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문학은 사람과 관련된 제반 학문이다.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며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활동이다. 이외에도 예술, 고고학, 언어학, 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가 인문학에 포함된다. 인문학공부의 어려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공부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추상성 때문이다. 또 인문학 공부는 끝이 없어 잠깐 공부한다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이 우리 시대의 대안으로 대두된 배경에는 사람들의 욕구가 변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성능보다 디자인에 열광하는 현실이다. 미래는 실용주의와 인본주의가 만나 새롭고 거대한 물결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인문학은 답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어렵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질문의 학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찾는 것 또한 어렵다.
인문학 열풍이 부는 두 가지 이유는
자기계발과 경영서적들의 한계
다른 하나는 시대가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통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여행을 하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본질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본질은 늘 가려져 있으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본질을 잘 찾아내면 일을 잘 풀어낼 수 있고 공부의 원리를 알 수 있으며 같은 여행을 해도 남과 다른 뭔가를 얻을 수 있다. 인문학에는 본질을 찾아내는 힘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철학적인 질문을 배우고 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기존의 생각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볼 것을 세상이 간절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니체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말이지만 ‘자라투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도 이 말은 등장한다. 기독교인들이 증오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니체는 지금까지의 세계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기존의 가치체계에 완전히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신의 죽음을 선언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했다. 예수나 부처, 공자에 묶여 있지 말고 새로운 생각들로 가치를 만들어 내라는 외침이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인간은 밧줄이므로 새로울 수 있고 늘 변화하면서 자기를 창조할 수 있다. 짐승은 그럴 가능성이 없고 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파괴하며 새롭게 할 수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사람이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본성을 그린 것이다. 농장에 숨어 들어가 양 한 마리를 훔쳐 달아나던 늑대가 도중에 사자를 만났다.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너 잘 만났다. 그 양을 내려놓던지, 아니면 네 목숨을 내놓아라.’
늑대는 하는 수 없이 양을 내주고, 비실비실 뒷걸음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강도, 도둑놈!’
이에 사자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놈아, 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너 역시 훔친 것이 아니냐!’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자기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의식마저 없는 상태에서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본다는 생각 없이 보고, 무엇을 행한다는 생각 없이 행한다면, 보고 행하는 모든 일을 즐길 수 있다. 이 상태가 되면 보는 사람과, 보이는 대상인 경치가 구별되지 않고 하나의 체험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구경과 놀이의 극치이다.
흔히 뜻을 알 수 없는 얄궂은 대화를 보고 선문답 한다고 하는데 선문답 안에 진리가 있다.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강했던 도신이라는 어린 승려가 스승 승찬 스님에게 물었다.
‘해탈할 수 있는 법문을 알려 주십시오.’
‘해탈이라니, 누가 너를 묶었더냐?’
‘아무도 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너는 이미 해탈인 이다.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수학의 정석’이나 ‘해법수학’같이 참고서 격인 ‘인문학 공부법’이라는 책이 발간되는 것을 보면 인문학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도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