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책들(2) (이동진, 김중혁著, 예담刊)
우리의 행복은 언제 찾아오는가?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이동진: 마이애미대락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마크 롤랜즈는 늑대 브레닌과 11년간 동고동락한 경험과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이 ‘철학자와 늑대’입니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모범적인 철학서입니다.
브레닌이란 늑대와 11년간 함께 지내고 결국 떠나보내는 이야기인데 늑대와 함께한 그 시간 동안 인간이라는 종을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실존적으로 자각한 내용들을 잘 정리한 책입니다.
김중혁: 롤랜즈는 인간은 쾌락적인 동물이라 말하죠. 쾌락이라는 게 시간의 지속성보다 순간적인 것과 관련 있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순간을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동진: 쾌락을 느낀다는 건 좋은 감정이잖아요. 그런데 왜 인간은 그렇게 섹스를 포함한 감정을 절대시 하느냐. 롤랜즈는 삶이라는 게, 행복이라는 게 지고지순의 가치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시간은 순간의 중첩으로 만들어진 상대적으로 긴 기간을 말하는 것이고 순간은 내 앞에 당도한 현재를 말한다고 하면 인간은 현재라는 시간을 향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현재를 생각하려 하면 자꾸 과거의 기억이 몰입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들어와서 현재를 훼손시키기 때문이죠. 결국 현재를 현재로 즐기지 못하고 기억과 기억사이, 기억과 기대사이에서 현재가 계속 교란된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강조하는 풍토도 이와 관련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꿈이라는 게 미래의 한 지점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현재를 부정하는 행위예요.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의 뭔가를 성취한다는 건데 단순하게만 생각해도 그 꿈은 이루어져도 불행하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불행하다는 것 아닌가요? 이루어지면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다음은 뭐냐? 할 테고 혹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하게 되니까요.
김중혁: 그러니까 저처럼 쾌락을 추구하고 사는 게 맞아요.
이동진: 인간은 끊임없이 미래와 과거에 끼어있는 현재에서 그야말로 까치발을 하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순간의 어떤 감정에 집착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그럴 수 없는 존재니까 역설적으로 말이죠. 그러니 감정을 추구한다는 게 얼마나 무망 한 일인가라는 거죠.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요.
김중혁: 제가 ‘요요’라는 단편소설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시간은 어떤 식으로 흐르는가. 직선으로 흐르는가. 흐르면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요요의 시간’이란 표현도 썼는데 시간이 직선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회귀하기도 하고 원처럼 돌면서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철학자와 늑대’를 읽고 나니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또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이 왜 시간에 구애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부분이 매우 재미있어요.
이동진: ‘철학자와 늑대’에서 재미있게 읽고 동의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이 반드시 쾌감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행복은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불행한 감각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이 책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늑대 브레닌이 토끼사냥을 관찰하여 쓴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브레닌은 토끼를 잡기 위해서 일단 자기의 본성을 최대한 억제하고 참는 방식으로 준비한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시간을 엎드리고 긴장한 채 15분 넘게 가만히 기다렸다는 거죠. 그때는 육체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힘든 순간일 거잖아요. 그런데 그 순간이 늑대한테 행복한 순간이라는 거죠. 그 묘사가 참 좋더라고요.
김중혁: 저는 그 부분이 좋았어요. 토끼사냥 다음 철학자로서 롤랜즈 본인의 생각을 펼쳐요. 늑대가 토끼를 잡기 위해 쫓아다녔던 것처럼 본인은 생각을 쫓아다녔다는 거죠. 어떤 생각을 잡기 위해 골똘히 몰두할 때 그것이 오래 걸릴수록 힘들고 괴롭겠지만 또 거기서 오는 쾌감이라는 게 있을 거예요. 마치 늑대가 토끼를 잡기 위해 온몸을 긴장하고 기다리는 것과 비슷할 거 같아요. 일본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도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라는 책에서 생각이라는 놈이 오면 목덜미를 덥석 잡아야 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기회를 보고 있다가 잡는 거죠.
이동진: 그런 식으로 늑대의 토끼사냥과 영감이나 생각을 잡는 것을 병행해 가며 이야기하는 솜씨가 뛰어나죠. 그런데 롤랜즈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인생 최고의 고통을, 몸부림치는 늑대를 치료하면서 그 늑대를 자신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신을 저주했던 그 지옥 같은 시간이라고 꼽아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행복의 개념이 반드시 쾌락과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김중혁: 롤랜즈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동진: 소중한 것과 즐거운 것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삶에서 가장 유쾌하고 좋았던 그 순간이 인생에서의 최상의 경험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처럼 다음 세상에 하나의 인생기억을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인가 물으면 상당수가 가난하고 소박하고 일상적인 모습 도는 매우 슬프고 아픈 기억이라는 거죠.
김중혁: 어쩌면 즐거웠던 시간은 상대적으로 빨리 지나가지만 인상적이고 기억할만한 시간은 매우 느리게 또는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더 잘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동진: 그렇죠. 유쾌한 순간이라고 한다면 그건 이미 다 해갈된 상태니까요.
이동진: 이 책에서 예를 들면 행복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경계하면서 분석한 부분은 매우 놀랍다고 생각해요. 행복이라는 건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거든요. 또 행복이라는 게 특별한 찰나의 경험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같은 것에 있다는 말도요. ‘행복이란 말이야’하고 가볍게 말하는 책과는 다르죠.
김중혁: 맞아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들보다 늑대 브레닌과 함께했던 삶 속에서 얻어낸 통찰에 더 큰 울림이 있어요.
깊이도 있고 질문도 많이 있어서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죠. 우리 사회는 답이 필요한 게 아니고 질문이 필요한 거 같아요.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빨리 답을 내놓으라 하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많은 질문을 생겨나게 하는 이 책은 매우 훌륭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없는 거 같아요. 답부터 찾으려고 할 뿐이죠. 늑대 브레닌이 토끼를 잡기 위해 기다리고 감각을 곤두세우는 그런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