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의 거울
일본속담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와 비슷하고 멋진 비유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를 따라하며 알게 모르게 가르침을 받는다. 어쩌면 타고난 성품까지 포함한다면 ‘걸음걸이하고 헛기침까지 빼다 박았어, 완전 판박이야’라는 뜻이다. 아무리 ‘바르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마라.’ 잔소리해도 부모의 언행이 바른 집 자녀들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이야기를 하면 언론중재법으로 곤욕을 치를 수도 있고 기왕에 일본속담을 꺼냈으니 오늘은 언론중재법이 없는 옆 나라 흉을 보려한다. 어미 게가 아기 게에게 ‘옆으로 걷지 말고, 똑바로 걸으란 말이야’ 하는 것과 같이 어른들은 전혀 지키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지켜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오히려 반발심만 키울 수 있다. 요즈음 옆 나라 정치권에서는 ‘어미 게’와 유사한 사례에 대해 ‘내로남불’이란 명칭을 붙여 서로 공격하는 재료로 사용한다. 민초들이 볼 때는 오십보백보이므로 선거로 심판할 시기에는 조용히 있는 사람이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우매한 정치인들이 모르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지도층의 등을 보고 자라야 하는데 혐오와 권모술수로 가득한 진흙탕싸움을 보고 배울까봐 민망하기 까지 하다. 일찍이 선배정치인 ‘다나까’가 그랬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 순간의 발 디딤이 교도소 안과 밖을 결정한다고’ - 일본은 ‘정치인은 잠재적 범죄자이니 배울 것이 없다.’고 단정하니 우리나라보다 정치풍토가 후진적인가 보다.
정치권에서는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본인들도 비난받는 행동을 했던 적이 있었고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을 만들면서 정작 본인들은 정책에 반한 행동 또는 이득을 이미 취한 사례는 너무 흔하다. 아니 정치지도층에서 모범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외국어고등학교와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를 없앤다고 대드는 교육감의 아이들은 외국어고등학교를 이미 졸업했다 이에 대해 ‘과거의 일이고 부모로서 아이들 선택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었지만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라고 변명하면 현재의 학부모들은 아이들 선택을 존중해주는 대신 교육감의 결정을 존중해줘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올림픽 때 선수촌의 골판지침대도 친환경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유력정치인의 친인척이 골판지회사를 운영했기에 나온 아이디어라는 이야기만큼이나 어처구니없다. 선량한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믿을만한 리더들이 종이침대를 설치하거나 외고와 자사고를 없앤다 해도 반발하지 않는다. 신뢰를 잃은 리더들의 ‘내로남불’이 더 미운 것이다.
입버릇처럼 정의를 부르짖던 법무대신은 사문서 위조로 재판을 받고 있다. 훈장시절 내뱉었던 수많은 ‘공정과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서양에서 백팩이라 하는 등짐에는 부패만 가득한 듯하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을 비웃듯 요즘은 부패로 망하는 것은 진보다. 우리나라 이야기 같지만 공적인 벚꽃구경 모임에 친지들을 참석시켜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고 공적모임을 사적모임으로 격하시킨 수상이 있었던 옆 나라 이야기다.
보수도 등을 보고 자랄만한 리더가 부재한 것은 마찬가지다. 보수의 전 대표는 사기꾼에게 속아 속칭 ‘오징어’가 되었다. 등급이 S-class인 명품달구지를 빌려 탓음에도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 대신 투자금의 담보라는 변명에 실소하게 된다. 리더를 지냈던 또 다른 사람은 和牛(화우)와 대게를 선물 받았고, 사기꾼은 소개받은 리더의 지인에게도 대게를 보냈다. 지인은 다름 아닌 스님이었으며 스님은 대게 2박스를 大衆供養(대중공양)했다하여 좋은 일 하셨다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여기서 대중은 사찰신도가 아닌 冬安居(동안거)를 끝낸 승려 4명이었다. 요즈음 佛法(불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몰라도 3개월간 동안거를 하며 法力(법력)을 키워놓고는 대게를 섭식하여 하루 만에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 차분한 성격이라 평가받고 있으나, 아무리 옆 동네 이야기라지만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할 말이 많아지고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려 하는 것은 정치적 환경오염으로 인한 후천적 후유증이다. 스님의 대중공양에 대해 알아보니 대한민국 조계종 관계자는 승려들이 모여 수산물을 먹은 것 자체는 징계 대상이 아니라고 하며, 일본 승려에게 육식이 허용되는 것을 몰랐다. 佛法에 ‘스님은 육식을 하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믿은 소생의 무식함이 드러났다. 입이 걸어질까봐 옆 나라 정치이야기는 여기서 끝낸다.
직장 내에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신입사원 때부터 기라성 같은 선배 분들을 모셨으니 타고난 운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무실 액자 속의 K, T전임사장님을 뵈면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정도다. 가끔 사무실 근처로 놀러 오시는 K, H전무님 등 선배님들은 국수 한 그릇을 하셔도 현역시절과 마찬가지로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가신다. 현역시절부터 퇴직 후까지 챙겨주시는 분들이다.
전근 갔을 때 ‘ooo님 모시고 일했습니다.’라고 소개하면 화려한 이력서보다 빛을 발할 때가 많았다. 업무능력뿐 아니라 품성에 대한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자기소개서였다. 출장갈 때 ‘소장님께 안부전해라.’하는 당부말씀이 ‘쓸 만한 친구이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의미인지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선배님들이 아무에게나 ‘소장님께 안부전해라.’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선배님 등을 보고 자랐기에 쓸 만한 후배들이 출장갈 때 당부했다. ‘소장님께 안부전해라.’ 또 쓸 만한 후배들이 전근갈 때도 당부했다. ‘소장님께 안부전하고 고객사 ooo님을 만나면 나하고 같이 일한다고 해라.’ 믿고 써도 된다는 말로 전하는 추천서다.
아이들은 자신을 낳고 기른 부모를 보고 배우고 밥상머리교육을 받고 자란다. 사람의 성품은 타고난 것이지만, 성장하며 습득하는 부모의 언행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인자이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은 좋은 언행만 하라는 표현이자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