게 됩니다. 그간 활용과 수익성을 따지지 않았기에 시장중심적 연구라는 당연한 사항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제 말은 틀린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들은, 아니 적어도 기술개발실에서는 ‘시장중심적 연구’라는 패러다임이 정착되고 난 후 4번째 패러다임은 무엇이 될 것인가? 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준비? 공부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