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물갈이

전쟁을 무서워하는 군사로는 이길 수 없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최근 인사발령으로 제가 기술개발실에 온 이후 기존 인원의 90% 이상 물갈이 되었습니다. 제가 부임한 지 2년이 약간 넘었는데 전입 순으로 하면 제가 No2가 되었습니다. No1인 최 대리를 어떻게 하면 몰아내어 제가 No1 될 수 있을까 목하 고민 중입니다.^^

주위에서는 급격한 물갈이가 조직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며 말렸습니다. 물론 업무는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급격한 인원교체의 폐해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조직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인원교체가 바람직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전략이 좋으면 烏合之卒(오합지졸)로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나 능력은 있으되 전쟁을 무서워하는 군사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술실에 오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것은 조직의 패배주의와 옛 제도를 답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술실이 본부급에서 처→실→팀으로 쇠락하는 조직이 되다 보니 경영평가에서 5년 연속 꼴찌였고 조직 생동감이 없었습니다. 인원부족이 원인이겠지만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기보다는 옛것을 답습하는 모습이 싫었기에 대대적인 물갈이로 분위기를 쇄신하기로 했습니다.


인원을 교체하다 보니 당연하게 업무의 맥이 끊기는 등 많은 문제가 생겼으나 열심히 일하는 방법밖에는 특효약이 없었습니다. 저도 독하게 직원들을 대해 기술개발실 아침미팅은 발전소현장 830미팅 과는 비교가 안 되리만큼 살기가 등등하여 제가 직접 개인별로 어제 한 일과 오늘 할 일을 따지고 방향을 정해주는 식이었습니다. 전 직원들이 8시 미팅을 하니 양평과 일산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은 속된 말로 애비 잘못 만나 2년 동안 개고생을 했습니다.

업무를 부여했는데 기일을 지키지 못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보고서를 빼앗아 제가 직접 수행하니 모든 직원들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일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직 내 업무를 리딩해줄 부장이 없어 내린 극약처방을 기술실 식구들이 잘 따라 주었습니다.

이제는 조직이 확대되고 부장들이 생겨 간부들만 8시 출근을 유지하고 직원들의 출근시간을 정상화시켰습니다만 아직까지 예전 출근시간을 지키는 직원들이 더 많습니다.


조직이 확대되기 하루전날 지난 2년간의 고통을 감내해 준 직원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매번 꼴등만 했었지만 작년에 드디어 경영평가 탈꼴찌를 했고, 비록 중간순위 성적표를 받았지만 저는 그 성적표가 영광스럽고,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처, 실간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또 우리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받기 위해 저는 단 한 번도 임원 분들께 좋은 성적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한 계단씩만 올라갑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드디어 꼴찌탈출이라는 미션을 성취했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남들이 출근하지 않는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한 덕에 우리 조직은 팀에서 실로, 실에서 처로 격상되는데 채 2년이 되지 않았고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全無(전무)했던 최단 기록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패배감에서 벋어나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직원들은 내일부터 정상출근으로 전환합니다. 그동안 고마웠고 수고하셨고 감사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물갈이 단점은 업무 연속성이 저하되는 것이나 장점은 현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또한,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물갈이를 했더니 실제로 바뀐 사항들이 많습니다. 20년간 운영해 왔고 사업소 원성이 높았던 기술개발과제제도를 중단했습니다. 기술도입만 하던 시기를 마감하고 기술을 팔았습니다. 1억 원을 투자하여 개발한 기술이니 1억 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수니 시장이 보였던 것입니다. 유상 기술협력계약도 체결하고, 사용하지 않는 지식재산권을 매각하니 유지 관리비용이 절감되고 매각수익을 얻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습니다. 고정관념으로 사업소에서도 기술개발을 해야 하고, 우리 기술을 누가 살까? 지식재산권은 무조건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물갈이하여 새로운 시각과 역발상적인 관점으로 보니 개선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아진 것이지요.


이제는 물갈이가 완료되었으니 새로운 컬러를 입혀야 하고, 時流(기술동향에 대한 Megatrends, Microtrends)를 읽고 편승하고 남보다 한 발 앞서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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