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잘 사는’에 대한 경험이 없다.
‘800. 가난한 행복’에서 ‘욕심을 줄이고 비교하지 않는 자기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런 삶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올인’의 대상이 ‘콜라의 건강’과 ‘낚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뀐다면 비교하는 삶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時點(시점),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잘 살고 있는지?’라는 질문은 ‘경제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뿐 아니라 ‘건강’ 등 ‘삶 전체’에 대한 질문이다. 짧고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오늘은 끄적거리는 주제를 잘못 선정한듯하다.
선후배들과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듯 끄적거렸더니 분량이 상당하다.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길어진 이야기를 적당한 토막으로 나눴다. 그렇다고 소설처럼 이어진 것은 아니다. 토막으로 나눠진 이야기는 꼬리를 물기도 하겠지만,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당분간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저 술주정이려니 하면 된다.
‘잘 살고 있는지?’ 가끔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물가에 가면 또 다른 내가 앉아 있다. 멍하게 앉아 있는 또 다른 나에게 독백하듯 물어본다. ‘어이, 잘 살고 있어?’, 대답하는 나는 경제적인 부분, 즉 먹고사는 부분은 빼고 말한다. 안정적인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했으며 두 번째 직장도 퇴직해 이제는 蓄財(축재)할 시기가 지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압박받고 끼니를 거를 상황이 아니기에 배부른 소리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정경제에 신경 쓰고 살고 있지 않더라도 삶에서 중요하고 절대 도외시할 수 없는 경제적인 부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에 대한 경험이 없다. 기준이 너무 높아서 또는 무관심해서 ‘잘 사는’에 대해 따져보지 못했을 수 있다. 대학졸업 후의 앞가림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집안전통으로 사회 첫출발은 당연히 ‘잘 살지’ 못했다. 공기업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잘 살기’ 어렵기에 ‘잘 살았던’ 직접 경험도 없다. 게다가 ‘잘 사는’ 친구와 어울려 다녔다면 ‘잘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를 몇 줄 끄적거릴 수 있겠지만 사실 간접 경험도 없다.
고교 3학년 때 짝은 ‘잘 사는 집’ 아들이었다. 내국인의 외국인학교 재학금지조치에 따라 전학 왔고 나이는 한 살 많았다. 드넓은 잔디밭이 있는 한강변 저택, 2층짜리 수위실, 외제차가 여러 대, 식구수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았으며 연예인 친구들..., 서울 한복판에 그렇게 사는 집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이 정도 사는 것 아니면 ‘잘 사는’이 아닌 ‘그냥 사는’것이라 생각한다.
빈부격차 때문인지 나이 한 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인지 짝과는 그다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하지만 ‘잘 사나’, ‘그냥 사나’ 고등학생시절 고민은 똑같았다. ‘수학시험 문제는 왜 이리 어려워,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았잖아.’
현대자동차 그랜저를 선전하는 광고 카피가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였다.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정도 타야 성공한 것이라는 공식이 없으니 반칙은 아니다. 그랜저정도 타고 다니면 사회에서 성공한 부류 또는 ‘잘 사는’ 계층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광고카피다. 교묘하게 소비심리를 파고든 덕분인지 소나타를 밀어내고 2017년부터 그랜저가 국민차로 등극했다. 광고카피가 맞는다면 대한민국 대다수는 성공했으며 ‘잘 사는’ 계층이다.
