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 잘 살고 있는지?(2): 돼지아빠의 추억

본인의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분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전편의 마지막 문단: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좋을까요? 인격 수준만큼 갖는 것이 좋아요. 인격의 성장이 70이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돼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로부터 90의 재물을 물려받게 되면 넘치는 20의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거든요. - 김형석의 인생문답(김형석著, 미류책방刊)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야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꿀 수 있을 듯하지만 ‘정의’는 쉽지 않다. 서두부터 맥 빠지게 이야기하자면, 결론은 유명 철학자들도 ‘잘 사는’에 대해 정의하지 못했다. 평범한 우리는 평생 ‘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갈팡질팡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고교시절 윤리선생님은 장래 희망으로 ‘좋은 아버지’를 모델로 제시했으나 기행을 일삼는 ‘돼지아빠’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경기고, 서울대 출신인 윤리선생님은 교내식당 잔반으로 ‘돼지’를 사육해서 별명이 ‘돼지아빠’였다. 우리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라고 하셨고 중국과 수교를 생각도 못할 45년 전에 인구 많은 중국에 가서 장사하라고 권하셨다. 대한민국 수재 ‘돼지아빠’는 학교선배로서 진솔한 어드바이스를 했으나 뺑뺑이로 입학한 둔재들은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못했다.


입사해서는 존경받는 처장이 되고 싶었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고 본사 전입 왔을 때 모셨던 처장님은 타 부서 처장님보다 열 살 어리셨다. 타 부서 처장님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어른이었고 한편으로 고리타분해 보였으나, 모셨던 처장님은 푸근하고 형님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셨기에 롤 모델로 삼기로 했다. 승진목표도 처장으로 하고, 삶의 방식도 닮기로 했다. 당시에는 롤 모델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 같았다.

스치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도 갈아내고 가능하면 동료 부탁을 들어주려 노력했다. 고유 업무는 물론 타인의 업무나 부탁을 척척 해결해 주니 따르는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 모난 성격이 둥글둥글해졌고 좋은 평가는 입소문을 탔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두터워진 인적 네트워크로 인해 남들이 풀지 못하는 부서 간 문제들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했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 ‘잘 사는’것 같았고 현실에 만족했다.

겉모양은 화려하고 ‘잘 사는’것 같았지만 내면은 타인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자 하는 피곤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깨달았다.


40 중반, 부장에서 실장으로 진급할 시기였다. 진급할 것인지, 1년간 현업을 떠나 외부에서 교육받는 휴식년을 가질 것인지 고민 끝에 교육을 선택했다. 사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작은 것이었고 실제 고민은 따로 있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마음이 지쳐 힘들 때 던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비관적이고도 섬뜩한 질문에는 답을 잘해야 한다. 희망과 꿈과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을 때 나오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이아가라 증후군을 심하게 앓았던 시기였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달리다 언뜻 정신 차려본 40대 삶은 방황하고 고민하느라 너무 황량했었다. 좋은 직원들 만나 단합된 팀을 만들고 존경받는 팀장이었으며 고객관계도 좋았기에 현장 팀장으로서 모든 것을 갖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룬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불안하고 한편으로 초조하고 허전했다.

경제력 유무와 사회적 지위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대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훌륭하고 행복한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많았던 탓이다. 뒤쫓아 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추월당할 것 같은 초조함,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 남들이 더 많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 등이 복합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결국 물결에 휩쓸려 모두가 폭포의 낭떠러지로 추락’ 하는 삶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듯했다.


1년간 같이 공부할 ‘서울대 경영자과정’ 95명 교육생들은 나름 ‘잘 사는’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다. 공기업 중간간부들로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출근하고, 권한과 사회적 지위도 누리고 있고, 중형차를 갖고 있으며, 주말에는 골프 치고, 가족들과 해외여행 가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다.

사람이란 묘하다. 예비군복을 입고 훈련하면 예비군으로 변하고, 학교에 입학하면 학생으로 변한다. 학생회비(모든 술값)를 관리하는 총무였기에 모든 모임은 내 승인이 필요했고 자주 불려 다녔다. 서울대, 낙성대역 근처 주점들은 학생들이 주 고객이라 가격이 헐했다. 학생으로 변하기 이전 신분일 때는 가지도 않았을 선술집에서의 모임에 총무가 참석했으니 술값걱정은 없는 자리다.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생각이 궁금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교육생들에게 질문해봤다. ‘뭐 별 거 있어? 열심히 일해 퇴직 전 처장으로 승진하는 것이고, 현재와 같이 무난하고 무탈하게 사는 것’이 대부분의 꿈이었다. 물론 부장과 부처장이란 현 위치를 감안하면 불가능하지 않은 꿈이었다.


어떻게 모든 교육생들과 내가 살아왔던 궤적, 살아갈 방향이 똑같을 수 있을까? ‘평준화’라는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정형화된 공기업 조직문화 속에서 살아왔기에 모두가 같은 삶을 강요받는 것 같았다. 나 자신과 비슷하게 본인의 삶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으니 잘 살고 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10년여 남은 직장생활을 아직까지 했던 것처럼 나를 버리고 앞만 보며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도 했다.

얼마나 쇼킹한 일인가? 벌써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왔는데 잘 살지 못했다니. ‘돼지아빠’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고등학생시절 피부에 와닿지 않는 궤변으로 느껴졌지만 나이 들어 ‘돼지아빠’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성실하고 성공한 직장인도 좋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현명하게 보였다. 업무와 관련된 책만 보다가 ‘잘 살기’ 위한 책도 보기로 했다. 타인을 위한, 타인에 보이기 위한 삶을 살다가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했다. 일도 소중하지만 가족, 친구의 소중함도 깨닫기 시작했다.


살아가며 당면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어쩌면 경제력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아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이들 학원비, 품위 유지를 위한 고급승용차 구입, 자가 아파트 구입, 주 1회 골프... ‘잘 살기’ 위한 기준이 경제력이라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돈 벌기’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돈 벌기’의 단점은 폭주기관차처럼 ‘멈춤’을 모르게 되어 시야도 좁아지고 사고 나기 전에는 스스로 내려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력에 맞춰 생활한다고 기준을 정해놓으면 세상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고민거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식구 수에 맞춰 타고 다닐만한 승용차를 구입하고, 서울 시내가 아니라도 외곽도시에 아파트를 구매하고, 주 1회가 아닌 월 1회 골프를 친다면 ‘못 살기’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부족한 삶’이 되는 것일까?


소유하지 않고 검소하셨던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옷이 남루해서, 오래된 중형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잘 살지 못했다거나 행복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돈 많은 이병철, 정주영 회장과 권력을 움켜쥐었던 박정희, 노무현대통령이 거리낄 것 없이 잘 살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분들이 생각한 ‘잘 살기’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을 마친 분들이었기에 후대사람들이 잘 살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그분들은 후대의 평가조차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옳다고 믿은 본인의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분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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