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으나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른들은 바빴다. ‘넌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하니?’ ‘그런 건 나중에 차차 알게 된단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른들도 답을 몰랐던 거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시지 답을 피했던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답을 해줘야 하는 처지의 어른이 되었지만 답을 해주는 건 별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알고 있는 걸 대답해 줄 때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게 정말 답이 맞을까?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답을 하면서도 질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질문하는 일은 절벽 끝에 앉아서 돌멩이를 던지는 일과 비슷하다. 내게는 그렇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던지는 돌은 어딘가에 부딪치며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저기 부딪치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돌멩이의 궤적, 높이를 가늠하고 아래 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더 멀리 던져보기도 하고 세게 던져보기도 한다. 돌멩이는 돌아오지 않고 아래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주지도 않는다. 한참 돌멩이를 던지다 보면 문득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온다. 답처럼 생긴 무언가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답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일을 하러 간다. 질문을 한다는 의미는 시간 내어 절벽 끝에 가서 돌멩이를 던지는 일이다. 내게는 그렇다.
이동진 작가가 골라준 책을 읽을 때마다 절벽 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릿속을 정리해 스튜디오로 나갔고 이동진 작가와 함께 질문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간의 대화를 다시 읽어보니 거대한 질문 책 같다. 질문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질문을 부풀리고 거듭될수록 질문은 커졌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여기서 답을 찾지 말고 더 많은 질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서문(이동진: 영화평론가)
책은 문을 닮아 직육면체 좌우대칭 같지만 한쪽으로만 열린다. 그러고 보니 책의 내부는 방 같기도 하다. 열고 들어가면 사각의 틀 속에 하나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 방 깊숙한 곳에 금고가 있다. 운 좋게도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무엇이 있는지 열어본다. 또다시 한쪽으로만 열리는 카드에 물음표가 그려져 있지 않을까. 門(문)은 問(문)일까.
그러니까 좋은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좋은 책은 늘 에둘러가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긴 꼬리를 가진 질문을 남긴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한 권의 책이 얼어붙은 바다를 내리치는 도끼일 수 있는 것은 그 도끼의 날이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벼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물어야 한다. ‘올드 보이’에서 오대수는 그걸 못해 모든 비극을 겪지 않았던가.
여기서 다루는 책들은 묻고 또 묻는다. 음악인은 무엇을 노래하고 작가는 무엇을 쓰는가. 영감은 어떻게 생겨나고 행복은 언제 오는가. 그렇게 이어지는 질문들의 끝에서 삶이라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묻는다.
독자들은 제기된 물음에 연이어서 물을 수 있기를, 물음에 물음을 얹어가며 치열하게 물을 수 있기를, 지치지 않고 연속해서 물을 수 있기를, 그리고 물음의 반향에 서로 귀 기울여가며 함께 물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