소득 수준과 life style에 맞춰 차량을 구입하고 타고 다니면 그만이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0년 전 첫차가 소나타Y2였고 튼튼하고 좋은 차였다. 아이가 2명이고 아내가 운전할 때라 튼튼해 보이는 차를 구입했다. 출근 후 교통사고에 대한 우려를 반감시킬 수 있었으니 적절한 선택이었으며 좋은 차였다. 신형소나타는 성능도 더 좋아졌을 테고 4.9미터에 달하는 대형차이나 차에 대한 인식이 인플레이션 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대접이 박해 국민차 반열에서도 탈락했다.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기에 자동차나 아파트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고 오히려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전국 집값이 올랐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값이 올랐을 때는 세상이 미처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기껏 분당 구축아파트 갖고 그런다며 공감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남 아파트가격인 3~40억 원을 깔고 누워있다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월급쟁이가 평생 벌어도 손에 쥐기 어려운 돈을 깔고 누워 있는 것이 정상이라면 세상이 미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친것인지 모른다.
가장 설득력 있고 객관적인 것이 숫자로 표현된 통계자료지만 국민정서에 부합될지는 미지수다. 통계청에서 자료를 발표하고 있으나 실제와 국민들 생각과는 커다란 거리감이 존재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통념과 시각도 매우 인플레이션 되어 있기에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는 자료 즉, 중류층에 대한 통계자료도 공감하기 어렵다.
아래 자료는 통계청발표(2021.3월 기준) 자료를 요약한 것으로 매우 객관적이나 인플레이션 되어 있는 우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한 가구의 평균자산 50250만 원, 부채 8800만 원, 순자산 41452만 원, 연평균소득은 6125만 원이다. 순자산 1억 원 미만가구는 30.3%, 2억 원 미만 15.9%, 3억 원 미만 12.5%, 10억 원 이상 9.4%로 순자산이 3억 원 이상이면 상위 41.3%에 속하므로 중간이상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국민들은 순자산 7-8억 원을 보유해야 중산층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금융자산 10억 원, 순자산 32억 원 정도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갖고 있는 사람들 54%는 최소 금융자산 67억 원에 순자산 100억 원이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나라에는 100억 원 보유자는 36000명, 1000억 원 이상 보유자는 60명뿐이다.
순자산 100억 원 이상 보유자가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통계청 자료를 유추 해석해 보면 그들(36000명)의 상당수는 본인들이 부자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500억 원 정도 있어야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면 처한 사회 환경에 따라 가치관도 다르고 고민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은 ‘부채 없는 30평 아파트, 월 500만 원 이상 급여, 2000cc 중형차, 1억 원 이상 예금 잔고, 연 1회 이상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영국 중산층 기준은 ‘페어플레이, 자신의 주장과 신념, 독선적 행동을 안 할 것, 약자보호, 불의 및 불법에 대응’하는 것이다. 프랑스 중산층 기준은 ‘1개 이상의 외국어, 직접 즐기는 스포츠, 1개 이상의 악기, 색다른 요리, 사회적 분노에 공감, 봉사활동’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선진국이자 이웃임에도 매우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은 사회참여와 정의를 강조하는 한편 프랑스는 개인적 삶의 풍요를 중시하고 있다. 이웃나라이나 다른 역사와 문화로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과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근세에 극심한 배고픔의 시기를 거쳤기에 가치관과 기준이 ‘먹고사는데’에 있다. 이것을 천박한 배금주의사상이라며 비하하면 안 된다. 식민지 수탈과 한국전쟁의 폐허, 보릿고개, 간호사와 광부의 해외파견, 중동건설현장 파견을 경험한 세대와 지켜본 세대는 아직 사회의 일원이자 주역이다. 배고픔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라도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를 비하할 수 없다. 물론 사회 환경이 변했기에 가치 기준을 변경해야 할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어야 좋은 것일까? 다다익선? 과연 만족의 끝이 있을까? 100세 넘어 아직도 생존해 계신 ‘현시대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 정답에 가까운 답을 제시하신 것 같다.
내가 항상 가족들이나 제자들에게 권하는 교훈이 있어요.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충고예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좋을까요? 인격 수준만큼 갖는 것이 좋아요. 인격의 성장이 70이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돼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로부터 90의 재물을 물려받게 되면 넘치는 20의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거든요. - 김형석의 인생문답(김형석著, 미류책방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