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쓰인 역사’는 뚜렷이 구별된다.
박근혜대통령 중국방문 이후 절판에 가까울 정도로 팔린 책이 ‘중국철학사’이다. 상하권 1600 페이지의 중요 부분만을 서머리한다 해도 20회 정도로 1년 내내 말씀을 드려야 하므로 읽는 분들 고통이 이만저만할 것 같지 않다. 최근 ‘사기성공학’, ‘일침’, ‘철학, 역사를 만나다’, ‘인문학공부법’, ‘고전혁명’,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군자고궁’, ‘사자소통’, ‘도덕경’ 등 중국 철학서를 많이 소개해 드렸기에 이번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철학관만을 소개하려 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최고의 경지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깨달음에 달려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철학이 아니니 이지적인 태도로 표출한 이론이라야 소위 佛家哲學이라고 한다.
신비한 경험은 眞僞가 없지만 이론은 판단이므로 반드시 논리에 맞아야 한다. 각종 학설의 목적은 경험을 서술하는 데 있지 않고 이론을 수립하는 데 있으므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실제 우리가 사고하는 방법 가운데 비교적 진지하고 비교적 정확할 뿐이지만 과학적 방법이 바로 철학의 방법이다.
모든 철학은 두 부분을 포함하는데 최종 결론과 결론을 얻게 된 근거 즉 결론의 前提(전제)이다. 철학자는 어떤 견해를 견지할뿐더러 견해를 견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반드시 증명할 수 있다. 순자가 이야기한 ‘주장이 근거가 있고 말은 이치가 섰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타인의 그름을 공격하고 자기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철학은 논증이나 설명의 측면에서 서양과 인도의 그것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중국철학자들은 지식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지식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다. 최상의 덕은 덕을 수립하는 것(立德),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立功), 마지막이 주장을 수립하는 것(立言)이었다. 덕을 소유하고 공을 일으켜 소위 성왕이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털끝만큼의 지식이 없어도 성인이며 악인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악인이었다. 그러므로 사상과 논변의 과정 및 방법 자체를 의식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드물었다.
철학자의 철학은 마음씨, 기질, 경험등 그 자신의 인격 혹은 개성과 커다란 관계가 있다. 이점에서 철학은 문학과 종교와 비슷하다. 모든 철학문제는 과학문제에 비해 성격이 더욱 광범위 한지라 아직도 완전히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 따라서 그 해결은 철학자의 주관적인 사고나 견해에 의지 한다. 따라서 과학은 온 세상이 인정하는 公言이 될 수 있지만 철학은 그저 개인의 말일뿐이다.
역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사건 자체를 가리킨다. 중국이 4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할 때 4000년의 일을 쌓아 왔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의 역사는 사건의 기술을 말한다. 史記를 역사라고 할 때 바로 그 뜻이다. 역사란 주인공들의 활동 전체를 말하기도 하며 그 활동에 대한 역사가의 기술을 말하기도 한다.
한 시대의 정세 및 각 방면의 사상적 배경이 철학자의 철학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철학 역시 그 시대의 정세 및 각 방면의 사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는 철학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철학 역시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호 인과관계가 있다.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있으며 한 시대의 철학이 곧 시대정신의 結晶이다. 따라서 한 철학자의 철학을 연구하려면 ‘그 사람을 알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규명’ 해야 하고 또한 한 시대 혹은 한 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려면 그 철학을 알아야 한다.
‘역사’와 ‘쓰인 역사’는 뚜렷이 구별된다. ‘역사’ 자체는 ‘쓰인 역사’ 밖에서 ‘쓰인 역사’를 초월하여 우뚝 영존하며 우리의 인식과는 완전히 독립해 있다. ‘쓰인 역사’는 역사의 뒤를 따라 기술된 것으로 좋고 나쁨은 오로지 그 기술의 진실성 여부에 달려 있다. 한 사건의 원인이란 그 사건의 불가결한 전제일 뿐이고 한 사건의 결과란 그 사건의 불가결한 결론일 뿐이다. 한 사건 앞에 생긴 일은 사건의 전제이고 한 사건 뒤에 생긴 일은 사건의 결론이다. 한 사건은 고립되어 일어날 수 없으니 그 앞에는 허다한 사건이 존재하나 ‘쓰인 역사’에서는 모두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반드시 불가결한 전제를 선택하여 서술한다. 그러니 ‘쓰인 역사’에서는 불가결한 전제와 결론이 불가결하지 않은 것도 존재한다.
사회조직은 단순에서 복잡으로 나아가고 학술은 明晳하지 못한 데서 명석에 도달한다. 뒷사람은 앞사람이 소유했던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에 精髓만을 취하여 확장시킬 수 있기에 역사는 진보적이다. 중국 철학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漢代이후에 다루어진 철학의 문제나 범위는 한대 이전에 철학의 연구대상이 다양하고 광범위했던 것만 못하다. 그러나 한대 이후의 철학적 이론은 한대 이전의 것에 비해 실로 명료하고 정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