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독사 같은 선배

무리한 주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모로코시운전반, 신재생에너지 사업 관련으로 오랜만에 예전 울진 3,4호기 시운전 전기팀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모였다. 선술집에서 모여 앉아 옛이야기를 하는데 벌써 12~3년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전기팀장이었고 그들은 전기팀 직원들이었으며 예전과 같이 큰 형님이고 작은 동생 같은 사이다.

먼지 나는 공사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공부하면서 업무를 습득해 가는 입사 2년~3년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들이 좋았다. 궂은일은 항상 그들 차지였는데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애송이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일했다. ‘내일 일요일이지만 자재 운반하는데 5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신입사원들이 모두 나와 오전에 일을 후딱 해치우고 ‘팀장님 일 끝났는데 축구하러 가시지요?’한다. 땀 흘리고 열심히 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막걸리 한잔 사라는 이야기다. 막걸리 한 박스와 두부 한판, 축구공 한 개만 있으면 해 질 때까지 공을 차는 그들의 젊음과 열정이 좋았다.


이제는 모두들 아이아빠가 되었고 어엿한 학부형이자 존경받는 선배인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들은 아직도 흔들리는 삼십 대 후반, 사십 대 초반이니 직장선배인 나에게 당연한 듯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내가 철학자도 아니며 종교인도 아니니 회사 선배로서 인생선배로서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 회사 병폐 중 하나는 유능한 직원들이 간부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무시험으로 승진시켜 준다고 해도 24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중에 12명이 승진했고 작년 같은 경우 기계분야는 원서만 내면 간부가 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유능한 직원들이 간부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야 선순환이 된다. 잦은 전근을 해야 하고 막중한 책임이 부가되지만 금전적 보상이 없다고 간부 되기를 꺼린다면 자기희생이 없는 것이고 당사자는 월급 받는 기계로 전락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하고 마땅치 않으면 당신들이 간부가 되어 부딪치고 잘못된 제도를 고쳐라. 바람직하지 못한 간부와의 경험으로 인해 간부가 되기 싫다고 생각한다면 간부가 되어 바람직한 간부상을 후배에게 보여줄 책임이 당신들에게 있다.’


‘요즈음 능력 있는 직원들은 기술사자격증을 취득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회사를 떠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회사에서 뼈를 묻으려고 생각한다면 먼저 간부가 될 생각을 해야 한다. 기술사가 되고 박사가 된 사람들은 아무런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백배 난 사람이고 축하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사자격을 취득한 후에도 초급간부고시에 응시하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이제는 간부시험을 보고 간부의 길로 들어섰으면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회사를 위해서.’


‘입사 15년이 되었다고 고참인양, 나이 든 척하지 마라. 내가 이 나이에... 하는 생각이 내 정신과 도전정신을 송충이처럼 갉아먹고 있다. 나는 안전팀에 있을 때 안전기사자격증을 취득했다. 회사 안전을 총괄하는 본사 안전재난팀이 자격증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창피했다. 공부해서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50세가 되는 해였다. 현재 안전팀장은 53세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암기효율이 떨어져 나보다 더 많이 고생했으나 안전팀 위상제고를 위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공부를 해야 했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목표를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나이를 먹은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기술기획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생의 목표가 간부일 수는 없다. 간부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초등학교, 대학교 들어갈 때 아빠의 직위를 묻는 것도 상관없다면 직원으로 정년퇴직해도 된다. 하지만 직원들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삶은 인간적인 삶을 살아라. 상식적으로, 때가 되면 장가가듯, 시기가 되면 씨 뿌리고 여물면 추수하듯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상식적인 삶을 살아라.’

‘존경받는 선배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후배에게 기술을 배워주고 경험을 나누는 선배만이 한발 더 발전할 수 있는데, 기술을 움켜쥐고 가는 사람도 있다. 무덤까지 갖고 가지 못할 것을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공부하는 아버지가 자녀 교육을 올바르게 시키는 것이고 좋은 아버지가 된다. 공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는 가출하지 않고 공부도 잘한다.’


독사같이 내뱉은 말들이 그들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았길 바란다. 나는 아직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선배이자 전기팀장이길 바랐기에 무리한 주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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